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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옥죄는 프레임
유미환, 전은지, 양지은 ㅣ 기사 승인 2019-11-10 17  |  624호 ㅣ 조회수 : 164


  우리는 ‘혐오’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정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혐오의 정의는 ‘국제법에서 인정하는 보호돼야 할 특성을 실제로 가지거나 혹은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불합리한 비난, 적의, 증오의 감정’이다. 정의에서 언급된 보호돼야 할 특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은 주로 소수자다. 소수자의 정의가 하나의 커다란 사회 안에서 문화·인종·민족적으로 구별되는 특수한 자나 집단을 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규모보다는, 사회의 지배집단 성격에 따라 소수자 집단이 규정된다. 즉, 소수자는 발언권 영향의 작음을 의미한다. 혐오 표현을 받는 표적 집단의 특성은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성적 지향 등이 있다. 사회 환경에 따라 어떤 집단이나 그들이 소수자가 되기도, 지배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한국 사회에서는 지배 집단이지만 일본에서는 소수자다.



  표현의 정의는 ‘어떤 견해나 생각을 외부의 청자에게 전달하는 모든 것’이다. 표현은 문자 및 비언어, 시각, 예술 등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인쇄물, 라디오, 텔레비전을 포함한 모든 매체를 통해 배포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혐오와 표현이 합쳐질 때, 불합리한 비난 및 적의를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내는 행위를 혐오 표현(Hate Speech)이라고 한다. 비언어적 표현도 혐오 표현에 포함되기 때문에 동양인을 보고 눈을 찢는 행동 등은 혐오 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 혐오 표현은 행위자의 의견을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표적이 되는 대상 집단에 관한 기존의 차별의식을 정당화하거나 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이는 차별의 문제기 때문에 통상적인 욕설이나 비난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혐오는 오늘날 사회적 이슈다. 혐오와 차별이 비단 오늘날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혐오의 역사는 오래 이어져 왔다. 혐오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의식, 무의식적인 사고구조에 우리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공공연하게 발화되고 확산한 적은 없었다. 혐오 표현은 표현에 머물지 않고 폭력이나 실질적 차별로 나아간다. 혐오 대상을 향한 차별을 재확인하고 강화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 구성원의 지위를 박탈한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에 바탕을 둔 배제와 억압을 확대하고 재생산해 사회를 분열시키고 민주적 가치를 훼손시킨다.



  혐오 표현은 표적이 되는 대상 집단에 관한 부정적 관념이나 편견을 담고 있다. ‘어떤 특정 국가 출신자가 범죄율이 높다’, ‘여성은 운전을 못 한다’와 같은 부정적인 편견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착하다’, ‘여자애들은 얌전하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고정관념이 차별적인 인식을 강화하는 혐오 표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잣대는 누군가의 숨을 옥죄는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 SNS와 인터넷은 혐오 표현 확산의 주된 통로이다. 이를 이용해 가짜뉴스로 순식간에 여론을 형성하고 한 집단을 매도한다. 이러한 이유로 혐오 표현은 권력의 수단이 된다. 이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반공 시대의 ‘빨갱이’, 군사정권의 지역주의가 그 예다. 이는 정권에 반대하거나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사회적 일탈자나 적으로 규정하고 낙인찍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호명과 낙인으로 야기되는 국민의 공포심을 통해 지배 권력은 자신의 의도대로 사회 여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의식을 제어한다. 통치수단으로 자리한 혐오는 기존의 사회문화적 차별 기제를 최대한 활용한다. 유교에서 시작된 성별과 나이 등에 의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나 장애인 차별까지 정치에 이용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발언을 혐오 표현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맥락상 호남 지역 차별 문제가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 2016년 서울대학교 성 소수자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고의로 훼손됐다.



  2010년대부터 한국에서 혐오 표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에도 특정 지역이나 성 소수자, 다문화 가정 등을 멸시하거나 혐오하는 단어가 흔재했으나, 2000년대 이후 신자유체제가 도입되고 보수 세력에서 진보 세력으로 정치 집권 세력이 바뀌면서 혐오 감정이 더 크고 뚜렷해졌다. 여성부, 인권위의 출범과 다문화 정책,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이전에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던 집단의 권리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주류 집단에 위기감과 불안감을 조성했고, 이 감정이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감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특정집단을 향한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에 그치기보다, 영향력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이 특정 집단을 향해 수위 높은 표현을 해 사회의 화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의 혐오 발언을 들 수 있다. 지난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및 무슬림 혐오 시선이 가득한 정당 공보물을 내걸었다. 비록 당시 선거 결과 기독자유당의 원내 진출은 실패했지만, 2.64%의 득표율을 차지했다. 정치인의 특정집단 혐오 발언은 사회에 자리 잡은 혐오 표현의 실태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온라인 혐오 표현도 팽배하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혐오와 관련한 기사는 ‘혐오 시설’ 등 대체로 물질과 관련된 혐오 내용을 다뤘다. 이후 혐오는 ‘소수자’, ‘동성애’, ‘외국인’, ‘장애인’ 등 사람과 관련된 내용에서 더 다뤄졌다. 혐오 표현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2012년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가 등장하고 해당 커뮤니티에서 등장하는 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더불어 온라인에서 벌어진 혐오 표현은 현실로 넘어와 실체를 드러내고 상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2014년 일베 회원이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황산 테러를 한 사건 ▲같은 해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취지로 벌인 폭식 투쟁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그 예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혐오’라는 용어가 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지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혐오 표현 관련 시정 요구 실태도 사회가 혐오로 얼룩졌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4건에 불과했던 차별·비하 표현 관련 시정 요구 건수는 2016년 2,455건으로 급증했다. 혐오 표현 관련 시정 요구 비율도 전체 건수 중 2014년 약 0.2%, 2016년 약 1.0%, 2017년 약 1.26%로 증가 추세를 보인다. 혐오 표현의 표적 집단은 ▲특정 지역민 42.8% ▲남성 16.1% ▲여성 14.1% ▲역사 왜곡 5.9%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5.0%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남성 혐오 표현이 전체 심의 건수 중 두 번째를 차지한다는 점은 전통적인 ‘소수자’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 집단도 혐오 표현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OO충’, ‘개독교’, ‘짱깨’ 등 집단을 혐오하는 표현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혐오 표적이 되는 집단은 더 세분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맘충’과 ‘노키즈존’도 새롭게 등장한 혐오 표현이자 차별이다. 아이를 둔 몇몇 엄마의 예의 없고 피해 주는 행동이 ‘아이 엄마’라는 동일 특성을 가진 집단의 고정 관념이 돼, 다른 엄마까지 기피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 혐오가 실행에 옮겨진 결과가 노키즈존이다. 지난 2017년 인권위는 노키즈존은 차별이라고 밝혔다. 어떤 집단의 출입을 금지했다고 모두 차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 영업점에서 아이와 엄마가 영업을 실현할 수 없게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노키즈존은 부당한 차별에 해당한다.



  인권위가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조사해 지난달 23일(수) 발표한 ‘2019년 혐오차별 국민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64%가 지난 1년간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대다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 혐오차별 대책을 수립해야 하느냐고 묻는 말에 8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고,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86%가 찬성했다. 특히 혐오차별 차별금지 법률을 제정하고 혐오 차별자를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찬성률도 각각 72%와 74%에 달했다. 국민이 혐오에 대한 강력한 대책과 처벌을 갈망하는 만큼 국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고용·직업훈련 등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금지한다. 제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으나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따라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원만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법 제정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해 중단됐다. 이어 2012년에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고, 지난해 9월에는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이 혐오 표현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차별과 혐오 표현을 제약하고자 지속해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여전히 결과물은 없다. 그뿐 아니라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의 기준이 모호해 구체적인 차별금지법 제정과 처벌 방안에 한계가 있다.



  외국에서는 혐오 표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은 출신, 성, 종교, 장애 여부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 차별을 금지하고 제거해 차별에 대한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물질·비물질적 손해를 받은 집단이나 개인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재산상의 손해가 아니더라도 피고용인은 적정 한도에서 손해에 대해 금전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혐오 표현을 다른 ‘차별 행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룬다. 고용 평등 차원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등 금지된 차별 사유에 근거한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차별 시정이나 민사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미국의 회사나 대학은 ‘표현 강령(Speech Code)’을 제정해 내부 구성원들의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영국은 평등법과 공공질서법으로 부당한 차별을 막는다. 평등법은 나이, 인종, 종교 등에 관한 언어적 괴롭힘을 규제한다. 공공질서법은 인종적 적대감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을 금지한다. 혐오 표현이 발생할 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혐오 표현 대책의 필요성에 관한 국제적 합의 수준은 높지만, 처벌에 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의견이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혐오 표현이 문제는 되지만 표현의 자유에 반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처벌로 규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혐오 표현은 늘 표현의 자유와 대립한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특히 소수자의 권리기 때문에 혐오 표현을 억제하고자 표현의 자유를 축소하면 오히려 잠재적 피해자의 권리가 축소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혐오 표현에 보다 현명히 개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기보다 더 많은 표현이 혐오 표현을 격퇴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방법이 금지와 허용의 무익한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제3의 선택지라고 설명한다. 희생자는 혐오 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제도적·교육적 지원이 필요하다. 희생자가 ‘침묵하게 만드는 효과’에 도전하게 한다. 혐오 표현 화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게 한다.



  여전히 우리는 표현의 자유와 제한의 대립 속에서 확실한 정답을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건과 집단이 얽혀 있는 문제인 만큼 막무가내의 차별 금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혐오 표현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도 없다. 개인의 표현 자유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 표현이 타인에 해악을 미치지 못하도록 우리는 조속히, 하지만 더욱 신중하게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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