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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손명박 ㅣ 기사 승인 2017-09-03 22  |  590호 ㅣ 조회수 : 79
요즘 인터넷 브라우저에는 자동 번역 기능이 내재해 있다. 웹페이지가 어떤 언어로 구성돼있든 본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기능이다.

기자는 이 기능을 사용해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곤 했다. 해당 문서들은 철저히 일본인 시각으로 작성돼 있었다. 한국인 입장에서 이런 시각의 문서들을 읽는 게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날도 기자는 위키백과의 여러 문서를 번역해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복 문서를 읽던 중 한은진이라는 원로 배우 한 분에 대해 알게 됐다. 일제강점기 한복을 입은 당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페이지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1935년의 어떤 잡지에 나온, 20대 시절 고운 한복을 입은 흑백 사진이었다.



갑자기 기자는 다른 흑백 사진들이 보고 싶어졌다. 기자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조선인들의 흑백사진을 검색해봤다. 한은진 여사 이외에도, 지금은 고인이신 여러 배우 분의 데뷔 초 모습이라던가, 교과서에서 이름만 들어본 독립운동가나 시인들의 초상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백석 시인이 오랜만에 보였다. 백석. 그의 얼굴을 본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작년 영화 〈동주〉가 개봉됐을 때, 기자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기도 하고, 윤동주 시인의 권위자 마광수 교수의 인터뷰도 보고, 그의 사진도 찾아보곤 했다. 그때 본 게시물 중 하나가 윤동주 이외에도 백석 등 여러 시인의 사진이 나열된 게시물이었다. 작년 그때 기자는 백석 시인의 얼굴을 처음 보며, ‘참 잘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봤던 그 날의 감정도 작년의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자는 백석 시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허나 흑백의 사진을 오랜만에 보니 문득 백석 시인의 삶이 궁금해졌다. 기자가 아는 백석은 굳이 생각해보자면 준수한 외모를 가진 시인. 그리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재밌는 시의 작가. 이 정도가 다였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찾아봤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의 생애를 다룬 동아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그는 해방기까지 시인으로서 절정의 성취를 거뒀지만, 역설적으로 광복 후 강제로 문학적 사망선고를 당하고 만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광복 후 그는 자신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 남는다. 한동안 북한에서 글과 관련된 직업군에 종사하던 그였지만, 그의 글이 혁명의식이 약하다는 이유로 북한은 1950년대 말 그를 지방으로 강제이주 시켜 농사일에 투입시켰다. 1961년 이후로는 모든 글쓰기를 금지 당했고, 이후 1996년 삶을 마감한다.



그가 북한서 지은 시들이 궁금해져 일부 읽어봤다. 이것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이 지은 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공산주의 선전용 시였다. 처참했다.



그가 과연 진심으로 선전용 시를 쓰고 싶어서 썼을까? 혁명의식이 낮다고 글을 못 쓰게 한 북한의 행태로 보면 확률은 낮지 않을까 싶다. 감히 생각해보건대 마지못해 그런 시를 적지 않았을까. 프로파간다 목적이 아니면 시를 적을 수 없었던 암울한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던 백석 시인에게, 삼가 연민의 감정을 보내며 짧은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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