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프로듀스 시리즈는 일본의 AKB48의 총선거를 모티프로 제작됐다. AKB48 총선거에 출마하는 AK 그룹의 소속 멤버만 400여 명으로, 싱글이 나올 때마다 모두 활동할 수는 없다. 이에 16여 명의 선발 멤버만이 총선거를 통해 AKB48을 대표해 방송 활동을 한다. 이러한 두 포맷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근 10년간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자체적인 차별화 전략을 세우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차별화를 만드는 요소는 ▲지원대상을 일반인으로 할 것인가 ▲멘토 멘티 시스템을 도입할 것인가 ▲우승자를 심사위원이 선정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의 투표로 정할 것인가 ▲분야를 어느 것으로 할 것인가 ▲노래라면 발라드, 록, 트로트 등 어느 것으로 할 것인가 등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 속에서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끄는 선택도 실패로 이끄는 선택도 존재할 것이다. 프로그램을 좌지우지 하는 이러한 선택에는 시대의 흐름과 대중들의 동향을 잘 살피는 안목이 필요하다.
오디션 열풍의 시초는 슈퍼스타 K다. 슈퍼스타 K는 한국을 대표하는 K를 찾는데, 주로 가수를 찾는 스타 발굴 프로그램으로써 시즌1부터 서인국, 허각, 존박, 장재인, 울랄라세션, 버스커버스커, 로이킴, 정준영 등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특히 윤종신의 「막걸리나」를 버스커버스커 식으로 편곡했던 무대는 전국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슈퍼스타 K처럼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평가하고, 선택 또는 탈락 시키는 유형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뤘다.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진화했다. 진화의 시작은 MBC에서 방영한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었다. 위대한 탄생에서는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평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이뤘다. 우승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참가자의 역량을 더 발전시켜 가수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감동을 샀다.
위대한 탄생은 단순히 합격, 불합격을 따지는 프로그램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평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탄생이 배출한 스타로는 우승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통해 인기를 끌은 에릭남과 시즌 3 우승자 한동근 씨가 있다.
SBS에서 방영한 K-POP스타는 SM, YG, JYP의 대표들이 직접 심사위원을 맡아 자신의 소속사로 캐스팅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대형기획사에서 진행하는 만큼 그 인기, 관심 모두 대단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박지민, 이하이, 악동뮤지션 등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K-POP스타는 심사위원들의 음악 선호 성향이 심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볼 수 있었다.
보컬의 역량을 중점으로 평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외에도 랩이나 밴드를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타나기도 했다. 쇼미더머니는 기수별로 Mnet에서 열리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로꼬, 비와이, 송민호, 바비 등의 실력파 랩퍼가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이들은 방송 및 음악작업으로 스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생소하던 ‘힙합’이라는 장르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울어도 돼 산타는 없거든’ 이라는 랩으로 화제가 된, 쇼미더머니 시즌6에서 3위를 차지한 우원재 씨는 올해 우리대학 축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탑밴드’는 KBS 2TV에서 방송됐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탑밴드’는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밴드를 준비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호평을 얻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선택하고 탈락시켜 합격과 불합격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정형화된 오디션의 틀을 깨고 나온 것이 바로 프로듀스 101이다. ‘아이돌은 심사위원이 아닌 내가 만든다’라는 차별화 전략이다. 국민이 프로듀서가 돼 자신의 아이돌을 직접 뽑도록 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이자 캠프에 입소해 생활하는 합숙형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얻었다. 또한 전문가 선생님께 직접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하는 ‘연습생’이라는 점이 다른 오디션과 차별되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오아이, 워너원 등을 배출했다.
2015년 시작한 이래 프로듀스 101은 시즌 1·2에 걸쳐 많은 인기를 얻었고,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뽑힌 11명의 아이돌을 그룹으로 만들어냈다. 프로듀스 101 시즌 3는 일본의 일기 걸그룹 AKB48과 함께 기획한 ‘프로듀스 48’로 진행돼 지난주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시청자들을 ‘국민 프로듀서’로 호명하며, 11명의 아이돌 최종 멤버 선택과 데뷔 싱글의 프로듀싱을 시청자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 나간다는 컨셉을 유지한다. 국민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시청자들은 특정 연습생을 육성해 아이돌로 데뷔시키기 위해 투표하고 연습생들의 동영상을 시청하며 특정 연습생들의 순위를 높이고자 홍보한다. 시청자들의 방송 콘텐츠 참여의 수준을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 내부에 한정짓기보다는 또 다른 미디어를 통해 확장시키며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만든다. 이런 형식은 결국 시청자들의 ‘참여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데 시청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연습생의 팬덤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는 등, 팬의 참여가 방송의 콘텐츠 소재가 되어 다시 유통되고 있다.
프로듀스 101의 콘텐츠는 기획자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시청자들의 주체성과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완성된다. 특히 시청자 스스로가 미디어 장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2차 콘텐츠 제작 및 유통 환경이 존재한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들의 데뷔를 위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SNS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유통시킨다. 이에 제작자들은 더 많은 프로그램의 홍보와 확산을 위해 본 프로그램 이외에 웹에서 부가적으로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영상들을 제공한다. 연습생의 ‘일대일직캠’은 아이돌의 팬들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이돌 멤버 한명의 무대에만 집중해 무대가 끝날 때까지 한 명만 찍은 영상이다. 이를 웹 사이트에 업로드하고 실시간 조회 수를 통해 화제성을 확산시킨다. 이를 바탕으로 팬들은 새로운 콘텐츠들을 재생산하면서 또 다른 팬덤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팬들이 직접 만들어 나가는 팬의 참여문화는 기획자들이 단순히 팬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동적이었던 과거의 시청자들과는 다르게 내 손으로 직접 나의 가수들을 만들어 나가는 시청자들이 창조한 참여 문화를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제 단순히 팬을 소비자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 팬들의 자발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산업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팬들이 만들어 나가는 참여가 단순한 팬덤의 확산을 넘어 새로운 문화의 창조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과정이 빛나야 하는데 합격과 탈락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만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으로 실력과는 무관한 순위경쟁을 하는 경우가 흔하고 그에 따라 공정성과 선전성에 대한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자극적인 영상을 위해 일명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리는 편집 방식으로 개개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누구든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데 당연한 욕구를 ‘욕심’처럼 묘사한다거나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상황을 양보하면서 ‘보살’처럼 묘사하는 것도 악마의 편집이다. 음악의 진정성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단순히 시청률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고, 참가자 개개인의 아픔에 대한 배려보다는 아픔을 이용해 개인의 인생 역정 스토리를 수단화하는 것에 그친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단순히 누가 떨어졌나에 대한 관심만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 모두 평가단의 입장이 돼 참가자의 음악을 재단하기에 바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평가하는 식의 형식을 갖춘다. 하지만 이러한 진행방식이 과연 진정한 가수를 양성하는데 도움이 될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심사위원의 직업이나 성향에 따라 합격자 선발 진행 양상이 다르다. 가수 심사위원의 경우 ‘가창력’을 우선시한 반면, 제작자 심사위원의 경우 참가자의 ‘개성’과 ‘매력’에 우선시한다. 이처럼 각자 심사위원마다 자신이 원하는 참가자의 특정 성향이 있어 합격자 선발의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관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심사기준을 심사위원들이 요구하는 ‘스타성’과 ‘가창력’이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합격자를 선정할 수 있는 ‘인기 투표’로 변경했다. 이럴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 모르나, 정작 미션을 잘 수행한 참가자가 합격하는 것이 아닌 문자투표를 많이 받은 참가자가 합격하는 단순 ‘인기투표’가 돼버려 문제는 또 다시 원점이 돼 버린다.
프로듀스 101시리즈는 101명의 연습생을 모아놓고 그들의 데뷔 기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형식의 프로그램이기에 작은 요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실력과는 별개로 외모, 화술 등 연습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중심으로 투표가 몰리기도 한다. 참가자는 팔려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하게 됐다. ‘얼굴만 보고 뽑았다’라는 말을 듣고 있으면 실력은 뒷전이 돼버렸다는 사실에 허무해진다.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점은 카메라에 잡힐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지 못한 수많은 연습생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투표가 몰릴 수 있는 기회인 무대나 연습과정에서조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연습생들이 많다. 시청자들에게 눈에 띄어 인기를 얻는 것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마당에 자신을 어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 놓인 연습생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도전을 끝마친다. 이렇듯 아름다운 도전으로 마무리돼야 할 그들의 노력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강진희 기자
hee06024@seoultech.ac.kr
김수진 기자
waterjean@seoultech.ac.kr
남윤지 기자
libera3395@seoultech.ac.kr
현예진 기자
2sally2@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