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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그림자
윤성민 ㅣ 기사 승인 2017-09-03 23  |  590호 ㅣ 조회수 : 174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있다. 약 400년 전 광해군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다. 그가 펼친 중립외교는 우리나라의 외교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 또한 힘겹게 보위에 올랐으나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는 그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담처럼 비극적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극에서 그의 극적인 삶을 다뤘다. 비운의 개혁군주로 굳어진 광해군. 하지만 95% 이상이 광해군 때 쓰인 ‘광해군일기’ 속 광해군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야말로 암군(暗君)이었다.



개혁군주 광해군?



그의 개혁정책으로 알려진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중립외교와 대동법이다. 먼저 중립외교는 명(明)과 후금(後金, 후에 청으로 국호를 바꿈)사이에서 조선이 중립에 선 것을 말한다. 즉,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전쟁을 피한 것이다. 중립외교 자체는 광해군 만의 업적이다. 적어도 인조처럼 후금과의 전쟁을 초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동법은 광해군의 업적이라 보기 힘들다. 먼저 대동법은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을 쌀이나 동전 등으로 대신해서 내는 제도였다. 또한 땅이 많을수록 많이 내는 제도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대동법 시행에 소극적이었다. 그는 경기도에만 시범적으로 대동법을 실시했다. 심지어 광해군은 대동법 시행 후, 백성들의 쌀과 삼베를 가로챈 현감에 대한 처벌도 주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정책은 힘을 잃었고, 결국 광해군 5년에 대동법은 흐지부지 됐다.



강박에 갇힌 임금



앞에서 보듯, 광해군을 개혁군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는 폐위된 군주다. 그가 폐위된 이유는 패륜과 옥사였다. 그는 자신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의 죽음을 사실상 방조했고, 자신의 새어머니인 인목대비까지 폐위로 몰았다. 이 외에도 그는 잦은 궁궐공사로 민심까지 잃는다. 그가 이토록 무리수를 둔 이유는 세자시절 겪은 아픔 때문이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비인 공빈 김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적장자가 아니지만 임진왜란 때문에 어물쩍 세자가 됐다. 이윽고 광해군은 약 1년 반 동안 노숙생활과 다름없는 분조(分朝, 의주로 간 선조를 대신하는 임시조정)활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선조의 질투와 견제였다. 더구나 광해군보다 18살 나이가 어린 새어머니 인목왕후(인목대비)가 선조의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했다.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겨우 보위에 오른 그는 자신의 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됐다.



그는 궁궐 증축으로 왕권을 과시했다. 광해군은 경덕궁(경희궁), 인경궁, 자수궁 등을 지었다. 이런 궁궐을 짓는데 나라 전체에 1년 동안 쓸 철을 탕진했다. 심지어 국고의 15~20%가 이 궁궐 공사에 쓰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또한 광해군은 옥사(獄事)를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더구나 이런 옥사는 광해군을 지지하는 당파인 ‘대북파’의 독주로 이어졌다. 견제할 세력이 사라지면 부패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대북파는 오히려 광해군의 왕권보다 더 커져버렸다. 이런 독주의 악순환은 결국 반정으로 그 종지부를 찍었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광해군을 개혁군주로 보는 것도 다양한 시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광해군은 개혁군주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실패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윤성민 기자 dbstjdals@seoultech.a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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