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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처
전유진 ㅣ 기사 승인 2017-06-04 22  |  589호 ㅣ 조회수 : 360


전유진 기자

(전미·14)

어느덧 4학년이다. 수업은 안 듣고 놀기만 좋아했던 과거의 나 덕에 반 학기를 더 보내고 기자는 이제야 4학년이 된다. 그리고 요즘은 그 ‘4학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앞에서 점점 작아져 가는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다. 아직 전혀 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기자를 절벽에 세우고는 “이제 날아봐! 날아보란 말이야! 왜 날지를 못하는 거야!” 하며 독촉하고 있다.



“진짜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할까 봐.” 얼마 전, 친구들과 맥주를 한 잔씩 하다가 나왔던 얘기다. 그동안 주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 일은 많았지만, 이토록 진지하게 그 말을 우리들의 입으로 직접 내뱉어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웃고 떠들던 분위기는 일순간 정적으로 뒤바뀌었다.



어느 순간부터 공무원 시험은 기자와 같은 청년들, 달리 말해 우리 ‘준비되지 않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도피처가 되고 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깜깜한 상황과 턱밑까지 쫓아온 취업이라는 추격자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결국은 남들 다 하는 공무원 시험이 가장 좋은 도피처인 것이다. 공무원을 꿈꿨던 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현실과의 타협에서 그동안 키웠던 꿈을 외면하고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의 길을 택하는 청년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가 도피처로 삼는 그 ‘공무원 시험’이라는 것이 결코 ‘편안한 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16년 공무원 시험에서 207명을 뽑는 국가직 일반행정 7급 시험에는 무려 28,049명이 지원했다. 109 대 1의 경쟁률이었다. 같은 시험에서 검찰직은 무려 48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00명이 넘는 지원자, 때로는 5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겨우 한 명만이 튼튼한 동아줄을 잡는다. 숨통을 조여 오는 취업의 압박감 속에서 겨우 몸을 피해 왔던 이 도피처에서조차 겨우 몇몇의 소수만이 취업 지옥을 탈출하는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통과하지 못하고 남은 이들은, 이 도피처에서도 도피해야만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린다고 한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의무경찰의 수를 줄이고 경찰 공채의 수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도피처 평수를 넓히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를 시작으로 일자리 정책을 일순위로 추진하겠다는 새 정부의 말이 포퓰리즘으로 끝나지 않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기자도 지금 도피처 앞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을 비집고 이 도피처 안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도, 과연 그 출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취업의 미로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걸까. 4학년, 취준생이라는 명찰은 날이 갈수록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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