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편적 복지란 자격과 조건 없이 복지를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복지를 말한다. 보편적 복지는 1833년 독일 제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독일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방식을 통해 노동자를 대상으로 복지제도를 실행했다. 1914년 스웨덴은 세계최초로 국민기초연금제도를 시행했다.
1942년 제정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보편적 복지에 한 획을 그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모든 노인과 실업자, 자식을 둔 어머니, 병자들에게 최소한의 급여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모든 시민은 예기치 않은 빈곤의 위험에 시달리기 때문에 급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와 반대되는 개념이 선별적 복지다. 선별적 복지는 복지 서비스를 제한된 계층에만 제공한다. 수혜자는 주로 사회 취약계층이다. 두 용어가 대립적으로 제시돼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으며, 1970~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6년 발표된 한 논문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정책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 급여와 서비스의 배분 형태로 나눠 설명했다.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는 형평성은 있으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선별적 복지는 헝평성은 떨어지지만 효율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복지강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1891년 국민건강보호법을 제정했다. 이후 직업상해보험, 병가수당 등을 도입했다. 수년 간 스웨덴 정권을 잡았던 사회민주당은 보편적 사회복지체제를 확립하는데 주력했다. 스웨덴은 국민건강보험, 연금보험, 실업보험 등의 사회보험제도와 아동 연금, 적응 연금, 미망인 연금 등의 연금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스웨덴은 학업보조금, 주택보조비, 노인보건시설과 탁아시설 운영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스웨덴이 이와 같은 복지제도를 실현할 수 있는 데에는 국민들의 공이 크다. 스웨덴의 국가 전체 예산 중 약 1/3이 사회복지비용으로 쓰인다. 2013년 기준 스웨덴의 조세수입은 GDP의 45.8%이다. 이는 국민들이 수입 중 상당수를 세금으로 낸다는 의미다.
2007년 거창에서 처음 시행된 무상급식 이후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 바람이 불었다. 무상보육, 누리과정, 국민건강보험 등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보편적 복지의 예다. 하지만 안정적인 조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보편적 복지는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게 되면 복지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무상급식 실시 이후 부쩍 부실해진 급식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확실한 계획 없는 복지정책이 남발된다면 미래의 정부가 나라를 꾸려갈 예산이 부족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예산안 편성에서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새로 편성된 복지예산은 162조 2,000억원이다.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5%다. 전년도 대비 17조 6,000억원(12.1%)이 증액 편성됐다. 문 정부가 복지예산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는 계획 중인 복지정책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보편적 복지를 위해 뗀 첫걸음은 ‘문재인 케어’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 치료를 급여 치료로 전환하는 정책이다. 비급여 치료는 치매, 항암치료, 희귀병 치료 등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우수한 편이나 여전히 환자 의료비 부담률이 높다. 우리나라 환자 의료비 부담률은 약 36.8%로 OECD 평균인 19.6%보다 두 배 이상이다.
문재인 케어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완전 적용되면 미용, 성형을 제외하고 치료에 필요한 모든 의료 서비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치료비용의 10~70%가 건강보험으로 대체된다. 치매 의료비도 절감된다. 중증 치매 환자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이 현행 20~60%에서 10%로 낮아진다. 치매 진단에 필요한 정밀 검사도 건강보험에 포함된다. 또한, 난임 부부 시술비가 지원된다. 체외수정 시술 등 특정 치료를 통해서만 임신이 가능한 저소득층 부부에게 시술비 일부가 지원된다.
올 초 문 정부의 가장 큰 이슈였던 복지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지난해 6,470원에서 올해 7,530원으로 16.4% 인상된 최저임금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10.9% 인상된 8,530원으로 책정됐다. 이에 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세다. 최저임금에 큰 타격을 받는 대상은 영세업자나 하청업자다. 그들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큰 폭으로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인건비가 부담돼 가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호소한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은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말이 웃돌기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줬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7월 1일(일)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무인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 보장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노동자를 실업자로 내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9월 보편적 복지정책 중 하나로 아동수당 제도가 도입됐다. 아동수당은 만 6세 미만(0~7개월) 아동에게 매달 10만원씩 지급되는 수당이다. 현재는 선별적 복지로써 아동이 있는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상위 10%를 제외한 사람에게 지급된다. 내년 1월부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지난달 5일(월)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가 아동수당 수혜 대상 확대에 합의했다. 지난달 6일(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전체 아동에게 아동수당이 지급된다면 우리나라 복지 사상 최초로 보편적 복지가 도입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문 정부의 또 다른 보편적 복지 정책으로 기초연금 제도가 있다. 기초연금은 기존의 기초 노령연금을 확대 개편한 제도로 2014년 7월 도입됐다. 가구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액 이하인 노인에게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 9월 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기초연금이 25만원으로 인상됐다. 이는 내년에 30만원으로 인상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수준의 급여는 1인 최저생계비인 57만원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깎여 소득이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밖에 복지정책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안정된 삶을 위한 장애인 연금과 난방비 비용을 줄여주는 에너지 바우처(Voucher)가 있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란 약 12만원의 연료를 구매할 수 있는 난방카드를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것이다.
문 정부가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와 함께 화두로 떠오른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보편적 복지를 통해 가계소득을 확충하는 성장론이다. 복지가 성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특히 보수진영은 소득주도성장이 우리 경제의 견인차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행정학과 이혁주 교수는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사회복지 지출을 비롯한 정부의 이전지출을 늘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이 때문에 한계근로자(구직 자체를 단념한 사람)나 비자발적 시간제 근로자(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올리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現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 취약계층은 기본적으로 한계소비성향(새로 늘어난 소득 중에서 소비에 향하는 비율)이 높다”며 “복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어서 생산증가 및 경제활성화로 연결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소득주도성장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문 정부의 복지정책 및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방향성 자체에 대해선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사회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며 “연령별, 지역별 모두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우리는 소득주도성장이 가지는 부작용에 대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주류경제학은 임금상승이 생산비를 증가시키고 고용을 줄여 경기침체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는 “현 노동생산성보다 과도한 임금상승은 장기적인 침체를 낳을 수 있다”며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강화 및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규제개혁은 사회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푸는 일”이라며 “앞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성민 기자, 주윤채 기자
유미환 수습기자, 이건희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