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를 읽는 일이다. 한국문학을 전공한 내가 〈토지〉를 통해 마음을 다스려 온 것은 30년도 더 된 대학 시절부터의 일이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번 이상은 읽은 것 같다. 줄거리를 다 아는데 재미가 있느냐, 그 긴 이야기를 언제 다 보느냐는 등 많은 질문을 듣지만 나는 그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감동적 영화를 몇 번씩이나 보는 사람도 있고, 김연아 선수나 2002 월드컵 경기도 반복해서 보지 않는가, 소설도 마찬가지다.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토지〉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처음 〈토지〉를 읽을 때에는 국문학도로서 이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라든가 인물의 형상 등에 집중해 분석대상으로서의 〈토지〉와 마주했다. 이후 몇 번을 거듭해 읽는 가운데 아주 구체적인 독서 기준과 방법을 한 가지 정해 놓고 그에 따라 소설을 읽어 나갈 수 있게 됐다.
먼저, 〈토지〉가 서술하고 있는 기간이 1894년 갑오경장과 동학 농민전쟁 시기부터 1945년 8월 해방에 이르기까지임을 생각하며, 근대사를 서술하는 일종의 역사 교재로 읽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특히 역사적 사건의 중심 담당계층의 살아있는 반응을 보는 것 같아 기존의 역사서를 읽는 것과는 아주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언어적 관점에서 전 편에 펼쳐 있는 경상도 사투리와, 2부 이후 여러 인물들의 간도 지역에서의 삶을 그리는 가운데 등장하는 함경도 사투리 등을 언어적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음미하고 공부하며 읽는 방법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가 어렵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지방 언어의 맛을 알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고 싶으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충청도 사투리를 알고 싶으면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을 읽어 보면 된다).
가장 최근에는 〈토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선한 인물과 가장 악한 인물의 순위를 매긴다면 어떤 인물을 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토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최참판 댁의 재물을 노리고 최참판 댁의 당주인 ‘최치수’를 살해한 ‘김평산’이나,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하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김평산의 큰 아들 ‘김거복(김두수)’을 꼽을 것이다. 어쩌면 최참판 댁의 재물을 실제로 가로챈 ‘조준구’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토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최참판댁에서 소년 시절을 하인처럼 지내다가 상전인 ‘최서희’와 결혼하여 최참판 댁의 당주가 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길상’이 세상을 살며 만나 본 가장 착한 사람 다섯 명 중 한 사람으로 ‘김한복’(김평산의 아들이자 김거복의 동생)을 꼽는다. 같은 핏줄이자,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만 전혀 다른 품성을 지녔고 아비와 형의 죄업을 갚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을 돕기도 하는 인물이다.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없이 많은 정보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모든 일을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만의 책을 정하고 그 속에서 많은 경험과 함께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