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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꽃 피우기 위해 싸웠던, 1980년의 봄
이가연 ㅣ 기사 승인 2022-05-11 13  |  659호 ㅣ 조회수 : 36

  민주화를 꽃 피우기 위해 싸웠던, 1980년의 봄





  5·18 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난 후 유신독재가 막을 내렸다. 이후 국민들은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의 꽃이 필 것을 기대했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해 12월 12일(수)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12·12사태이다. 무력을 사용해 군부와 정치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령을 다시 선포했다. 그리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이전의 군사통치 시대로 돌아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신군부 세력의 군사독재 연장 움직임에도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열망은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이어졌다. 4월, 전국의 주요 대학에 학생회가 구성되고 5월이 되자 대학생들은 계엄령 해제와 유신잔당 퇴진 등 정치투쟁을 전개하며 학교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는 5월 16일(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도청 앞 광장에서 대중 집회가 열렸다. 신군부는 사회의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5월 17일(토)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대도시에 군대를 투입했다. 5월 18일(일), 비상 계엄군은 광주의 각 대학을 장악하고 등교하려는 학생들을 저지했다.



  이에 울분한 전남대학교 학생들과 비상 계엄군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계엄군에게 구타 당한 학생들이 속출하자 학생들은 계엄 철폐와 휴교령 철폐를 요구하며 시내로 진출했다. 계엄군은 이를 진압하며 학생시위대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에게도 폭행을 가하는 등 무차별적인 시위 진압 행태를 보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까지 시위 대열에 합세해 투쟁했다. 5월 19일(월)에는 규모가 5,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워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결국 5월 27일(화) 계엄군의 무력 진압이 감행됐고 5·18 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렸다.



  대중예술에서 그린

  5·18 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로서 대중예술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중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택시 운전사>이다.



  <택시 운전사>는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경험담을 모티브로 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다룬 영화이다. 평범한 택시 운전사인 ‘만섭’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찰해나간다는 특징을 갖는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대사로 유명한 <박하사탕>도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영호’를 주인공으로 해 순수했던 청년이 타락해가는 모습을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준다.



  또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역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렇듯 5·18 민주화운동은 여러 대중예술의 소재로 사용되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우리대학 학우는?



  그렇다면 우리대학 학우들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있을까? 이에 본지는 우리대학 학우들을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는 우리대학 학우 48명을 대상으로, 5월 2일(월)부터 5월 4일(수)까지 진행됐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배운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배운 적이 있다’ 97.9% (47명), ‘배운 적 없다’ 2.1% (1명)로 대부분의 학생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 학우들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잘 알고 있다’ 68.8% (33명),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안다’ 29.2% (14명), ‘잘 모르겠다’ 2.1% (1명)로 과반수의 학우가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학우도 상당수 있었다.



  또, 5·18 민주화운동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잘 알고 있다’ 68.8% (33명),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안다’ 25% (12명), ‘잘 모르겠다’ 6.3% (3명)로 과반수가 5·18 민주화운동의 원인과 결과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과의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즉,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는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또한 학우들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현재의 민주주의국가인 우리나라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던 사건임에도 정치적 시각에 따라 싸움의 소재로만 이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주 역사에 있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80년대 반정부투쟁과 민주화운동의 핵심이 된 운동이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5·18 민주화운동의

  의의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5·18 민주화운동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먼저 5·18 민주화운동은 1950년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이다. 이는 죽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이 수백 명, 부상자만 수천 명에 이르는 정도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19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반독재민주화운동에서 1980년대의 민중운동으로 변화했다. 또한, 민주화운동 기간 중 항쟁의 주체들은 당시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이 진압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국민들의 대미인식(對美認識)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5·18 민주화운동은 이후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 책임자 처리 등의 사후 처리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이어졌다. 1987년 6·29민주화 선언 후 개정된 헌법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실시됐으며, 국회에서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가 개최됐다. 이에 19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됐으며, 1997년에는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의미를 높이 평가받아 5월 18일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또한 2011년에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는 기록 유산 중 현대사 관련 자료 중 최초의 등재 자료이자, 대규모 자료로 총 9개의 주제로 분류돼 기록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며 시작한다. 현재의 우리나라 민주국가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잊지 않고 행사하는 국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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