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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따지는 대학
박수영 ㅣ 기사 승인 2018-05-07 21  |  602호 ㅣ 조회수 : 81
  족보도 없는 놈이 굴러 들어와서는 쯧쯧. 족보의 사전적 정의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다. ‘족보 없다’는 ‘근본이 없다’라는 뜻으로 남을 얕보거나, 무시할 때 쓰는 말이다. 과거에는 가문의 역사를 온전히 이어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이 영향을 받아 뿌리, 전통을 강조하는 노인들에게 족보는 중요한 요소다.



  대학생에게도 족보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족보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 대학생에게 필요한 족보는 과거에 출제한 시험문제와 정답을 모은 자료집을 말한다.



  대학생에게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취업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을 따야 한다. 좋은 학점을 따려면 시험을 잘 봐야한다. 결국 학생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족보를 이용한다.



  족보는 출제 경향과 시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넘어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받도록 하는 편법으로 사용된다. 족보만 있으면 시험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짧은 기간에 많은 시험을 동시에 치르는 대학생에게 쉬운 방법으로 좋은 학점을 따는 데 족보만한 것이 없다.



  족보 거래를 담당하는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각 대학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족보가 떠돌고 있으며, 사고파는 족보장사가 성행한다. 우리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우리대학 대나무숲 페이지에 “00과는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보지 못할 정도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족보는 비단 특정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학생이 족보를 얻기 위해 원치 않는 학과나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다.



  족보가 만연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문제 풀이식 공부와 주입식 학습 습관에 익숙해진 학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학생은 복잡한 사고를 거치며 공부하기보다는 이미 잘 정리된 족보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족보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하다. 교수가 시험문제를 매년 비슷하게 출제하기 때문이다. 가장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족보대로 시험문제를 내는 ‘교수’다. 일부 교수는 동일한 문제를 반복해 출제하거나 가르치는 것에 비해 문제 출제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



  족보는 실력이 아니다. 인맥이 실력일 수는 없다. 얼마나 꾸준하게 열심히 공부했느냐보다 족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성적이 결정된다. 타과생 또는 족보를 구할 연줄이나 정보가 없는 학생은 불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



  족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교수의 각성이 필요하다. 족보를 없애는 가장 쉬운 해결책은 매년 다른 문제를 출제해 족보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주입식 교육을 되풀이하는 데서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과 평가방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린다. 대학을 영어로 하면 university다. 즉,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총체적 혹은 보편적 지식(universal knowledge)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러나 족보는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다. 족보 문화가 성행하고 족보와 동일한 문제를 출제하는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족보는 대학 정신의 회복을 위해 교수와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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