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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왕’ 에디슨
윤성민 ㅣ 기사 승인 2017-10-15 10  |  592호 ㅣ 조회수 : 168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발명을 통해 발전했다. 그중에서도 전기 및 가전제품의 발명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구, 세탁기, 냉장고 등 수많은 발명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발명 붐’의 선두에 선 발명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다. 하지만 에디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둑이기도 하다. 발명이라는 빛에 가려진 그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자.

전구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



에디슨은 평생 1,000개가 넘는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던 자타공인 ‘발명왕’이다. 하지만 그는 발명가보다는 사업가였다. 그의 방식은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량하는 것이었다.



에디슨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전구는 사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최초의 전구는 1816년 험프리 데이비가 발명한 아크등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아크등은 너무 밝아 제한적으로만 이용됐다. 이 아크등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구가 발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전구는 너무 어둡거나 오래가지 못했다. 최초로 실용성 있는 전구는 1878년 조지프 스완이 개발했다. 에디슨보다 10개월 앞서 전구를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은 조지프 스완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도용해 전구를 만들었다. 전구의 중요요소인 탄소 필라멘트와 전구 내부의 진공구조는 스완의 아이디어거나, 그 이전부터 있었다. 명백한 도용이라 법원에서도 스완의 손을 들어줬다. 에디슨은 할 수 없이 스완의 특허권을 구매해서 전구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축음기, 영사기 같은 발명품 대다수도 에디슨이 부하직원이나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만든 것이다. 에디슨의 발명왕 신화는 도둑질로 만들어졌다.



비열한 사업가



에디슨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가능성이 보이는 산업을 재빨리 독점해 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화산업이다. 1895년 리뮈에르 형제가 최초로 상업화된 영화를 개발했다. 영화의 잠재력을 본 에디슨은 곧바로 영화시장을 장악해버렸다.



이런 에디슨의 행태에 반대한 영화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따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영화인들의 모임은 훗날 ‘할리우드’를 형성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독점은 영화산업의 활성화에 이바지한 것이다.



그의 비열한 모습은 니콜라 테슬라와의 ‘전류전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전류를 보내는 방식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에디슨은 ‘직류’, 테슬라는 ‘교류’를 주장했다. 그는 테슬라를 방해하기 위해 교류는 위험하다는 거짓 선전을 한다. 심지어 코끼리를 교류로 태워죽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전력의 손실이 적고 안전한 교류가 에디슨의 직류를 누르고 널리 쓰이게 된다. 에디슨에게 이 전류전쟁은 자신의 추악함만 드러낸 상처뿐인 경쟁이었다.



이처럼 에디슨은 99%의 노력을 통해 성공한 발명가가 아니라, 1%의 꾀로 발명왕에 오른 사업가였다. 그의 사업 방식은 비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노이즈 마케팅(!) 덕분에 소수만 누리던 기술의 축복을 일반 사람들도 누리게 됐다. 전구의 빛 뒤에 생기는 그림자처럼, 에디슨은 빛과 그림자가 명확한 인물이다.



윤성민 기자 dbstjdals0409@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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