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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화자에게 돌을 던지는가, 작가 홍상수 무죄론
이원기 ㅣ 기사 승인 2018-06-19 19  |  604호 ㅣ 조회수 : 192

이원기


(문창·18)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그가 묻는다.



  “홍상수 영화 좋아합니다”



  내가 답한다.



  “아.. 홍상수요?”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진다.



  “네, 홍상수 감독이요” “불륜이라니, 좀 그렇긴 하죠? 그래도 그 양반 영화는 꽤 괜찮답니다”



  나는 얼른 멋쩍게 웃으며 그런 당신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는 필자가 심심찮게 겪는 일이다. 어느 날 홍상수가 대뜸 처자식을 떠나 배우 김민희와의 열애를 인정한 이후 대중들 사이에서 홍상수는 불륜의 아이콘이 되었고, 홍상수의 영화들 또한 그 자신의 자전적인 불륜 스토리 쯤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홍상수는 우리나라 영화감독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1985년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을 졸업,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텔레비전 연출을 하다가 좥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좦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 그는 이후 기존 한국영화계에 없던 누벨바그 식의 독특한 연출과 제작방식을 고수하며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영화는 늘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방식이 매우 사실적이고 궁상맞다. 특히 ‘불륜과 바람’은 그의 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그가 만드는 영화들이 상업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예술영화에 환호하는 프랑스뿐 아니라 국내에도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소위 말하는 매니아 층이 존재한다. 필자 또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예술활동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 중 하나다. 하지만 얼마 전 불륜 사건이 터지며 많은 팬들이 떨어져 나갔고, 원래 별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홍상수라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개중에는 그의 인간성뿐 아니라 그가 만드는 영화들도 함께 폄훼하는 목소리도 생겨났다. ‘홍상수의 영화는 더러운 인간이 만든 더러운 영화’라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앞서 얘기했듯 그의 영화가 대개 불륜을 다룬다는 점도 그들 주장의 근거로 한몫했다.



  필자가 싶은 이야기는 그런 시각에 대한 반박이며 인간 홍상수가 아닌 작가로서의 홍상수에 대한 변호다. 홍상수를 비난하는 것은 이해한다. 공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할 것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런 식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그에게 대중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를 욕하는 것이 ‘그의 영화’를 욕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



  문학에는 ‘내포 작가’라는 개념이 있다. 내포 작가란 작품의 화자를 창조하는, 작가의 제2의 자아와 같은 존재로서, ‘실제 작가’와 ‘화자’의 사이에 자리하는 개념이다. 먹고 마시며 보편의 일상을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의 작가, 즉 실제 작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내포 작가라는 옷을 입는다. 다시 말해 실제 작가는 내포 작가와 부등호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만약 실제 작가를 내포 작가와 동일한 존재로 오해하게 되면 어떤 위험이 생길까? 가까운 예로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더 유명해진 김영하 작가의 경우를 들어볼 수 있다. 작품을 접하는 독자가 실제 작가와 내포 작가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김영하 작가가 쓴 좥살인자의 기억법좦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를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그 작품 속 화자는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인간 김영하와 작가 김영하가 같은 존재라고 오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아모스 오즈를 포함한 해외의 몇몇 유명 작가들은 자신의 글에서 “당신의 작품에 등장한 여인은 누구입니까?”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지는 독자들을 향해 ‘게으른 독자’, ‘엿보기 좋아하는 수다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 이 내포 작가 개념을 홍상수와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입해본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여기서 우리는 문학에서 작가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 홍상수와 작가 홍상수를 별개의 존재로 구분해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김민희와 불륜을 저지르는 홍상수는 실제 작가에 해당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는 내포 작가에 해당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작품 창작에 있어서 실제 작가와 내포 작가는 결코 같은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인간 홍상수의 부도덕성에 대한 질타는 실제 작가의 차원에만 머물러야 하며, 내포 작가인 작가 홍상수가 만든 영화에까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도덕한 홍상수는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홍상수와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 문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태도야말로 주체로서의 현대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나아가 모두가 “그렇다”라고 할 때 ‘과연 정말 그럴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쉬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네 문화가 한 층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홍상수 영화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때 표정을 굳히기보단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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