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된 종전체제나 완전한 비핵화는 물론 선언보다 훨씬 어려운 이후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은 이전에도 봤듯이 그 선언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의 선언은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것들을, 전세계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 이전 어느 때보다 현실성이 크다고 보인다. 더구나 이미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의 대외공개, 남북한 시간 일치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기에, 이런 관측에 대해 소망을 사실과 뒤섞은 어설픈 희망이라고 할 순 없다.
이번에 남북의 정상이 이룬 남북관계 진전을 보면서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북이 서로 모르고 있다는 식의 상투적인 일반론을 반복하려는 게 아니다. 논지를 뚜렷하게 하기 위해 좀더 대비해 말하자면, 북한은 남한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지만, 남한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가령 남한과 북한을 오래 담당했던 영국인 기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철통 같은 폐쇄 체제로 인해 북한주민이 남한에 대해 먹통일 거라고 믿지만, 그들 중 아주 많은 수가 남한의 TV 프로그램을 보고 남한의 노래를 mp3 플레이어에 담아 일상적으로 듣고 있으며, 남한의 경제는 물론 유행하는 패션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고 있다고 한다. 반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정치나 경제, 사회나 문화 어느 것도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며, 사실 별로 관심도 없다. 남한에서 북한을 진지하게 다룬 프로그램이나 책, 동영상 등은 너무 적으며, 그나마 있는 것이라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빗나간 것이어서 오히려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사실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지만, 관심 없는 이들 아니면 잘 모르는 것들 또한 많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렸던 대기근 이후 국가의 배급체계에 기대어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이후,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했고, 이는 국가적 통제를 벗어나 시장과 교환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에 봉사할 의무에서 면제된 가정주부들이 비공식경제의 주역이 됐고, 남편 월급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벌게 되면서 전통적인 부부관계, 남녀관계도 변화되고 있다. ‘장마당’이라 불리는 시장경제를 저지하는 것은 생존을 저지하는 것이 되기에 북한 당국은 그것을 눈감으며 방치해야 했고, 그 틈새로 중국이나 한국의 상품, 여러 가지 문화상품에 한류문화까지 광범하게 스며들어 갔다. 이를 통해 돈을 번 신흥 부유층은 새로운 중산층 집단을 형성했다. 휴대전화의 보급과 국경지방에서 중국의 통신망을 이용한 외국과의 통신은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새로운 연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를 두고 흔히 하듯 체제 변화 욕망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지만, 북한의 지도층으로선 밑바닥에서 진행되는 시장자본주의의 확산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통제력을 유지하는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앞의 기자들은 김정은은 ‘개혁가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아마도 이것이 북한이 지금 평화체제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잘 알려진 이런 사실조차 대부분 잘 모르는 것을 단지 무관심 탓이라고 할 순 없다. 어쩌면 그동안 반공주의와 냉전문화 속에서 형성된 오래된 북한에 대한 이미지, 군사적 맥락을 지반으로 형성돼 온 ‘북한학’, 그리고 틈만 나면 단기적인 정치적 목적으로 외치는 색깔론적 구호 같은 것들이 함께 직조한 커튼에 너무 쉽게 우리의 감각이나 지성을 맡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반공이데올로기의 교정을 위해 고창되던 ‘북한 바로알기’ 또한 북한의 실상을 아는 데 중요한 장애였을 것이다. 그 장애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냉전체제에 갇혀 있는 셈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냉전의 종식이 다가오는 이 마당에 우리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가둔 이 냉전을 끝내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