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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진실 혹은 거짓 - 타이타닉호 편
박수영 ㅣ 기사 승인 2018-03-18 23  |  599호 ㅣ 조회수 : 260
  1912년 4월 14일 일요일,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에서 출항해 바다 건너 뉴욕으로 향하던 중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이 재난은 약 1,5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97년 타이타닉호를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해 흥행했다. 많은 사람이 영화 속 장면을 통해서 타이타닉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타이타닉호 이야기와,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진실을 알아보자.

  타이타닉호의 침몰 원인은 빙산과의 충돌이지만, 이는 그저 일차적인 원인에 불과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끔찍한 재난이 된 이유는 턱없이 부족했던 구명보트의 수에 있다. 타이타닉호의 총 탑승 인원은 2,224명이었다. 그러나 구명보트는 약 1,100명의 사람만 태울 수 있는 20척이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구명보트에는 정원을 꽉 채우지 않은 채 정원의 3분의 1만 탑승했고, 700명만이 구명보트에 의해 구조됐다.

  승무원들이 타이타닉호에 탑승한 3등실 승객을 구명보트에 태우지 않기 위해 막았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에는 3등실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배 밑에서 탈출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승무원들이 통로를 잠가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처럼 3등실 승객이 탈출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타이타닉호에 3등석 탑승객의 탈출을 막는 문은 없었다.

  객실별로 따지면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1등실 승객이 반드시 목숨을 건진 것은 아니다. 구명보트에 탑승하는 데 있어 3등실 승객이 차별받은 일은 없었다. 선원들은 1등실 승객이건 3등실 승객이건 가리지 않고 구명보트에 태웠다.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3등실이 구명보트에서 가장 떨어져 있고 복잡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출입이 제한된 곳도 많았다. 또, 3등석에는 주로 여러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탑승해 있었다. 당시 미국은 이민법 규정에 따라 검역의 편의를 위해 1, 2등실과 3등실을 분리하게 돼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는 죽음이 올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은 음악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타이타닉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실존 인물이다. 연주자들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전원 목숨을 잃었다. 훗날 이들이 연주하던 악기는 경매에 붙여졌는데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에 낙찰됐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 내용은 가공인물인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처럼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준 인물들이 있다. 이시도어와 아이다 스트라우스 노부부 이야기다. 이미 구명정에 몸을 실은 아이다는 남편이 구명정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가라앉기 시작한 여객선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들은 손깍지를 꼭 끼고 갑판 위에서 담담하게 침몰을 기다렸다. 오늘날 맨해튼 메이시스 백화점 입구의 벽에 부부를 기념하는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함께 인생을 마무리한 부부와 달리, 인생이 바뀐 사나이가 있다. 구명보트로 구조된 일본인 호소노 마사부미다. 그는 극적으로 살아남아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람들을 밀치며 보트에 탔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인터뷰가 밝혀지며 비열한 사나이라고 조롱받았다. 그는 평생 손가락질을 받으며 집안에서만 칩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훗날 타이타닉 공식기록에서 호소노 마사부미가 부정하게 탑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1996년 미국의 로빈 가드너 교수는 타이타닉호 침몰이 보험금을 노린 회사의 의도적인 계산이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지금도 타이타닉호를 둘러싼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타이타닉호 침몰이 화재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타이타닉호는 아직도 수수께끼의 존재다. 진실은 저 너머 대서양 바닷속 타이타닉호와 함께 가라앉아 있다.

박수영 기자

sakai1967@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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