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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무기: 공익제보 vs 악의댓글
기사 승인 2019-06-09 19  |  619호 ㅣ 조회수 : 616

  얼마 전 학과에 한 통의 익명으로 된 제보 메일이 왔다. 우리 학과 소속의 한 학생이 표절한 디자인으로 상품을 만들어서 학교의 마당사업 행사에서 물건을 팔았으니 적절한 처벌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디자인 소스는 원작자에 의해 오픈돼 있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은 위법이었다.



  학과 차원에서 사연을 자세히 알아보니 해당 제보는 총장 핫메일을 비롯한 학교의 여러 관련 부서에 이미 전달된 상태였고, 학교 SNS에도 관련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미 많은 댓글을 통해 그 학생의 인성까지 거론되며 지탄을 받고 있었다. 해당 학생은 이미 표절 행위에 대해 적절한 사과문을 올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얼마 안 되는 수익은 전부 환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악의적인 댓글은 계속됐고, 그 학생의 소속 학과 교수들에게 처벌을 요청하는 제보 메일까지 전달된 것이다. 디자인을 표절한 것은 잘못이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했음에도 그에 대한 익명의 제보자나 익명 댓글자들의 대응은 지나친 것 같았다.



  그 학생의 잘못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일로 그 학생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어 본인의 꿈까지 접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공익 제보는 익명성에 의해 보호돼야 마땅하다. 불이익이 무서워 바른말을 못한다면 자유로운 사상과 의견 소통은 힘들어지고 잘못을 보고도 입을 닫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익명성 덕분에 많은 사회단체들은 억압적인 정부의 감시를 피해 정치적 담론을 자유롭게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손쉬운 의견 교환은 참여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익명이란 점을 무기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군중심리에 편승해 욕설이 섞인 댓글을 남발하는 등 인터넷상에서 많은 문제가 있는 점 또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한 심리학자는 익명의 심리상태를 ‘몰개성화’ 상태라고 했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익명성이란 무기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평소의 도덕관, 가치, 그리고 사회규범에 대한 의식과 책임감을 쉽게 상실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제보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누리꾼들은 이를 쉽게 공유하고, 이를 본 다른 네티즌들은 비난의 댓글을 올리고, 이는 삽시간에 인터넷에 떠돌게 된다. 익명이기에 쉽게 퍼뜨리고, 쉽게 악의적인 댓글을 올리게 된다.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중 어떤 것은 거짓 제보로 들통나기도 하고, 때론 애꿎은 사람이 억울하게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제보가 사실이라 해도 누리꾼들의 악의적인 성토와 인신공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상털기를 해서 여러 게시판에 퍼 나르고, 온갖 비난의 글을 남기고, 전화로 악담을 퍼붓는 건 개인의 사회생활을 침해하는 또 다른 범죄 행위이다. 이는 사이버 범죄이며 사회적 살인행위로서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익명성은 없어져야 하는 건가?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성숙한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익명성은 한편으론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관계인들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각성이 필요하다. 익명성으로 얻게 되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 익명이란 이름 아래 숨어서 비겁하게 올린 글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돼 꽂히며, 그 비수가 언젠가는 본인에게도 꽂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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