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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노마드(Nomad)
김성수 ㅣ 기사 승인 2018-10-22 16  |  608호 ㅣ 조회수 : 713


김성수 교수

(기초교육학부)




  조선시대 왕실의 사냥터였던 서울숲 한켠에 수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대한제국이 서울에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1908년 완공한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100년을 기념해 개장한 시립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제1정수장 송수실 건물과 현존하는 가장 오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완속여과지가 있다. 이 중 본관인 송수실 건물에는 뚝도수원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대한제국기 서울 상수도 사업의 시작 전후를 비교해 물 공급을 둘러싼 서울의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시실을 살펴보던 중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뚝도, 뚝섬, 독도, 독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뚝섬의 옛 명칭과 유래에 대한 설명이었다. 좬조선왕조실록좭에 의하면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여러 상징물 중 독(纛)이라는 군기(軍旗)가 있었다. 때때로 왕이 수렵할 때 독을 세워 그곳에서 왕이 수렵을 하고 있음을 널리 알렸다고 전한다. 이를 통해 뚝섬이 조선시대 왕의 수렵지 중 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독이라는 군기를 뚝이라고 발음하면서 여러 명칭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전시물에는 친절하게도 독을 세우고 행차하는 왕의 모습을 소개했는데 독의 형태를 보는 순간 필자는 이것이 몽골 초원의 여러 정치 집단이 사용했던 군기 ‘톡(tugh)’임을 직감했다. 긴 장대 위에 때로는 창을 꽂고 그 아래 검은 동물의 털을 길게 늘어뜨려 칸의 위엄을 드높였던 바로 그 톡이었다.



  7세기 몽골 초원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한 투르크는 톡을 중앙아시아 전역과 지중해 동부 지역 오늘날 터키로 전파했다. 몽골의 후예들은 이를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 무굴제국으로 전파했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도 등장할 줄이야. 초원에서 칸을 상징했던 기물이 몽골과 인연을 맺었던 고려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전래된 것이었을까? 그런데 독과 톡의 인연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중국령 몽골인 내몽고몽고족자치구(內蒙古蒙古族自治區)에 가면 오르도스라는 지역에 칭기스칸의 사당이 있다. 여기에는 술드(sude)라고 불리는 유서 깊은 톡이 있는데 이는 칸을 보호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용맹한 기운이 형상화된 존재로 이해돼, 그 자체가 칭기스칸과 함께 제사의 대상이 됐다. 영원한 하늘의 기운을 받들어 땅 위의 군주가 된 몽골의 칸을 보호하는 이 신성한 군기는 조선의 왕자 이방원이 국왕에 등극한 것이 하늘의 뜻임을 알리기도 했다.



  조선 초기 현재 광화문 남쪽에 위치했던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내에 독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1402년 3월 한밤중 갑자기 독이 스스로 다섯 번이나 일어났고 곁에 있던 북이 둥둥 소리내며 크게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상서로운 징조를 두고 태종의 등극이 하늘의 뜻임을 널리 알린 것이라 해석했으니, 하늘의 뜻을 전달하고 왕을 보호하는 신이한 존재로서 독의 의미는 몽골의 톡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 북방 초원 세계는 항상 빠지지 않는 소재다. 그러나 우리 고대사는 사료의 부재라는 숙명을 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성을 잃고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최근 몽골 초원은 물론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역사, 언어, 고고, 민속 등 여러 방면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품어 온 다양성의 기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 우리 안에 노마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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