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다른 교회와 특별할 게 없는 작은 교회다. 하지만 이 교회는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되는 미혼모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교회의 벽면에 ‘베이비박스’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이 베이비박스가 설치되고 8년 동안, 98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갔다.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불법 시설’ 0.09평의 작은 베이비박스에 붙은 큰 꼬리표다.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더 쉽게 포기할 수 있게 한다”며 베이비박스의 폐기를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아이를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부모라면, 베이비박스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이를 유기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또한,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갓난아기를 길바닥에 버려두는 것보다 베이비박스에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단순히 놓고 가는 곳이 아니다. 베이비박스가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미혼모들이 쉴 수 있고 상담 받을 수 있는 공간도 갖추고 있다. 미혼모들의 사정을 듣고 상담해주며, 여유가 될 때 아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6개월간 아이를 맡아주기도 한다. 실제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갔다가 상담을 듣고 아이를 찾아간 미혼모도 적지 않다.
사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베이비박스가 아니라 베이비박스가 필요한 사회, 미혼모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다. 우리나라는 미혼모들을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는다. 더구나, 약 80%에 이르는 미혼부는 미혼모의 출산 이후 연락을 끊거나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고스란히 미혼모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또한, 현재 법이 영아 유기를 부추기고 있다. 2012년 시행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를 한 아이만 입양신청이 되도록 기존의 입양 시스템을 바꿨다. 원치 않은 출산을 한 미혼모들에게 출생신고는 주홍글씨와 같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미혼모들은 미혼모임을 밝힐 수 없고 출생신고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베이비박스의 방문 횟수는 9배나 늘어났다. 입양도 어렵고, 키울 수도 없는 형편에서 미혼모에겐 영아 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미혼모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베이비박스는 적어도 한 생명을 죽이는 참혹한 일을 막고, 미혼모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는 최후의 보루다. 아이를 버리지 말라고 빈말만을 하는 사회는 오히려 미혼모를 옥죄고 있다. 미혼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수 있는 사회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베이비박스는 유지돼야 한다.
윤성민 기자 dbstjdals0409@seoultech.ac.kr
반대 - 사랑으로 포장된 무책임의 상자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영아유기범죄는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 2014년 76건, 2015년 42건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겉으로 보면 건강해지는 사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3년 말 베이비박스 유기는 형사입건에서 제외됐다. 2014년, 2015년에 유기된 영아의 수가 줄어든 것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를 통계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입소한 영·유아가 2012년 79명, 2013년 252명, 2014명 280명, 2015년 278명으로 늘고 있다. 이 수치를 보고도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비슷하다. 그들은 베이비박스가 버려지는 신생아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또,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면 불법 비밀 낙태가 만연하고, 쓰레기통에 영아가 버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베이비박스가 버려지는 영아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지막 배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베이비박스는 미담이 될 수 없다(그래서도 안 된다). 베이비박스는 그 존재만으로 영아 유기 폭증의 원인이다.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사람들조차,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영아를 유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베이비박스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미혼모들의 익명을 보장하며, 영아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영아를 유기하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모가 생기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처벌 대상인 영아 유기자를 보호하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금지돼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위법이다. 익명으로 아기를 유기하게 되면 버려진 영아의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없다. 헌법에서 명시하는 기본권인 아동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 권리와, 친부가 자녀와 관계 맺을 권리를 침해한다.
국제적으로도 베이비 박스는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UN 아동권리 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 UN은 전 세계에 만연한 베이비박스를 없애기 위해 힘쓰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사람이 법을 쉽게 어기게 만든다.
누구도 베이비박스가 확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아 유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려 노력하지 않고, 당장의 해결책만을 찾는다면 눈 감고 아웅일 뿐이다. 진정 건강한 사회라면 ‘어떻게 하면 영아 유기를 예방할 수 있을까’를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이다.
박수영 기자 sakai1967@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