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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박수영 ㅣ 기사 승인 2018-09-03 12  |  605호 ㅣ 조회수 : 136
  부당함에 맞서 싸웠던 노동 운동가,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상징, 풍자와 유머로 소통하던 정치인. 이 많은 수식어는 단 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난 7월 세상을 등진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이야기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자리 잡기는 매우 힘들다(기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진보정당이 성공한 유럽의 역사나 사회제도를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진보정당은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역사에서 누군가가 열매를 거둔다면 누군가는 거름을 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역사의 경작자가 되고 싶어 하지, 거름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고. 역사에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기자는 고인이 보여준 진보정당 실험을 ‘역사의 거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에게 정치란 어떤 가치를 실현할 세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지, 누가 당선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세력이지, 인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꾼 것은 노 의원 때문이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은 말로는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서도,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논쟁들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당의 기본에는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깔려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고인은 달랐다. 그는 당의 이념을 유권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능력이 있었고, 노동자의 현실에 근거한 대안정책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노회찬하면 해학과 유머가 담긴 어록들이 유명하다. 그는 좌파의 핵심을 집약하여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 진보정치 커뮤니케이터였다.



  그의 모든 것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진보신당 시절, 당원들의 결정을 깨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것은 기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민주당에서 진보적인 정치인이 집권하는 세상이 됐으니, 곧 그가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언젠가는 실현될 줄 알았던 그 바람이, 영원히 바람으로만 남게 됐다.



  기자는 정의당 당원도 아니고, 고인과 정치적 입장이 같지도 않다. 그가 돈을 받은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다. 이를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혐의를 받고 처음부터 초지일관 부인하다가, 이에 대해 법적 평가나 적어도 사회적 평가(비판)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고인의 행동에 당혹감과 분노가 일기도 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살면서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실수하지 않는 인생 따위는 없다. 로맹 롤랑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비열하다고 할 수는 없다.



  노 의원은 다른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들과 ‘똑같은’ 정치인이 아니다. 백로 몸에 흙탕물이 묻었다고 백로가 까마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생전 고인은 까마귀들과 지향하는 이상이 다르고 꿈꾸는 세상이 달랐다. 한 가지 사건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온 자의 인생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의 유서 마지막에는 단 한마디가 적혀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떠났다. 가는 순간까지도 자신 때문에 동지들에게 누가 된 것을 미안해 하고,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꾸짖어달라는 동시에 자신과 정의당은 무관하니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떠나겠다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범죄좌 노회찬이 아닌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명복을 빈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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