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억울한 제적으로 잃어버린 20년
홍 씨는 1995년 입학한 후 6학기 평점평균 1.5 미만을 받아 제적처분을 받았다. 이후 그는 1999년 1학기에 재입학했다. 재입학한 그는 3학점을 이수했고 평점평균 3.0을 취득했다. 하지만 1999년 1학기를 마친 홍 씨는 또 다시 제적당했다. 그는 이 처분에 대해 학교에 이유를 물었으나 당시에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2002년 재입학을 시도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홍 씨는 대학교 중퇴라는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홍 씨는 2017년 후배 A 씨가 학교 측에서 재입학에 대한 공고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세한 정보를 알고자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그는 학교 측의 답변을 받아본 결과 재입학 후 다시 받은 제적처분에 대한 관련 근거가 미흡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홍 씨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의 학칙 제19조(재입학) 2항에는 ‘재입학의 방법과 재입학의 자격 및 취득학점의 인정범위에 관한 사항은 총장이 이를 따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제46조의 3(학사제적)의 2항에 ‘6학기 이상 이수한 전 과목 평점평균이 1.5에 미달한 자’라고만 돼 있을 뿐 재입학 후의 학점에 관련된 근거는 부재하다. 홍 씨는 재입학 후 제적 이전의 성적을 포함해 학점을 산출하는 이유가 단지 ‘총장이 이를 따로 정한다’라는 학칙 때문이라는 것에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홍 씨는 자신의 제적처분에 근거법규가 없고, 제적 절차 중 의견 진술의 기회가 누락된 절차상 하자가 존재하며, 재입학한 자신에게 18학점을 강제하고 재입학 전 성적을 다시 적용한 징계가 가혹하다는 점을 근거로 소송을 준비했다. 그는 해당 사안에 대해 지난 5월 8일(화) ▲본인이 제적 결정 당시 관련 근거 확인 및 김종호 총장의 공개 사과 ▲위법한 제적처분에 대한 위자료 및 손해배상 ▲본인과 비슷한 피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학교 측의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재판을 신청했다.
재판 청구 이후 원고 홍사현과 피고 대한민국의 답변서, 준비서면 등이 오고 갔다. 처음 홍 씨는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재판을 청구했지만 우리대학이 국립대학인 탓에 피고가 학교가 아닌 대한민국으로 조정됐다.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7월 17일(화) 첫 번째 변론이 열렸다. 9월 11일(화), 10월 23일(화)에 각각 2차, 3차 변론이 진행됐다. 오는 27일(화) 마지막 변론이 예정돼 있다.
2. 근거有, 절차상 문제無, 재량권 남용非
2017년 10월 홍 씨의 문의에 대한 답변에서 학교 측은 재입학자의 학점인정, 학사제적에 대한 제도운영에 대한 미흡한 점, 불합리한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홍 씨와 같은 사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칙을 개정했으며 홍 씨가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한다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다면 홍 씨의 재판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측의 주장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제적처분의 근거가 없다는 홍 씨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홍 씨가 재입학한 자에 대한 제적처분 규정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서울산업대 학칙 제46조의 3에 근거해 제적이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또한 학칙 제19조 제2항에 ‘재입학에 필요한 사항을 총장이 따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에 대한 시행세칙 제13조에는 ‘재입학 허가자의 학점 및 성적은 기존에 취득한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홍 씨의 제적처분은 학칙에 따른 타당한 처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학교 측은 제적처리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홍 씨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홍 씨는 당시 제적처분과 관련해 사전에 어떠한 의견 진술의 기회도 없었으므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홍 씨가 제적처리대상임을 소속학과인 도예학과에 알렸다. 당시 홍 씨는 학과와 연락이 끊겼다. 도예학과는 조형대학 학생회 간부들에게 알릴 수 밖에 없었으며 홍 씨에게 제적처리대상임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고 변론했다.
세 번째로는 제적처분이 재량권을 남용한 처분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홍 씨는 자신이 18학점을 신청했더라면 제적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학교 측의 얘기가 고등교육법 제38조 및 서울산업대 학칙 제7조에 명시된 수업연한 및 재학연한을 제한하지 않는 점에 반하므로,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학교 측은 재학연한이 없는 학사제도가 낙제 학점을 받고도 수년간 학생신분을 유지하며 제도상의 특혜를 받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비례의 원칙: 행정법의 일반원칙 중 하나. 행정주체가 구체적인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함에 있어서, 목적과 수단사이에 합리적인 비례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3. 재판의 승패를 가르는 소멸시효
학교 측의 마지막 주장인 소멸시효에 관한 내용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다. 손해배상 사건에서 시효는 ① 원고가 손해를 입었음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시점으로부터 3년 ② 손해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5년 혹은 10년으로 정해져 있다. 학교 측은 해당 소멸시효가 완성돼 홍 씨의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홍 씨의 생각은 다르다. 1999년 제적 당시 그가 처분의 근거 규정에 대해 문의했을 때 학교에서는 학칙 및 시행세칙에 명백한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홍 씨는 이를 신뢰해 더 이상 권리행사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2017년 정보공개 신청 이후 본인의 제적처분에 근거 규정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에 학교 측은 1999년 당시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봤을 때 이미 처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으므로 그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학교 측은 홍 씨의 주장이 맞더라도 그가 제적처분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1999년으로부터 5년, 10년이 지났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했다.
4. ‘아묻따’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총장이 정한다?
홍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대학의 학칙 중 ‘총장이 따로 정한다’라는 조항은 임의대로 해석될 수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당시 자신이 제적을 당한 이유도 학칙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총장이 정한다고만 돼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총장에 따라 자신이 제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대학 학칙 제61조(재입학)는 1항 ‘자퇴 또는 제적된 사람이 재입학을 원할 경우에는 총 정원의 범위에서 재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 2항 ‘재입학 허가에 관한 사항은 총장이 따로 정한다’고 명시한다.
우리대학과 상황이 비슷한 다른 국립대 학칙은 어떠할까. 부산대 학칙 제68조(재입학)에는 1항 ‘제적된 자는 총 정원에 결원이 있는 경우 1회에 한해 재입학을 허가받을 수 있지만, 교원과 의료인의 양성 관련학과의 경우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이내에서 허가할 수 있다’, 2항 ‘제67조 제2호부터 제4호까지 사유로 제적된 자는 제적된 날부터 6개월이 경과한 후에 재입학을 신청할 수 있다’, 3항 ‘재입학 허가 시 학년 인정은 제적 당시의 학년 이하로 하고, 제적 당시의 모집단위가 폐지된 경우 유사학과로 재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라는 항목으로 세부 사항을 두고 있다.
인천대는 제31조(재입학자격)에 ‘본교에서 퇴학 또는 제적된 자가 재입학을 지원할 때에는 동일 학년 이하의 학년에 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또, 제36조(재입학과 편입학 허가)에는 ‘재입학은 재입학 허가학년도 기준으로 모집단위별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학생 중 제적자 총 인원수에서 동 기간 중의 편입학생과 재입학생 총 인원수를 제외한 인원만큼 재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라는 학칙을 두고 있다.
부산대, 인천대와 비교했을 때 우리대학 학칙이 소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대인 인천대, 부산대, 공주대, 한밭대의 제적·재입학에 대한 학칙을 확인한 결과 어느 곳에서도 ‘총장이 따로 정한다’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홍 씨와 학교 측의 법적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홍 씨는 학업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학교 측의 응답에 ▲장학금 지급 ▲다른 학과로의 재입학 ▲1999년 당시 등록금 적용 등의 지원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학교 측은 합의점을 찾아보라는 판사의 말에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했다. 홍 씨 또한 “이번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항소·상고를 진행하며 끝까지 굽히지 않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주윤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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