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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스포츠 위에 나는 정치
김지연, 박수영 ㅣ 기사 승인 2018-02-12 02  |  597호 ㅣ 조회수 : 603
  시작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평창올림픽이 한 달을 앞두고 삐걱거렸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때문이다. 여론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남북단일팀으로 구성됐다. 정치가 스포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단적인 사례다.



  흔히 스포츠 정신으로 순수, 공정한 경쟁을 말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순수하지 않다. 현대에 이르러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업들은 스포츠 스타와 스폰서십을 체결한다. 기업은 스포츠 스타의 유니폼에 자사 브랜드를 부착하는 등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 홍보한다.

  스포츠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사건은 흔하다. 정치인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스포츠 행사가 갖는 정치적 의미 또한 크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선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 씨가 한때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도 다르지 않다. 그리스에서 태동할 때부터 올림픽은 정치적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의 신 제우스를 기리는 잔치이자 군사 훈련이었다. 경기 종목은 투창, 전차 경주, 레슬링, 복싱, 수영 등 전투에 필요한 종목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 간 군사적 경쟁의 의미가 큰 정치 행사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 제27조는 ‘모든 NOC(각 국가 올림픽 위원회)들은 정부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 올림픽 헌장 제3조에는 ‘국가 또는 개인에 대해 인종·종교·정치상의 이유로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올림픽의 역사를 보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순수하게 치러진 경우는 손에 꼽힌다. 1936년에 열린 베를린 하계올림픽 당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독일 선전의 기회로 삼았다.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족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한편, 평화를 사랑하는 독일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올림픽이 나치 정권의 홍보 수단 역할로 전락한 것이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성화봉송 마지막 장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이슈의 개입이 심화됐다. 미국-소련을 필두로 한 동·서구권 집단 올림픽 보이콧이 1960년 로마올림픽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까지 32년간 매회 발생했다. 1970년 모스크바올림픽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이유로 미국의 주도 하에 60여 국이 보이콧하자, 4년 후인 1984년 LA올림픽에 소련이 10여 국과 함께 보복성 보이콧을 했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도 정치를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 독재 정부는 대중을 우매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이에 스포츠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1980년대 독재 정부는 3S 정책을 시행했다. 3S는 스포츠(Sports), 섹스(Sex), 영상(Screen)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정부는 이를 이용해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즉,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려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 하려는 시도였다.

  우리나라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또한 3S 정책에 힘입어 탄생했다. 당시 전두환 前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들끓자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 대안으로 프로야구를 출범시키고 야구를 사회적 큰 관심거리로 만들어 대처했다. 이외에도 3S 정책은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서울아시안게임, 프로축구, 프로씨름, 농구대잔치 등을 차례로 출범시키며 프로스포츠의 시작을 알렸다.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이 독재 정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경험했다. 국민들은 선수의 승리를 통해 국민적 단결을 보이고, 언론은 애국 스포츠 스타의 탄생과 국가적 팬덤 형성에 일조한다. 또,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 동력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21세기에도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은 현재진행형이다.



  탁구, 골프, 크리켓. 이 스포츠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가의 효과적인 외교 도구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중국의 교류가 단절됐을 때,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탁구 친선경기로 수교를 튼 일은 유명하다. 또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함께 골프 경기를 하면서 회담의 분위기를 보다 부드럽게 조성한 바 있다. 크리켓 외교는 정치적 앙숙이었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양국의 국민 스포츠인 크리켓을 통해 호전시킨 사례를 말한다.

  스포츠는 이데올로기 및 선전의 수단으로 곧잘 사용된다. 앞서 다룬 베를린 올림픽이 그렇다. 나치는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 대신에 나치당을 상징하는 당기인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했으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올림픽 사상 최대의 인원을 수용할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세웠고, 올림픽 경기를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함으로써 기술력을 과시했다. 결국 독일은 이 올림픽에서 33개의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이러한 영광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데 사용했다.

  반면 스포츠는 국제 정치에서 국가 간 평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는 올림픽 기간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전통을 가졌다. 올림픽 휴전 혹은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라고 불리는데, IOC는 이러한 그리스 올림픽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스포츠를 통한 평화를 도모해 왔다. 올림픽 휴전이 유엔을 통해 정식으로 실행된 때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었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진행될 동안 수단인민해방군과 정부군 사이에 휴전이 성사됐으며, 조지아와 아브하지아 간의 무력충돌은 중지됐다. 또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는 유엔의 노력으로 이라크전쟁의 재발을 막을 수 있었다.

  국민들 또한 국가에 정치적 의사를 표하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할 수 있다. 1948년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네덜란드계 백인과 토착 원주민을 차별하는 극단적인 인종 분리정책이 실행되고 있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유색인종이 스포츠계에서도 차별을 받자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22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32개국이 항의의 표시로 보이콧을 했다. 큰 규모의 보이콧으로 인해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위기를 맞게 됐다. 결국 넬슨 만델라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국가들의 보이콧이 어우러져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폐지됐다.



▲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하는 전두환 前 대통령





  스포츠는 정치적이다. 월드컵, 올림픽을 비롯한 권위 있는 스포츠 대회는 국가의 지원 없이 개최할 수 없다. 올림픽헌장은 올림픽이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 선수 개인 간의 경쟁이라고 명시한다. 하지만 국가의 후원 없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불가능하다.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에 대한 거부감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선수들은 또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기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대회만이 아니다. 경기장, 훈련장, 스포츠 구단의 운영, 프로스포츠에서 아마추어 리그까지 정부의 지원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스포츠협회는 없다. 스포츠협회는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정부에 연줄이 있는 인사를 끌어들인다. 정치인은 스포츠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명성과 권위를 십분 활용한다. 실제로 많은 정치인이 스포츠 단체의 장을 맡고 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치의 스포츠 개입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은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이룬다면, 스포츠는 정치를 통해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스포츠는 정치를 통해 더욱 확장되고 성장할 수 있다.



▲ 축구선수 디디에 드록바가 방송에서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전쟁을 막은 한 축구선수의 이야기가 있다. 종교로 인한 내전이 한창이던 2006년, 코트디부아르는 독일 월드컵 본선 참가권을 얻었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선수 드로그바는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내전 중인 정부와 반군에게 “월드컵을 하는 기간인 1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닿았을까? 코트디부아르 정부군과 반군은 월드컵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전쟁을 멈췄다. 그리고 2007년 코트디부아르 정부군과 반군은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5년 동안의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종결됐다. 드로그바의 이야기는 스포츠가 정치와 결합할 때 생기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포츠 선수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동질화하고, 그가 속한 집단은 선수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휘날리는 한, 국민들이 선수의 승리를 자국과 본인의 승리로 느끼는 한, 스포츠의 정치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가 없는 정치, 정치가 없는 스포츠는 상상할 수 없다. 스포츠가 정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정치가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정치의 스포츠 관여는 스포츠가 중립적 태도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머물러야 한다.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은 스포츠가 지닌 공정성, 순수성 등의 가치와 정치가 추구하는 목적인 공공선을 함께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지연 기자

jiiii97@naver.com

박수영 기자

sakai1967@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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