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에 빠진 문화계
예술계의 생활고 문제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문화·예술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생활고로 죽음에 이른 문화·예술인들을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실제로 문화·예술계에는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자들의 문제가 끊이지 않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월수입 100만 원 이하가 무려 6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코로나-19는 힘든 상황에 놓인 문화예술인들을 궁지로 내몰았다. 각종 공연 및 전시회 등 문화 행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연달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그뿐만 아니라 제작이나 개봉 예정이던 영화나 방송들도 일정을 연기하거나 잠정 중단되면서 사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이에 정부는 코로나-19의 영향에 따라 어려움을 겪는 공연 및 전시업계에 대한 지원을 추진했다. 또한 정부는 피해를 입은 문화 예술계에 쿠폰을 발행해 소비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침체된 문화·예술 산업을 다시 되살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됨에 따라 이는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새로운 방안이 절실해 보인다.
지금은 언택트 시대!
코로나-19가 변화시킨 시대, 일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따라 사회는 그에 맞는 변화와 적응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등장한 방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언택트’ 문화이다. 언택트란 ‘접촉하다’라는 의미의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의 접두사 언(Un)이 결합된 말로, 사람과의 접촉 없이 이뤄지는 새로운 소비 경향이다. 이전부터 키오스크나 홈쇼핑, 온라인 쇼핑 등 언택트 문화는 증가하는 추세였다가 올해 2020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산업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관객들의 감상이 주축을 이루는 문화계에서도 일찍이 언택트 방식을 채택했다. 이미 많은 공연과 전시들이 실시간 생중계, VR,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택트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성인남녀 527명을 대상으로 언택트 문화의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 중 73.1%가 ‘언택트 문화에 긍정적’에 답했다. 이러한 반응은 ▲20대(74.6%) ▲30대(69.9%) ▲40대 이상(73.2%)으로 전 연령대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또 이들이 언택트 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복수 응답)는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안전한 문화라 생각돼서(79.9%) ▲대면·통화 등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져서(32.5%) ▲앱·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져서(28.3%) ▲생활이 더 편안해질 것 같아서(19.2%) ▲불필요한 대기시간이 줄어들어서(13.8%)등의 답변이 나왔다. 반면에 ‘언택트 문화에 부정적’이라는 답변도 11.6%에 달했다. 이에 대한 이유(복수 응답)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될 것 같아서(표정 등 비언어적 부분 확인이 어려워서)(49.2%) ▲앱/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소외돼서(44.3%)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 같아서(39.3%) 등의 응답이 나왔다.
이처럼 코로나-19가 가져온 언택트 문화의 대유행은 안전성과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생소한 방식,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점 등의 문제로 부정적인 측면 또한 존재한다. 문화·예술계 역시 긍정과 부정 의견이 뚜렷하다. 온라인 특성상, 쌍방향 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더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공연 진행시 실제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연출이나 세트를 볼 수 있어 좋다는 점 등 긍정적 반응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장에서 보고 느끼지 못한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구석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점차 언택트 문화생활이 대중화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현재는 이것이 코로나로 인한 대체재로 이해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하나의 온전한 문화 소비 방식으로 자리잡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이리얼트립 랜선투어 김성모 가이드 (출처:마이리얼트립 공식 블로그)
방구석 문화생활
언택트 문화하면 사람들은 전시와 공연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종류의 전시와 공연들이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오페라, 오케스트라, 뮤지컬, 무용, 콘서트, 미술 전시회, 그리고 박물관. 모두 유튜브, 네이버 TV, SNS 등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전시회와 박물관은 큐레이터의 설명이 함께 서비스돼 작품에 대해 깊게 이해하며 관람할 수 있다. 공연도 현장의 열기를 집에서 느끼고 의견과 생각의 표현도 마음껏 할 수 있어 더 다채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생생한 현장감을 더욱 높이기 위해 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기술이 VR 영상인데, 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이용한 영상으로, 컴퓨터로 만들어놓은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이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제9회 ARKO 한국 창작음악제 양악 부문이 360도로 촬영된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원하는 방향대로 영상을 움직이면, 소리도 함께 움직이며 마치 무대의 한 가운데에서 관람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장보다 더 생동감 있는 공연 관람을 언택트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공연뿐만 아니라 국립제주 박물관도 VR 서비스를 제공해 마치 박물관을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에 잠식당한 2020년, 문화생활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아쉬워하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여행을 꼽을 수 있다. 전시와 공연처럼 감상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영역은 언택트로 진행되기에 비교적 수월한 반면, 언택트로 떠나는 여행은 머릿속에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망한 이들을 달래는 방안이 있으니, 바로 ‘랜선 투어’다. 우리나라에선 마이리얼트립이 가이드 라이브와 손잡고 출시한 랜선 투어 상품이 대표적이다. 랜선 투어는 말 그대로 온라인상에서 즐기는 여행이다. 어쩐지 설명만 들었을 때는 ‘세계 테마 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타인의 여행을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흔한 프로그램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최근의 랜선 투어는 ‘공간 정보’와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이용해 사용자가 능동적이고 입체적인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인터랙티브(Inter-active)는 ‘상호 간’이라는 뜻의 인터(Inter)와 ‘활동적’이라는 뜻의 액티브(Active)의 합성어로, 상호활동적 즉 쌍방향적인 의미를 지닌다. 투어 방식은 간단하다. Zoom이나 유튜브 같은 실시간 미디어를 통해 가이드와 참가자가 쌍방향의 소통을 하며 간접 여행을 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가이드들의 특징을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직접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여행만큼의 만족도를 느끼기엔 부족하겠지만,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주도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랜선 투어는 소비자들에게는 즐거운 여행 경험 제공을, 여행 시장에는 미래 고객들의 확보를 가능케하는 획기적인 여행 콘텐츠인 것이다.
▲ARKO한국 창작 음악회를 VR영상으로 즐기는 모습(출처:Youtube채널‘공연예술 창작산실’)
스포츠 경기 관람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포기하게 된 문화생활 중 하나다. 물론 이전부터 스포츠 경기는 TV나 인터넷 생중계로 보는 것이 대중화돼 있었기 때문에 언택트 스포츠 경기 관람은 꽤 익숙하다. 하지만 관중 없이 진행되는 스포츠 경기는 예전과 같은 느낌을 주진 못한다. 스포츠 경기 관람의 묘미인 팬들의 응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스포츠계에서는 새로운 응원 문화인 언택트 라이브 응원전이 열리고 있다. 특히 프로야구 KT 구단은 올해부터 꾸준히 언택트 라이브 응원전 행사를 진행 중이다. KT 구단은 올해 수원 KT 위즈 파크 내 330m의 LED 띠 전광판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 전광판 속에는 각자 연결된 PC 카메라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며 실시간으로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이 담긴다. 이를 통해 스포츠 팬들은 좋아하는 선수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으며, 응원단 바로 앞자리에서 관람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KT언택트라이브응원전
언택트는 국민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며, 침체기에 빠진 문화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더불어 대면으로 이뤄질 때는 겪을 수 없는, 언택트가 가지는 장점들 또한 많은 이들에게 인식됐다. 이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콘텐츠들이 우리 사이에 정착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언젠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난 이후에도 코로나-19가 남긴 흔적들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 시장의 침체기,
잇따르는 사회 공헌들
이러한 다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 시장과 예술가들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에 곳곳에서 이들을 위한 사회공헌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피해를 본 영화 산업과 독립 예술 영화관들을 위해 예스24는 ‘세이브 아워 시네마(SAVE OUR CINEMA)’를 지난달 25일(화)까지 진행했다. 예스24 홈페이지 내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전국 15개 독립예술영화관을 소개하고, 이 중 극장 한 곳을 선택해 ‘응원하기’를 누르면 해당 극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화 예매 할인권 2,000원을 극장별로 선착순 100명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죽어가는 독립예술영화관을 향한 관심을 환기해 현재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고안한 방식이다.
서울문화재단 역시 위기 상황 속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창작 활동을 북돋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월 31일(월)부터 9월 11일(금)까지 온라인 미디어 예술 활동 지원 사업인 ‘아트 머스트 고 온’에 참여할 예술인들과 크레이터들을 공모했다. ‘아트 머스트 고 온’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하는 창작 환경 속에서도 예술인들의 활동 지속을 위해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뿐만 아니라 올 초 3월, 서울문화재단은 버드와이저와 함께 국내 인디 음악계를 위해 ‘인디 뮤지션 공연영상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국내 인디 뮤지션 홍보와 인디 음악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또한 매년 이어왔던 ‘소소한 기부’ 사업의 지원 대상을 대폭 늘여 올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많은 힘이 됐다.
하지만 침체되는 문화계를 잡아주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이나 금전적 지원도 아닌 사람들의 관심이다. 예전처럼 문화인으로서 활발한 참여는 어려울지라도, 나아질 미래를 기약하며 꾸준한 응원과 관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