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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사과
원용찬 ㅣ 기사 승인 2018-11-19 23  |  610호 ㅣ 조회수 : 40


김주윤 기자

(건축·18)


  유난히 더웠던 고3의 여름, 높아지는 불쾌지수와 그에 장단 맞춰 불쾌감을 주는 성적표는 기자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전화 한 통이 찾아왔다.



  학기 초 친구에게 이끌려 가입한 봉사 자율 동아리 회장이었다. 당시 봉사 자율 동아리에 소속돼 있다는 것도 잊고 거의 유령회원으로 지냈던 터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통화의 요지는 방학을 맞아 산간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봉사를 진행하고자 하는데 인원이 부족해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움이 컸던 만큼 즉답이 어려웠고,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조용히 묻히길 바랄 심산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날들의 연속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어 빨리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고민 끝에 부탁받은 봉사 동아리 활동을 그 시작으로 택했고 봉사팀의 일원이 돼 2박 3일의 봉사를 떠났다. 봉사 지역은 충청북도 단양에 위치한 조용한 산골 마을이었다. 문맹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드리는 업무였다. 한 사람이 한 분에서 두 분의 어르신을 맡아 한글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기자가 담당한 할머니는 수줍음이 많고 정도 많은 80대의 할머니였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배울 때마다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할머니는 기자에게 친손자 대하듯 맛있는 밥과 간식, 과일을 아낌없이 줬다. 감사하면서도 봉사를 망설였던 과거의 기자가 미워지기도 했다.



  당시 기자가 문맹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부끄럽지만 그간 살아오며 문맹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어르신들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으셨다고 한다. 배움을 원해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기본적인 글조차 배우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파졌다. 수준 높고 편리한 지금의 교육 여건 속에서 자라면서도 감사함을 모르고 불만 가득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봉사 마지막 날 기자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 할머니와 인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아주 특별한 사과를 건네받았다. 할머니가 준 사과 봉지에는 직접 쓰신 글씨로 ‘사과’라고 적혀있었다. 간단한 자음 모음과 단어들만 가르쳐드렸을 뿐인데 사과를 쓰기 위해 한글책을 뒤지며 애썼을 생각을 하니 뭉클해졌다. 또 사과를 건네며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는 모습에 되려 기자가 할머니께 너무 감사하고 뿌듯함이 밀려왔다.



  2박 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봉사는 기자를 슬럼프에서 구해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경험 중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할머니가 준 사과가 무척이나 맛있고 특별했다는 것이다. 기자를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어 주신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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