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은 어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해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엄중한 처벌을 외치곤 한다.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에 사로잡혀 결과만 보고 상황과 과정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스스로나 조직, 정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구조는 도외시한 채 현장관계자 처벌에만 열을 올리면서 희생양을 찾기까지 한다. 때로는 보복감정을 정의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모두 정의에 반하는 접근이다.
안전사고를 일으킨 자를 엄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엄벌 주장이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버리는 미봉책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처벌하는 것만을 전부라고 포장하면서 실제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애써 무시하거나 덮으려는 ‘구조맹’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이 진정한 정의일까. 정의를 외치는 것만으로 정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사건·사고 때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엄벌화 주장은 범죄자에 대한 신자유주의 관점과 연결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사조에서 위반자는 이해득실을 계산해 자유로운 판단에 근거해 해악을 일으키고 그것에 전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자율적 주체로 취급된다. 따라서 그가 위반에 이른 개별적 원인을 이해해 그것을 개선한다는 접근은 없고 징벌적·응보적인 처벌만이 강조된다. 엄벌주의가 진정한 정의와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가 어떤 특정인의 불안전 행동이 관여해 발생한 재해 또는 중대사고에 직면했을 때, 정의로운 대응을 위해서는 치환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를 동일한 활동분야에서 동등한 자격과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치환하고 사건의 전개양상 등을 고려할 때 그 대체된 개인이 다르게 행동했을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조차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은 시스템적 결함을 모호하게 하고 희생자를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상황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은 개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겠지만, 개인의 위반에는 잘못된 시스템이 배경으로 영향을 미친 경우도 적지 않다.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지우는 데만 골몰한다면 시스템 설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럴 경우 역량을 갖춘 선량한 사람들을 실수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없게 된다.
형법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스트가 “최고의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이라고 주장한 것도 처벌 위주의 대증요법만이 아니라 사회정책이라는 근본적 해결방안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실질적 정의라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의는 정치영역에서만 실현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도 응당 실현돼야 할 보편적 가치이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내고자 하는 태도와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의의 실현 역시 의욕만이 아니라 올바른 접근방법이 함께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