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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습니다.
기사 승인 2020-06-14 13  |  631호 ㅣ 조회수 : 129

  가게에 직접 방문해서 뭔가를 사는 것보다 인터넷 쇼핑을 통해 배달을 받는 것이 더 간단해진 시대가 됐다. 이렇게 ‘배달의 민족’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된 존재는 보이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이다. 플랫폼 노동이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등장한 노동 형태로, 앱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 소속돼 일하는 것을 뜻한다.



  플랫폼 노동은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시작됐다. 공유 경제는 소유가 아닌 공유라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 모델을 제시해 주목을 받게 됐다. 이런 공유경제가 실제 시장에서 대두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대적인 보급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생산자와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스마트폰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에 점점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여러 기업이 플랫폼 노동 형태의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배달의 민족’은 국내 배달 사업에서 플랫폼 노동 형태를 도입한 기업이다. 배달의 민족은 ‘배민 커넥트’라는 이름으로 자전거와 킥보드, 도보로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문구로 배달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N잡러’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이 일상화된 시대에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는 문구는 노동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조건이었다. 앱을 통해 일하기 원하는 노동자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형태가 플랫폼 사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 역시 배달 관련 플랫폼 노동을 한다. 영화에서 리키는 택배 회사 관리자와의 면접에서 리키는 이런 말을 듣는다.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겁니다” 고용이 아닌 합류이기 때문에 배송 기준만 지킨다면 모든 것이 자유이며 개인의 선택이다. 고용 계약이나 목표 실적은 없다. 즉 피고용인이 아닌 개인 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이 플랫폼 노동의 핵심이다. 분명 기업을 위해 일을 하지만, 직접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가 된다. 배민커넥트는 사업 초기에 자전거나 킥보드 라이더에 대한 보험은 준비하지 않은 채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여러 문제로 인해 뒤늦게 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배민커넥트 측에서 배달원들을 직접 고용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면 보험도 없이 커넥터들을 뽑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이 직접 고용이 아닌 합류의 형태로 노동자들을 모집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들과 사업을 진행하며 생기는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플랫폼 노동이 어떻게 정치의 영역에서 개인을 소외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극 중 차 사고로 인해 일할 수 없게 된 리키의 동료 택배 기사는 곧바로 대체된다. 그 과정에선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리자가 신경 쓰는 것은 그저 배송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리키 또한 아들과 관련된 문제로 인해 휴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직접 고용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쉬는 것은 자유지만 그러기 위해 대체 기사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영화에서 리키는 강도에게 폭행을 당해 거동이 불편해진다. 당연히 일을 쉬어야 하지만 회사에서는 도난당한 물건들의 비용과 대체 기사 섭외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리키에게 전달할 뿐이다. 리키는 쉬지 못하고 쌓여버린 벌금과 주택담보대출금액 때문에 일을 하러 간다. 이런 상황은 비단 영국의 택배 노동자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책임을 홀로 진다. 플랫폼이라는 가면을 쓴 기업은 이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돼 있지만, 이들이 ‘합류’라고 말하는 근로 형태는 그저 본인의 선택에 모든 책임을 부과하는 기업의 매력적인 가면일 뿐이다.



  불평등이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복지가 늘어나도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영역에만 흘러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는 그 수혜가 돌아가지 않는다. 정당한 근로계약을 통해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다양한 근로 형태의 노동자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새롭게 생겨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평등과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사적 영역이라고 얘기했던 것들을 어떻게 정치화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시작은 ‘그들’이라는 주어를 ‘우리’로 바꿀 수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어느 상황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과 ‘내’가 아닌,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인식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나아가 우리 모두를 위한 정치는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커넥트’일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이는 극 중에서 부재중인 고객들에게 택배 기사들이 남기는 메모의 문구이다. 그 말은 메모를 남기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보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Sorry, We missed you” 미안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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