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예학과를 졸업한 84학번 이재용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입학했을 때는 산업디자인학과였어요. 그러다 학과가 통폐합되고 바뀌면서 3학년 때 학적이 공업디자인학과로 변경됐어요. 학교에 항의했어요. 전공선택을 내가 스스로 못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잖아요. 결국 도예학과로 가야겠다고 학과에 의사를 전달했고 도예학과를 졸업할 수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부터 평산에스아이라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2012년까지 오랜 기간 일하면서 본부장까지 올랐어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보니 수익이 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회사를 그만둘 때는 많이 성장했어요.
회사를 그만두니 그제야 인생에서 못 한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많은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 단체 활동만 10여 개를 하고 있어요.
제가 정치에 입문한 시기는 1999년 민주노동당이 창설했을 때였어요. 이후 2002년에 처음 지방선거를 나갔어요. 현재는 정의당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12년에 입당했어요.
Q. 기억에 남는 대학 생활이 있나요?
제가 총 13학기를 다녔어요. 당시 탈춤동아리에 속해 있었는데 동아리방, 도예과 작업실, 학생회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많은 추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총학생회 활동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가 문화부장까지 했는데 조형대에 사람이 없어서 거의 떠밀리다시피 맡게 됐어요.
또,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운동권 시기였어요. 우리대학도 많이 싸웠어요. 1980년도에는 광주항쟁이 터지고, 간접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죠.
Q. 지금도 도예 일을 하고 있나요?
지금 안산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2002년부터 민주노동당 당원,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매년 12월 안산에서 토담이라는 모임의 전시회를 여는데 올해로 4회를 맞았어요. 주부, 노동자들의 참여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Q. 매년 영화제를 연다고 들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동네 깐 영화제라고 하는데요. 안산에 사는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각자 스스로 만들어서 상영하는 영화제입니다. 2015년부터 시작했는데 올해 영화제는 지난달 15일(토)에 끝났어요.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안산에 있는 모든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물론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지만 굉장히 재밌어요.
저는 이번 영화제에 나영이의 문이라는 작품을 출품했어요. 나영이의 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제 손녀딸이 2014년에 태어났어요. 손녀딸이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커가는 과정을 그렸어요. 손녀딸이 태어난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잖아요. 절망의 시절에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Q. 안산이라는 도시에 끌리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고향이 부산이에요. 안산에서는 1995년도부터 쭉 생활하고 있어요. 1999년 민주노동당이 창단되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안산에서 활동했어요. 안산은 매립지입니다. 현재 거주하는 약 75만 명 중 대부분이 타향살이에요. 제가 처음에 안산에 왔을 때는 인구가 약 25만 명 정도로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사실 다른 조건을 다 떠나서 집값이 쌌어요.
Q.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안산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자를 많이 만났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NL(주사파)과 PD(민중민주파)가 많이 싸웠어요. 저는 자주민주통일(NL) 쪽에 속해있었는데 노동자들이 통일운동을 얘기하는 모습에 흥미가 갔어요.
굳이 성향을 분류하면 저는 자주민주통일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에 입당하면서부터는 안산 위원장을 3년간 하면서 많은 노동 활동을 펼쳤어요.
Q. 세월호참사 대책 특별위원장의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는 직급이 2개가 있어요. 하나는 정의당 경기도당 노동위원장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당 경기도당 세월호 참사 대책 특별위원장입니다. 세월호참사 대책 특별위원회는, 경기도에는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서 설립하게 됐어요. 경기도에서만이라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유족들에게 힘을 주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올해 4월에 제안했는데 당시에는 지방선거 전이라서 선거가 끝나고 바로 위원회를 결성했어요. 지난달 29일(토)에는 기억교실이라고 해서 안산지원청에 단원고 2학년 학생들 방을 옮겨놨어요.
Q. 이재용 동문에게 안산이란?
안산은 제2의 고향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제가 태어난 곳이 부산입니다. 아버지 사업 때문에 서울로 이사 간 적도 있고 욕지도라는 남해안 섬에서 살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56년 중 24년을 안산에서 살았어요. 고향은 부산이지만 삶의 터전은 안산이죠. 앞으로도 안산에서 지낼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꿈, 목표가 있다면?
정의당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총 4번 선거를 나갔는데 다 떨어졌어요. 앞으로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더 기회가 올 것 같아요. 그 기회가 어떤 자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당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만약에 당선된다면 연임을 목표로 두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이 사회와 싸우고 싶어요.
또 하나는, 소시민으로서 가지는 꿈입니다. 제가 살았던 장소로 가서 그림도 그리고 도예 활동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는 인도네시아에 가서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어요. 죽기 전까지 제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하고 싶어요.
Q.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꼰대같다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먼저 상속 없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봉건사회를 깬 이유는 세습 사회를 깨기 위해서잖아요. 금수저, 흙수저가 있으면 봉건제도하고 다른 점이 없어요. 출발선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이 주장이 쉽게 동의가 되지 않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후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저의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고 싶지 않아요. 후배들에게 ‘어떻게 살아라’라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나처럼 살아라’라고 조언하면 못마땅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빛을 보는 세상. 이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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