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 문학상
알프레드 노벨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 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1901년부터 매년 전 세계의 작가 중 한 명에게 수여 하고 있다. 해당연도에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 하는 맨부커상과는 달리,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 하는 특징이 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노벨 문학상 ▲콩쿠르상 ▲맨부커상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으며 수상자는 메달과 함께 상금 9백만크로나(약 10억 9천만원)와 증서를 받는다. 올해는 1974년 이후 45년 만에 2명의 작가가 동시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노벨위원회 문학상 위원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 클로드 아르노의 성 추문 사건으로 작년 수상자의 발표를 올해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은 수상자 선정 기준 논란이 있다. 특정 작가의 문학적 성과나 업적이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처럼 계량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벨 문학상 심사에는 다른 분야의 노벨상보다 심사위원의 주관이 반영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회고록을 집필한 윈스턴 처칠이 195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과거에는 문학이라는 단어 ‘Literature’가 순수문학에만 국한된 단어가 아니었다. Literature는 ‘쓰는 행위’를 뜻하기 때문에 문학가뿐만 아니라 역사가나 철학자에게도 상을 수여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처칠에게 상이 수여된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주로 문학가에 수여 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최고의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림원의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매년 전 세계의 분야별 심사위원단 2천명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아 3백명 정도로 추린다. 이후 심사위원회는 약 6개월간 추천 후보들을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최종 1명을 선정한다. 선정된 후보는 약 4주간 30명으로 구성된 외부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거쳐 10월에 최종 발표된다. 이번 달 10일(목) 올해의 노벨 문학상은 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가 수상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여성으로써 15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2명의 여성 중 1명이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올가는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두꺼운 독자층을 보유한 작가이다. 그녀는 2000년 폴란드 문예지 좬문학생활좭과의 인터뷰에서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타자와의 공감, 바로 여기에 글쓰기의 본질과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민을 담고 있으며,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그녀는 신화와 전설,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차용한다. 인간의 욕망,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등을 특유의 섬세한 표현을 통해 이야기를 서술한다.
올가는 등단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상을 받았다. 등단작 좬책의 인물들의 여정좭은 폴란드 출판인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으로 뽑혔으며 세 번째 장편소설 좬태고의 시간들좭은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 하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니케 문학상의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으며, 폴란드 시사 잡지 좬폴리티카좭가 선정한 올해의 추천도서로 뽑혔다. 이후에도 니케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좬Bieguni(방랑자들)좭는 영어판 좬Flight좭로 번역돼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좬E.E좭 ▲좬낮의 집, 밤의 집좭 ▲좬선사시대, 그리고 다른 시간들좭 ▲좬망자의 뼈에 쟁기를 휘둘러라좭 ▲좬야고보서좭 등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돼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랑받고 있다. 2006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제1회 세계 젊은 작가 축전’에 초청돼 한국에 방문했다. 이때 그녀는 좬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좭라는 단편소설 모음집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이후 좬잃어버린 영혼좭과 좬태고의 시간들좭이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한국어로 번역됐으며, 맨부커상을 수상한 좬방랑자들좭은 이번 달 21일(월)에 한국어로 발간된다.
대중들은 책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즐겼다. 소설 좬E.E좭는 폴란드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됐고, 직접 좬낮의 집, 밤의 집좭과 좬선사시대, 그리고 다른 시간들좭을 각색해 연극 무대에 올렸다. 또한 2017년 좬망자의 뼈에 쟁기를 휘둘러라좭를 각색한 영화 〈스푸어〉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한편 올가의 제안으로 그녀가 사는 폴란드 브로츠와프 지방에서는 매년 ‘중단편 문학 페스티벌’이 열린다.
태고의 시간들(1996)
이 책은 20세기 현실과 허구가 중첩되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마을 ‘태고’를 배경으로 야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폴란드가 분할 점령당했던 시기, 1,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과 전후 폴란드의 국경선 변동, 사유재산의 국유화, 냉전체제에 이르기까지 실제 폴란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녹여냈다. 총 84편의 짧은 글로 이뤄진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됐다. 이 글의 형식은 독특하다. 등장인물 각각 개인의 이야기를 짧게 소개하다가 결국 같은 공간으로 모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책은 소수자,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특정 여성의 탄생부터 성장, 결혼과 출산, 노화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세계를 바라본다. ▲남편이 전쟁터에 끌려가고 유대인 청년에게 사랑을 느낀 게노베파 ▲평범해 보이지만 어둠과 슬픔이 깃든 삶을 살아낸 미시아 ▲숲속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치유와 예언의 능력을 갖게 된 크워스카 등이 대표적이다. 등장인물을 통해 역사의 비극 속에서 잊힐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신이나 자연의 시점으로도 서술하며 허구를 현실처럼 풀어냈다. 인간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터는 어려서부터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이중적 언어 환경은 그의 문학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첫 소설 좬말벌들좭을 포함한 많은 작품에서 수많은 전쟁 묘사와 그에 대한 불안감을 담았다. 많은 작품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주정뱅이로 서술됐고 이런 이유로 아버지와 멀어진 그는 자연스럽게 슬로베니아 출신인 어머니와 가까웠다.
한트케는 어머니 아래에서 ‘슬로베니안’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됐다. 그가 슬로베니아에 느끼는 연대감은 그의 번역 작업에서도 느껴진다. 1981년 슬로베니아 작가 리푸스의 소설 좬생도 챠츠좭를 시작으로 시, 소설 등을 독일어로 옮겼다. 한트케는 줄곧 “자신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왔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단순한 상상이기보다 그가 슬로베니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친 세르비아적 정치성향도 갖게 됐다. 발칸전쟁을 일으킨 ‘발칸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밀로셰비치를 옹호하는 말을 했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논란을 불러왔다. 과거에도 같은 논란이 존재했다. 한트케가 하인리히 하이네 상 수상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자 “나와 내 작품이 더 모독당하게 놔둘 수 없다”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현재 한림원은 노벨상 수상 기준에 정치적 배려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트케는 1966년 좬말벌들좭을 내면서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같은 해 주르캄프 출판사 사장 추천으로 ‘47그룹’에 초청됐다. ‘47그룹’은 당시 독일 문학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신인 작가의 발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룹이다. 초청된 자리에서 한트케는 당시 흐름인 신사실주의 문학과 참여주의 문학을 비판했다. 기존 문학계에 대한 반하는 그의 독설은 주목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47그룹’은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의 독설은 이목을 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해 6월 좬관객모독좭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서술하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했다.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감독으로 좬부재좭 등을 영화로 만들었으며, 빔 밴더스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한트케의 문학성은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최연소로 수상했으며, 카프카 상을 비롯해 20개가 넘는 문학상을 받았다.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노벨 문학상 연설에서 “이 상은 자신이 아닌 한트케가 받아야 한다”라고 극찬했다.
*친 세르비아적 정치성향: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6개의 나라 중 하나였다. 이 연방에서 발칸 반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대립구도였다.
관객모독(1966)
한트케는 좬나는 상아탑의 거주자좭라는 에세이에서 “얼마 전부터, 지금 쓰이는 문학은 더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전했다. 좬관객모독좭은 이런 그의 혁신적인 생각을 잘 보여준다. 언어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연극과 아주 다르다. 무대라는 장소는 관객석과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시간 역시 어느 특정 시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관객이 극을 관람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극은 특별한 사건도 없다. 그저 언어의 나열일 뿐이며, 모독하는 말의 연속이다. 관객 역시 경청하는 존재가 아니며 연극을 진행하는 배우도 아니다.
배우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욕을 통해 관객과의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아무 욕설이나 내뱉는다. 오직 언어극에 대한 설정의 이해를 돕는 예시와 설명 그리고 왜인지 모르는 욕설은 긴 여운을 남긴다. 좬관객모독좭은 소도구와 줄거리가 없는 연극이다. 하지만 기자는 연극이 아닌 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배우마저 없앴다. 오롯이 작가와 독자만이 존재하는 연극 속에서 한트케의 강렬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