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큰 원인으로 농촌의 낙후된 생활환경을 꼽을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농촌은 문화·교육·의료를 비롯한 다양한 인프라가 도시보다 현저히 부족하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영화관(CGV 기준)이 서울·경기에는 총 66개의 지점이 있다. 이는 강원도(4개), 충청도(9개), 전라도(13개), 경상도(14개)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수치다. 초등학교 수를 비교했을 때, 서울·경기가 총 1,844개의 학교를 보유하고 있지만 강원도(351개), 충청도(666개), 전라도(849개), 경상도(971개)의 학교로 교육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복지 인프라에서도 차이는 존재한다. 의료기관 수를 비교했을 때, 서울·경기에는 40,558개의 의료기관이 자리해 있지만 강원도(2,440개), 충청도(6,103개), 전라도(6,966개), 경상도(9,462개)의 의료기관이 존재한다. 4개의 도 단위 자치 단체를 합쳐도 수도권(서울·경기)보다 훨씬 적다.
결국, 즐길 만한 문화가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 치료를 위해 도시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은 사람 모두가 농촌을 떠나 도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촌 향도는 자연스레 농촌의 퇴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년층이 있다. 도시 경제 건설의 핵심에 해당하는 청년층이 일자리 및 현대적 문화 결여 등 다양한 이유로 농촌을 떠나면서 농촌인구의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 농가 중 가구주 연령이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의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청년층이 없으니 인구를 늘리려면 도시민을 유입하는 방법뿐인데, 그마저도 농촌의 낙후된 생활환경 탓에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업이 주가 되는 농촌에서 생산을 담당할 청년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농촌은 현재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다.
농촌은 지역 발전에 있어 필요한 청년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흔히 농지 경작에 쓰이는 영농 방식이 육체적 수고가 많이 필요한 재래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영농기법이 빠른 속도로 현대화되며 농지 경작이 더욱 쉽고 편리해졌다. 논과 밭을 갈 때 이용하는 4륜 트랙터는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고, 콤바인 또한 높은 농가 보급률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무인 헬기와 전동 퇴비살포기 등 첨단 기술과 결합한 사례까지 등장하며 현대식 영농기법을 더 고도화하는 중이다. 상주시는 발전하는 농기계를 선보이기 위해 매년 ‘상주 국제 농업기계 박람회’를 개최한다.
청년층이 귀농을 망설이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 방식으로 지역별 분산 및 특화가 아닌 전략 거점 집중 투자를 선택했다.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서울과 수도권에 비대하게 몰려 있다. 반면, 농촌은 경제적 낙후지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청년층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농촌 자치단체가 경제적 지원 사업을 실시 중이다. 유수의 농촌 자치단체가 귀농인들에게 정착장려금을 지급하고 영농 교육과 자녀 지원 사업, 건축 설계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전북 무주군은 가장 왕성한 귀농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생활보조금 지급은 물론이고 신혼부부를 위한 결혼 장려금과 자녀 양육비까지 지원한다. 더불어 전통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 상품권과 군내 공공시설 우대증 발급, 주택 신축을 위한 건축 설계비 지원 등 다방면에서 도시민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
정부도 농촌에 젊음을 더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의 귀농귀촌 종합센터는 귀농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100시간 이상의 귀농 교육을 이수할 경우 최대 3억원의 귀농 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해준다. 또, ‘귀농인의 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예비 귀농인들이 현지에 머물며 미리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이런 다양한 지원에 힘입어 실제로 귀농을 결심하고 농촌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청년들이 있다. 본지가 만난 박화영 씨(전라북도 익산시) 또한 농촌에서 새로이 꿈을 찾은 젊은 귀농인이다.
지난해 4월 귀농을 결심하고 전북 익산으로 내려온 그녀는 “서울에서 살았을 때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도 지쳐 숨 쉴 구멍을 찾아 내려왔다”며 귀농한 이유를 전했다. 그녀는 “(남편과) 서로 너무 바쁘고 피곤해 잦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며 “임신을 한 상태라 직장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가정에도 불만족스러워 모든 게 짜증났다”고 도시 생활을 회상했다. 귀농 이후의 생활에 대해 묻자 “10점 만점에 아직까지는 10점을 주고 싶은 정도”라며 “남편과의 사이도 돈독해지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아기한테만 집중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음꽃을 피웠다.
끝으로 그녀는 “경제적인 부분은 정착 보조금이 나와서 풍족하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만족스럽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생활의 편리함이나 풍요로움은 도시가 확실히 뛰어나 장을 보거나 각종 업무를 볼 때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며 아쉬움 또한 내비쳤다.
지난 광복절 기자는 전북 익산에 위치한 대학 동기의 고향에 다녀왔다. 친가는 어촌, 외가는 도시인지라 농촌과는 일면식이 없던 기자는 처음 만나는 농촌 정경이 신기한 한편,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동기의 집에 도착하자 바로 앞에 펼쳐진 푸른 논과 여러 비닐하우스를 만날 수 있었다.
흙 내음을 맡으며 푸짐하게 차려진 시골 밥상을 먹을 땐 집밥의 진수를 느꼈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들로 차려진 반찬은 든든한 밥상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열무 경작이 한창이었다. 본 잎이 가득 나오면 수확이 머지않았음을 뜻한다는데 열무는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더위는 물론 각종 잡초와 병충해에 강해 여름철에 경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동기의 집에서도 4개의 비닐하우스에서 열무를 경작 중이었다.
기자는 열무밭에 들어가 흙 섞기 작업을 도왔다. 흙 섞기는 목초액을 흙에 뿌린 후 목초액에 젖은 위의 흙과 젖지 않은 아래의 흙을 호미로 섞어주는 작업이다. 비닐하우스 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정도 흙 섞기에 집중하자 금세 땀이 흐르고 허리가 아파왔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에 이런 육체적 수고와 오랜 시간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해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확의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클지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열무밭에서의 흙 섞기를 끝내고 집 앞 논으로 나가니 길게 뻗은 벼들이 푸른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름 논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약치기다. 벼는 병충해에 취약해 다양한 해충약을 이용해 방지할 필요가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도열병과 문고병의 약 치기가 마무리 되고 흑명나방 대비 약 치기를 할 차례였다. 흑명나방은 벼 잎에 알을 낳고 부화까지 진행하면 애벌레가 그 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벼에 치명적인 병충해다. 기자는 수로에 흑명나방 약을 풀고 물과 희석해 논으로 흘려보냈다. 맛있는 쌀을 수확하기 위해 이렇게 힘든 작업을 더운 여름 몇 차례나 반복해야 한다니 열무밭에 이어 농부들의 수고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논 옆 한 켠에는 고구마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9월 중순 수확을 앞두고 있지만 올여름 비가 부족해 수분 공급을 위해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기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으로 차근차근 해야만 하는 농사 작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고된 하루를 보내서인지 일과가 끝난 후 금방 잠이 들었다. 기자는 농촌에서 하루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며 감상에 잠겼다. 도시의 생활양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시골을 경험하며 그동안 도시의 풍요와 편리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푸른 풍경을 바라보며 일상을 환기하는 것이 꽤나 가치 있고, 도시민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김주윤 기자
yoon6049@seoultech.ac.kr
한혜림 기자
hyeeee14@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