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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위한 학교는 없다
박수영 ㅣ 기사 승인 2018-05-07 22  |  601호 ㅣ 조회수 : 381
▲ 어의관 4층에 부착된 익명의 메시지



복학하는 가해자 때문에 졸업해야 했던 피해자



  본지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13학번 단톡방 사건 피해자의 증언은 실로 놀라웠다. 간담회 때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 교수들이 증언했던 내용과 상당부분 달랐다. 2015년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당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무기정학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 A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2015년 7월 가해 학생과 피해자가 동석한 회의에서 무기정학을 요구할 시 가해 학생들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당시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작성한 요구안은 6개였다. ▲주요 가해자 무기정학 징계 ▲자퇴 후 타 학교에 입학한 가해자의 학과에 해당 사건에 대한 공문 발송 ▲해당 사건으로 정신적, 신체적 충격으로 질병을 얻어 치료를 받았거나 받는 중인 두 피해자에게 치료비 보상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 및 가해자 실명 공개 ▲가해자가 쓴 사과문 공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해당 사건이 알려지지 않도록 효과적이고 강력한 조치 등이 있었다.



  이 6가지 요구안은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는 이 6개 외에 다른 요구사항을 들어줬다) 심지어 여섯 번째 조항은 가해자에게 구두로 전달했으나 전혀 강제적인 조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추후 결국 가해자 중 한 명이 부모를 동행해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2013년부터 2015년도까지 피해를 당한 것에 더해 또다시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가해 학생들은 대부분 군인 신분이었고, 수업을 들으며 학교에서 견뎌야 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었기에 긴 싸움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학교가 가해자의 보호에 더 힘썼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정황 또한 있었다. 학과는 가해자가 복학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졸업을 압박했다. 교수들은 매 학기마다 피해자들을 불러 졸업 얘기를 꺼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 졸업하고 그 후에 가해자들이 복학하면 안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학과는 졸업을 미루고 싶어 하는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가 생겨 복잡해진다고 답했다. 가해 학생에게 복학을 늦춰도 괜찮은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그들이 응하지 않는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회의에 가서 사실을 진술하고, 복기하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쫓기듯 학교를 졸업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B 씨는 “학과에서 피해자들의 요구안 일부를 수용해 가해자들에게 내린 처벌은 학생부나 행정적 기록에 명시되는 징계가 아니었다”며 “가해자가 응하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따르게 만들 방법이 없는 반쪽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학교를 다니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던 한 피해자는 결국 전공필수 강의를 철회했다. 징계위원회에서 가해자만 소환해 진술을 받은 뒤 무기정학 처분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문창과 교수가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덕에 피해자들은 뒤늦게 소환돼 입장을 진술했다. 그러나 진술 자리에는 열 명의 남자 교수뿐이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학창시절 받은 인신공격에 대한 상처로 인해, 대학에 온 후 보상 심리로 그런 언행을 벌였다’는 가해자의 변명을 언급하며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우리대학에서 유일하게 이런(성희롱) 사건으로 징계위원회까지 오게 됐는지 등을 물었다.



  한편, 학과 측에서는 무기정학 징계에 반발하며 소송을 걸어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 가해자가 다른 가해자들처럼 2018년 1학기에 복학할 수 있게끔 무기정학을 풀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드러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학과 측에서 가해자의 사과문을 받을 의향이 있는지를 몇 번 물어왔으나 피해자들은 늘 가해자들은 공개 사과문이 아니면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개 사과문 작성을 원치 않았다. 이후 가해자가 사과문을 따로 써 보내기는 했지만 공개 사과문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들이 피해자들을 지속해서 위축시켰다. 개인 사정으로 중도 휴학 혹은 초과 학기를 원했던 피해자도 있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의 인권 > 피해자의 치료



  지난 4일(수) 열린 간담회에서 문창과 측은 성희롱, 성추행 등의 공소시효를 늘리는 식으로 대책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이 이 대책이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김미도 교수는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 직후 고발했다면 좋았을 것’, ‘재학생이 피해자들에게 힘을 안 준 탓’이라며 학과 재학생 및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했다. 올해 새학기가 시작되고 어의관에 익명의 대자보가 붙었다. 본지는 대자보를 쓴 김철수(가명) 씨와 연락이 닿았다. 김 씨는 학과가 가해 학생 인권을 우선시하며 가해 학생의 실명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학과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늘린 공소시효 내에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지 믿을 수 없다고 의심을 품었다. 그는 “성폭력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학과라는 제도, 집단이 보여주는 능동적인 태도, 가해 학생의 처벌”이라며 “공소시효 따위의 대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학과 측은 현재 법적인 문제, 가해 학생의 인권 등을 이유로 가해 학생의 실명공개가 어렵다고 말한다. 김 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얼마나 더 생각했는지 궁금하다”고 답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칙 제15조에는 “성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가해 학생에 대해 공개사과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한편, 우리대학 학칙 제33조에는 성희롱 예방 등 남녀차별 방지와 고충 처리를 위한 성차별대책위원회를 둔다고 명시돼 있다.



  김 씨는 이러한 학칙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2012년 제정된 학칙 제33조 성차별대책위원회의 1항에서 ‘성희롱 예방’을 ‘성폭력 예방’으로 명시했는데, 학칙에 근거한 위원회의 의미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운영으로 학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무조건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사고할 것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확실히 내릴 것 ▲휴학 권유가 아니라 퇴학을 고려할 것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 학생이 학과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퇴장할 때까지의 사건 타임라인을 공개할 것 ▲가해자가 자필 사과문을 필수로 게재하게 할 것 등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학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씨를 비롯한 많은 문창과 학생이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불만인 점은, 학과가 가해자 입장에 서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충분히 반성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교수 앞에서 재학생들은 참담한 심경을 맛봤다. 김 씨는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있다거나 학생들의 시선을 피해 괴로워하다 휴학했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가해자를 두둔하고 감싸주고, 충분한 벌을 받았다는 식으로 토로할 것이 아니라, 2차 피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다른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가해자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방침이다. 저학년으로 갈수록 해당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오래 걸릴수록 지치고 힘들겠지만 모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또 다른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수영 기자

sakai1967@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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