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부양의무제
원용찬 ㅣ 기사 승인 2017-06-04 22  |  589호 ㅣ 조회수 : 264
비 내리는 광화문 광장 앞, 몸이 불편한 노인이 ‘부양의무제 폐지’란 팻말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팻말에는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간단한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우산도 없이 그는 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을까요?

부양의무제란 수급 대상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제도입니다.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자로서, 수급권자의 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해당됩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할 때 부양의무자 중 한 명이라도 부양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부양의무제를 알기 위해서는 기초생활수급제도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 수준이 2016년 기준 484만 7,468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만 수급자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부양의무자라도 일정한 재산이나 소득이 있을 시 수급자에서 제외되는 겁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연락이 두절됐거나, 가족관계가 사실상 끊어진 이들에 대한 대책이 없습니다. 이를 증명하려면 가족 당사자가 직접 관계 기관에 스스로 부모나 몸이 불편한 가족에 대한 부양 거부 의사를 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극빈층은 100만 명이 넘습니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제는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그 요인으로 꼽힙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노부모를 공양하는 것을 미덕이라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의식은 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응답은 2002년 70.7%에 비해 2014년 30.8%로 40%p가량 감소했습니다. 오히려 정부에게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증가했습니다.



이 문제가 조명된 계기는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입니다. 2014년 송파구 석촌동에서 세 들어 살던 세 모녀가 경제난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인데요. 이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빈곤에 시달렸지만, 기초생활수급자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했더라도 자격에 해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수급자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박근혜 정부는 법안을 개정해 그 기준을 일부 완화했습니다. 그 개정된 법안이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입니다. 하지만 이 법도 교육급여에 한해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부양의무제는 곧 폐지될 전망입니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했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정치권에서도 개정 시도가 이어진 바 있습니다. 정의당 윤소화 의원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수급권자 권리 확보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권 의원의 개정안에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모든 급여와 주거급여법상 급여에 대한 부양의무 적용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권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 나와 이 법안을 설명하면서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수급희망자가 소명해 수급자격을 인정받아야 하므로 오히려 가족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최우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어떤 사람이 스스로 생활이 어렵다고 신청하면 정부가 그 실태를 조사해 먼저 지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후 만약 부양의무자의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그 지원비를 사후 징수하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어떤 정책이 빈곤층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잘 파악하고,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길을 내어줄 수 있도록 좋은 법안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원용찬 기자 YongChan@seoultech.ac.kr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종호 I 편집장: 김선웅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