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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다는 것
김철(기초교육학부) ㅣ 기사 승인 2017-09-03 22  |  590호 ㅣ 조회수 : 105
소싯적에 출가하여 절에 들어가서 수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알렉세이 표도르비치가 불멸과 신을 위해 그러했듯이 세상의 온전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따라 사는 것보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위 ‘득도’하는 것이 하나뿐인 삶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속세를 떠날 용기가 없을뿐더러 ‘도’에 대한 열망이 다소 부족한지라 이러한 생각은 곧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율곡의 경우,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후 금강산으로 출가를 한 적이 있다. 삶에 허무를 느끼고, 참다운 ‘도’를 깨닫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불가의 방식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논어를 다시 읽으며 참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알다시피 논어는 공자의 치열했던 일생의 행적과 말을 기록한 책으로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개혁하려는 공자의 사상을 담은 책이다. 율곡은 아마도 논어를 통해 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오직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근대에 이르러 인식론이 정립된 이후, 인간의 오관(五官)으로는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데 한계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또한, (진리에 이르는) 완벽한 논리적 체계의 건설을 목표로 한 (빈 학파의) 노력은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로 인해 수포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 인간은 전혀 새로운 것을 선험적으로 파악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SF 영화에서 우리가 여태 보지 못한 외계인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의 인간을 포함한 여러 동물의 이미지를 조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이 세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나는 여러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할 때, 상당한 경우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논리적인 비약을 경험하곤 한다. 이를테면, 그 문제에 대한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하다가 갑작스레 답이 떠오르곤 하는 식이다. 그런 다음, 이 답이 다른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자세히 검토한 후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러한 과정이 소위 ‘득도’하는 과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데, 무언가를 깨닫는 그 어떤 것 말이다.



주지할만한 사실은 이런 깨달음이 그냥 막연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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