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생겨난 이후 인간관계 지도는 크게 변했다. 사람들은 SNS에서 서로를 팔로우(Follow)하고, 친구 맺기에 열중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섯 사람을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된다)이 생긴 건 과장이 아니다. SNS가 널리 확산됨에 따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살아가고 있다. 특히 다양한 유형의 SNS를 사용하고, 대외활동 등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20대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SNS 친구 관계를 맺으면서 얕고 넓은 인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인맥과는 주로 SNS에서 활발한 소통을 하게 된다. 새로운 게시물에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며 소통하는 형식이다.
사실 새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서로를 만날 ‘시간’이 필요하고,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할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기에 바쁜 20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인맥들을 감당할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결국 한 번 만났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SNS상의 인맥만 남기게 된다. 이 상황이 반복될수록 전화번호부 목록은 늘어나는데 정작 연락할 상대는 찾기 힘들어진다. 고민이 생겨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거나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놀고 싶을 때, 나와 함께할 사람은 항상 같은 사람이거나 그 수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SNS 인맥 확산의 이면이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진 “인맥 다이어트”는 핸드폰 속 수많은 연락처와 통화목록 사이의 괴리에 허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시작했다. 형식적인 인맥 관리에 대한 피로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주변 인맥을 정리하고 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취업포털 인크루트(Incruit)가 두잇서베이(Dooitsurvey)와 공동 기획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남녀 2526명 중 85%가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46%는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변을 정리할 생각은 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응답도 18%나 차지했다. 인맥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로는 ‘SNS에서 원치 않는 타인에게 내 프로필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1%로 가장 높았다. 이어 ‘내 진짜 관계를 찾아내기 위해’라는 응답이 29%, ‘이름을 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라는 응답이 23%였다. 인맥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최근 3개월 내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삭제하거나 메시지를 보냈을 때 답장이 오지 않는 사람을 차단하기, 아예 번호를 바꾸고 전화번호부의 연락처를 비운 후 다시 저장하기, SNS 계정을 정기적으로 탈퇴하고 다시 만들기 등 각양각색의 방법이 있다.
얕은 관계에 대한 회의감으로 주변 사람들을 정리하고 가까운 사람들만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지속적인 관계에 소모되는 막대한 에너지에 부담을 느껴 한번 보고 다시는 안 봐도 되는 사이인 이른바 ‘티슈 인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일부 증가하고 있다. ‘티슈 인맥’의 대표적인 예로 동호회를 들 수 있다. 한 동호회에 가입해 한두 번 참석한 뒤 다른 동호회에 동참하는 식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꾸밈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인맥 유지에 대한 부담감 없이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0년 10월에는 좥카네기의 인간관계론좦과 좥성공비즈니스를 위한 인간관계와 인맥관리좦가 베스트셀러 도서로 선정됐다. 2017년 10월에는 좥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좦와 좥약간의 거리를 둔다좦가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의 변화는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맥이 곧 능력이다’라는 생각이 주류였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더 넓은 인맥망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인맥관리에 힘쓰는 사람들이 늘자 인맥관리 방법을 알려주는 각종 강연이 열리고, 관련 서적들이 출간됐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인맥관리에 힘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매우 간편해졌다. 그에 따라 정보의 양도 크게 늘며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정보와 몇몇 소수에게만 공개되는 정보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갖기 위해선 소수에게만 공유되는 정보를 얻어야 하고, 그 정보들은 인맥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맥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위 이야기는 큰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도 ‘언젠가 내가 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인맥을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안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일반적으로 성공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훗날 그 사람이 직장 상사가 되거나 거래처 직원이 될 가능성은 우리가 인맥관리에 힘쓰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견문을 넓히고 싶어서 ▲사회생활을 보다 편하게 하고 싶어서 등을 꼽는다.
하지만, 최근 무리한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애써 노력해 사귄 인맥이 제 역할을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 조금만 소홀히 하면 그 관계가 무너지기 쉽다. 따라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 느끼고, 인맥관리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인맥 다이어트’가 성행하고, ‘나’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글 작성자의 연령대는 나이가 어린 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이를 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맥관리에 지치고, 회의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백 명에 이르는 연락처 중에서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은 채 10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며 스스로 ‘인맥거지’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얕고 넓은 관계보다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하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에게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영국 대표로 출연한 안코드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맥 다이어트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그는 19세 때 주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피렌체에서의 노숙생활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맥 다이어트를 통해 무리한 인맥관리에 낭비했던 시간을 다잡을 수 있다. 보다 성숙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기자의 카카오톡 친구는 총 362명으로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정도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최근 일주일간 연락을 한 사람은 단체 채팅방을 제외하고 15명이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약 4%정도다. 페이스북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SNS의 특성상 번호를 주고받지 않아도, 직접 연관돼 있지 않아도 친구신청이 가능해서 페이스북 친구목록에는 카카오톡에서보다 더 무의미한 명단이 많았다.
그래서 기자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지 5년 만에 인맥 다이어트를 감행해 봤다. 우선, 인맥 다이어트 시작 전 페이스북 친구는 총 479명이었다. 친구목록을 살펴보니 가족들과 중·고등학교 선후배들, 동창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친구목록 중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대외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연락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다수는 말 한 번도 섞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이름만 봐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또한, 왜 친구 추가가 돼 있는지 알 수 없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주로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거나, 무슨 일이든 연락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친구 끊기를 하니 약 180여명이 친구목록에서 삭제 돼 친구가 291명으로 줄었다. 클릭 한 번으로 끊어질 인연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앞으로 연락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름뿐인 친구들이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인맥 다이어트를 마친 후 가족들과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안부문자를 보냈다. 대화의 시작이 평소와는 사뭇 달랐지만, 어색해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또한, 오랫동안 봐온 사이지만 최근 서로의 일상이 바빠 연락을 못했던 친구들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길게는 한 달 동안 연락이 끊겼었지만 서로의 근황을 묻고,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공유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기자는 인간관계에 있어 정도가 무엇인지는 확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고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문자 한 통 보낸다면 우리의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권나경 기자 mytkfkd1109@seoultech.ac.kr
주윤채 기자 qeen0406@seoultech.ac.kr
김여은 디자인기자 ykim96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