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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기사 승인 2019-10-20 15  |  623호 ㅣ 조회수 : 161

  촛불이 또 한 번 광화문을 데웠다. 연령, 성별, 직업이 다양한 이들이 한곳에 모여 ‘조국 퇴진’을 외쳤다. 조국 전 장관이 강단에 섰던 서울대에서 시작한 시위는 서울대 밖의 국민들에게 까지 번졌다. 결국 지난 14일(월) “저는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이라는 내용의 사퇴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적도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대중의 집결은 언제나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는 시위라고 불린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시위로 홍콩 시위를 꼽을 수 있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이 시위는 6월부터 대 국민적 시위로 바뀌어 규모와 참가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홍콩인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은 ‘홍콩 송환법’이다. 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에서도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 법으로 인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소환할 수 있게 될 우려가 있다. 이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자국의 자치권에 대해 민감한 홍콩인들을 자극했다. 시위가 계속해서 거세지자 전 세계가 홍콩에 주목했고 결국 홍콩 정부는 이 법을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또 많은 시위를 통해 사회는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유명한 시위의 예로는 프랑스대혁명, 그리스 폭동, 4·19혁명 등이 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국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당시 왕조를 무너뜨렸다. 또 혁명 이후 프랑스 국기에는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는 더해진다.



  ‘많은 사람이 공공연하게 의사를 표시해 집회나 행진을 하며 위력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시위는 행진, 집회, 피켓, 농성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광우병 사태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은 ‘촛불집회’ 형태로 시위를 진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도 촛불집회로 진행됐다. 당시 외신들은 이 시위를 보고 ‘성숙한’ 시위라고 평가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당시 시위도 초반에는 다소 과격한 형태를 보였다. 하지만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등을 보호하자는 여론이 형성돼 큰 탈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습의 시위에 대해 회의를 표하는 입장도 있다. 시위하자고 모여 웃고 떠들기만 한다면 어떤 누가 시위에 관심을 두고 심각성을 느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또 평화 시위가 유지되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다. 홍콩 시위에서 ‘평화’를 외치던 사람 중 한 여성이 경찰이 던진 탄환에 눈을 맞은 이후 시위대의 감정이 격해서 평화가 깨지고 말았다. 이처럼 사람들이 한뜻으로 한 곳에 모이고 나면 작은 계기에도 쉽게 격분하기 때문에 평화가 지속되는 것이 어렵다.



  2003년 개봉한 영화 〈몽상가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위의 방식에 대한 등장인물 간의 대립이 등장한다. 이사벨과 테오, 매튜는 온 세상에 그들 3인이 전부인 듯 같이 생활한다. 특히 영화, 음악, 책과 같은 예술적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한다. ‘꿈’ 속에 있는 듯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들의 마지막은 헤어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서 화병을 깨부수며 혁명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생긴 의견 대립에 결국 각자의 길을 걷는다. 폭력적 시위를 지향하던 이사벨과 테오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고 한다. 반면 매튜는 “이건 그들이나 하는 짓이야 우리는 머리를 써야 해”라며 두 사람과 멀어진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무력시위를 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며 평화 시위를 한다고 해서 소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는 폭력보다는 대화가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국 퇴진을 외치며 경찰과 시민이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죄 없는 대중들끼리 치고받아봤자 손해도 그들 몫이고 정작 책임의 대상은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이 한 곳에 모인 것만으로도 그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성숙한 대중이 모였다면 지도자들은 그에 걸맞게 성숙한 태도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기에는 이것이면 충분하다.



  또 반대로 국민들은 성숙한 시위를 지속해야만 한다. ‘평화’의 문제가 아니라 시위의 본 이유와 목적을 계속 해서 되새겨야 한다. 어쩌다 지나가다 시위 현장이 재밌어 보여 이에 참가하더라도 왜 이들이 모였는지, 무엇을 열망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였을 때 조금씩 사회가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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