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이근삼
출판사: 연극과인간
이근삼 작가는 정통 사실주의 극을 고수하던 기존 작가들의 사실 집착에 반기를 들고, 풍자와 해학을 통해 현대인의 위선적인 의식,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저술했다. 『원고지』는 과거의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채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아가는 한 중년 교수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현실 사회를 풍자한다. 이 작품은 1960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나 현대의 각박한 사회 현실은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래전 작품임에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현실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원고지가 각박한 현대사회에 전달하는 의미
부조리한 현대 사회 속에서 『원고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중년 교수는 주체성이 부족하고, 진취적인 삶을 꾸려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현실에 체념해 원고지를 기계적으로 찍어낸다. 교수는 감독관, 아내가 시키는 대로 원고지를 찍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처한 부정적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시도도 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도 교수와 같은 인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의 발전을 꾀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자 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다.
『원고지』가 전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한 사람을 겨냥한 강요와 억압 타파’다. 『원고지』에 등장하는 장남, 장녀, 아내, 감독관은 ‘교수’ 한 사람만을 겨냥해 역할을 강요하고 억압한다. 이를 상징하듯 쇠사슬이 등장한다. 감독관의 대사 중 “원고!, 원고!”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교수를 돈 버는 기계로 인식할 뿐이다.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한 사람을 향한 강요와 억압은 흔한 일이다. 사회에서 개인은 특정한 역할과 모습을 강요받고,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되곤 한다. 왕따, 장애인 차별, 다문화 가정 아이들 차별 등 많은 사회 문제가 잠재한다. 교수처럼 가장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요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가장의 역할을 맡지 못하도록 억압 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강요와 억압은 당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하는 사람에게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전달 의미는 ‘행복이라는 가치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 자각’이다. 이는 『원고지』 그리고 현대사회의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원고지』의 모든 인물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행복이 그저 돈이라는 ‘물질’에 국한된다. 많은 현대인이 목적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우가 많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지금 무엇을 위해 사시나요?”라고 묻는다면, “행복을 위해서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각자 자기 일에 치여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원고지』의 교수와 같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것이다.
『원고지』의 배경이 된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비교하며 두 시대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눈여겨볼 수 있다. 『원고지』에서 아버지인 교수는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족을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진정한 행복의 가치
단 한 번뿐인 인생에 있어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이란 사람이 지닌 태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즉,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진취적인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
『원고지』와 현대사회, 두 시대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이점은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지』의 결말에서는 교수가 계속해서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 개개인의 노력, 의지가 모여 하나의 결과로 나타난다면 사회의 행복으로 귀결될 것이다.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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