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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김영서 ㅣ 기사 승인 2020-05-12 13  |  629호 ㅣ 조회수 : 157



  건축가는 주로 강인한 남성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시멘트와 철근 등과같은 차갑고 무거운 자재들과 먼지와 흙이 뒤덮인 공사 현장의 느낌은 여성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업종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들기 마련이다. 실제로 과거에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건축계는 남성이 득세한 분야였다. 그러나 건축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바로 그간 남성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던 건축계에 여성건축가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한것이다.



  과거 여성건축가들은 건축계에서 소외됐다.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원제:Where Are the Women Architects?> 라는 책에서는 이에대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준다. 1991년 프리츠커상은 미국출신의 남성 로버트 벤투리가 단독 수상했다. 하지만 벤투리는 30년 넘게 공동 대표이자 건축가, 기획자였던 아내 데니스스콧 브라운과의 공동수상을 인정해달라고 했지만, 심사위원들은 공동 대표나 회사가 아닌 개인만이 수상할 수 있다고 공식발표하며 거절했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1988년 단독수상이 아니라 남성 공동 대표가 수상한 적이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2년에 중국인 건축가 왕수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지만 15년 동안 동업한 동업자이자 아내인 루원위를 제외했다. 심지어 수상에서 언급된14개의 작품 중13개의 프로젝트를 아내와 함께 진행했기에 수상자인 왕수는 공동수상을 주장했지만 결국 루원위는 수상에서 배제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프리츠커상’의 이번 수상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올해 3월 3일, 아일랜드의 여성 듀오건축가 ‘이본 파렐’과 ‘셸리 맥나마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사실 프리츠커상의 여성최초 단독 수상자는 2004년에 이라크에서 태어난 건축가 ‘자하하디드’가 이미수상했었다. 이외에도 2010년 남성 동료들과 함께 설계사무소를 운영한‘세지마 가즈요’와2017년에 남성 동료들과 같이 수상한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카르메 피엠’이있다. 하지만 이번 수상은 ‘여성 듀오건축가’가 대표하는 건축 설계사무소의 최초 수상이므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프리츠커상은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그리고 헌신을 결합해 인류와 환경을 만드는 데 지속적이고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 선정은 인종, 색깔, 출신, 종교, 성별, 장애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선정되며 수상은 건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흥미를 갖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지명된다. 일반적으로 매해 5월 해마다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다. 개최 장소는 수상자와 연관 없이 결정한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에 우리에게는 호텔 이름으로서 더 익숙한 하얏트 재단에 의해 만들어졌다. 상은 시카고 출신의 제이 프리츠커와 신디 프리츠커가 만들어 이들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만 달러와 미국 시카고의 저명한 건축가이자 마천루(고층 건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이스 설리반’이 디자인한 청동 메달이 수여된다. 한편 일본, 중국, 인도, 이라크 등과 같은 아시아에서 수상한 바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에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계획으로 프리츠커 수상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3개월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육성하겠다는 태도는 근시안적인 태도라며 학계의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2020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본 파렐과 셀리 맥나마라는 더블린 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1976년 그들은 졸업할 때 모교에서 강의를 제안받고 가르침과 더불어 2006년도까지 계속 교육을 수료했으며, 2015년에는 겸임교수로서 임명된다. 1978년 파렐과 맥나마라는 그들을 포함한 5명과 함께 건축 사무소가 있는 거리의 이름을 따서 그래프톤 건축 사무소를 설립하지만, 이후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떠나게 된다. 그들은 2008년, 사무소를 설립한 지 25년 이후 밀라노 보코니 대학교에서 지은 건축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 건축 축제에서 올해의 세계 건축상을 받으며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프리츠커 상 수상자 어본 파렐(왼쪽)과 샐리 맥니마라



  이후 그들은 크고 작은 상을 받으며 작업을 계속하는데, 그중에서도 페루에서 지은 리마 공과대학 캠퍼스는 비평가와 언론사에 ‘현대의 마추픽추’라고 불릴 정도로 큰 찬사를 받았다.



  산과 절벽으로 가득한 섬인 아일랜드의 자연은 그들의 건축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건물이 주변 자연과 지역에 조화를 이루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건축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들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건축 시상식에서 “우리는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서 일상생활 안에서의 건축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관심이 있다”라며 “우리는 지구를 고객으로서 보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연을) 지속되게 하는 책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라고 자신들의 철학을 밝혔다.





▲'현대의 마추픽추' UTEC리마 내부



  이들이 지은 리마 공과대학 캠퍼스(이하 리마 공대)는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들은 리마 공대를 지을 때 같은 지역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번 프리츠커상의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건물들은 일관적으로 다채롭지만 수수함이 남아있다. 도시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도시를 향상하고 지속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라며 심사평을 남겼다. 또한 그들이 지은 리마 공대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냈다. 리마 공대는 한쪽에는 협곡에 가라앉는 고속도로가 있고 그 옆에는 주거시설이 있는 아주 도전적인 장소에 있다. 그 결과 수직적이고 연속되는 건물(캠퍼스)은 장소와 기후적 요건에 대응하고 있다. 캠퍼스의 열린 공간은 의도적으로 시원한 바다의 바람을 환영하고 있으며, 에어컨의 필요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 페루 UTEC리마 전명



  또한 이 건축물로 2016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로부터 첫 국제상을 받는다. RIBA의 회장인 제인 던칸은 “리마의 대학 캠퍼스는 지역 환경과 지역사회에 높은 반응성을 보이는 혁신적인 대학 캠퍼스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라며 극찬했다. 이 ‘수직 캠퍼스’ 모델은 개방과 밀폐된 공간이 혼합된 것처럼 관습에 저항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빌딩의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성공의 핵심이다. 즉, 이 건축물은 주변 지형 조건에 알맞으면서도 지역과 어울리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시각적 디자인에 더해 건축 내부와 외부가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인 이본 파렐은 “건축은 지구 안에서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문화적 활동 중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라며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이 상을 받는 것은 우리의 건축에 대한 믿음을 훌륭하게 지지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영예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프리츠커상에 대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우리나라에도 프리츠커상 여성 최초 수상자의 건축물이 있다. 바로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역에 위치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이다.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는 영국 국적으로 독창적이고, 디자인적으로 매우 실험적인 작품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미래적인 디자인에 직선보다는 곡선을 주로 활용하며 다른 건축물과 외관상 큰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DDP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건축물인 독일에 위치한 ‘비트라 소방서’를 제외하면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완만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곡선은 그녀의 어린 시절, 사막을 보며 자란 것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왜 직선을 쓰지 않느냐는 한 질문에 “삶은 격자무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경관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라며 “자연경관은 평평하거나 균일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느낀다. 나는 건축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밝혔다. 그녀는 비정형 디자인으로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평을 받아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다.



  자하 하디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실험적인 건축아이디어와 실제 건축 난이도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전까지 실제로 만들어진 건물이 없어 ‘페이퍼 아키텍트’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었다. 이러한 그녀를 세계무대에 데뷔시킨 작품이 1993년에 완공한 ‘비트라 소방서’이다. 당시 인지도가 없었던 자하 하디드는 이후 독창적인 시도를 인정받아 다양한 작품 제안을 받게 된다. 중국의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헤이다르 아리에프센터’, ‘런던 올림픽 수영장’ 등 왕성한 활동과 함께 그녀만의 작품 세계를 보이며 찬사를 받는다.



  한편,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DDP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또 그리고 만들어진 이후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설계 당시부터 현대적인 건축물의 디자인이 동대문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이 있었다.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후에 경선을 통해 “환유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이 건축물은 당시 약 800억 원 정도로 책정된 예산에서 약 5000억으로 늘어나 유례없는 건축비용을 들여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공모를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7명의 심사위원 중 4명이 외국인이어서 과연 심사과정에서 공정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이 있었다. 또 당시 DDP가 있던 자리에는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야구장이 있었는데 이는 1925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한양도성 성벽을 이용해 관중석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들을 그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옮겨서 보존하기로 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발견된 유적은 그 자리에서 보존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는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디지털 플라자의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과 성벽의 대비가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주변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긍정적인 여론도 많다. 또한 DDP의 방문객이 당초 예상을 넘는 한 해 680만 명을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면서 관광명소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고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민들도 다수이다. 그뿐만 아니라 2015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5년 꼭 가봐야 할 명소52’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각종 국제, 국내 주요한 행사들이 열려 랜드마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도 존재한 만큼 이에 대한 비판과 찬사의 여론은 계속 갈리고 있다.



  이에 자하 하디드는 DDP 개관식을 앞두고 열린 인터뷰에서 규모가 과하다는 비난에 대해서 “곡선 대신 직선의 박스 형태로 건축물을 지었다면 지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더 거대해 보였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하디드는 “앞으로는 세계 모든 도시가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인데 도시의 모습을 바꿀 때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에만 열중하는 게 아니라 도시의 변화하는 특성을 반영하고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라고 비전에 대해서 밝혔다. 또한 하디드는 “여성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며, 과거보다 편견이나 차별이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힘든 점이 있다”라고 밝혔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의 미래와 현실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자 우리대학 건축학부 김민경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건축학부 건축학전공에서 건축설계 및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간혹 건축 실무 작업도 하고 있는 김민경 교수입니다.



Q. 아직도 일반적으로 여성은 건축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건축계가 실제로 근무하기 힘든 편인가요?

  A. 힘들다는 의미를 정신적·육체적 의미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건축설계 분야이기에 건축공사에 관련된 엔지니어링 종사 여성과는 또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정신적으로는 항상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걸 창조해 내는 직업이기에 정신적으로 남녀 모두 힘듭니다. 제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는 여성 건축가가 별로 없어서 직장 내에서 ‘시스터후드’를 누릴 기회가 별로 없었고 따라서 정신적 피로를 함께 나눌 친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남성이어서 나름 남성과 함께 일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 정신적 피로를 공유하고 풀기도 했죠. 육체적인 부분은 남녀 모두 힘듭니다. 하지만 건축학과의 여학우들은 이미 학교 다닐 때부터 고된 작업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또한 큰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축학도의 생활을 하지 않은 분들이 보기엔 다소 힘들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근엔 업무환경이 많이 바뀌어 수월해졌습니다.



Q. 건축계에서 과거 여성에 대해 있었던 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과거 상황과 비교해서 지금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첫 직장에서 대리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한 경우여서 다른 동기들보다 승진이 1년 빨리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팀장님은 제가(여직원이) 1년 빨리 승진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팀장님께서 노력하신 결과라는 말씀도 살짝 곁들이셨죠. 벌써 25년 전 일이네요. 당시엔 여성이 승진에서 남성보다 밀리는 이유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시에도 아주 소수이기는 하나 여성임원 분들도 계셨고 업무에서 여성이라고 차별받는 건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본인만 잘하면 문제가 없었죠. 다만 임원까지 가는데 십여 년의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버티고 남아있는 여성이 별로 없다는 게 또 사실이에요. 게임에만 ‘존버’가 필요한 게 아니라 회사에서도 ‘존버’가 필요한 것 같아요. 현재는 일단 수적인 면에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 건축가가 증가했죠. 기업에 종사하는 스텝으로서도 많고 실무 경험 후 건축사무소를 개설해서 대표 건축사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과거보다 상황은 매우 좋아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건축은 큰 자본이 소요되는 큰 프로젝트가 매우 많죠. 규모나 공사비가 커질수록 건축가는 리더이자 코디네이터로서 자질이 매우 중요해요. 제 생각에는 현재의 건축계는 남자나 여자나 성별의 문제가 아닌 리더로서 자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Q. 중국과 일본, 이라크, 인도 등 아시아에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적이 꽤 있습니다. 관련해서 2019년 우리 정부에서는 프리츠커상을 받기 위해 육성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한국에서는 아직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프리츠커상을 받기 위한 육성사업이란 용어 자체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예를 들어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서 글쓰기 훈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참여하거나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 위해 노벨물리학상 육성 프로그램을 강화해서 학생들에게 참여하도록 지원하면 결과가 만들어질까요? 문학상이나 물리학상과 마찬가지로 프리츠커상 역시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끈질기게 실험하고 실패하고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도에 또 도전하고 하는 과정을 인정하는 것이지 단기간 얼마간의 돈을 투자해서 육성한다고 수상 되는 게 아니에요. 과정엔 관심 없이 최상이 결과만 바라보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성과주의가 또 한 번 발동한 거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사회, 정치, 경제 등 총체적 구조에 따른 문제에요. 우리나라는 아마도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설계단계와 가장 빠른 설계 기간을 요구하는 나라일 거예요. 조그마한 단독주택을 지어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매우 많아요. 건축가가 충분히 생각하고 최상의 결론을 도출할 시간을 주지 않고, 시간을 가지도록 지원하지도 않는다면 건축가의 기본역량을 떠나 훌륭한 건축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또한 시공자에게 매우 저렴하게 책정된 평당 공사비를 정해놓고 이 돈으로 어떻게든 지으라는 문화와 인식이 저변에 깔린 우리나라에서 정성 들여 꼼꼼하고 아름답게 시공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일 수도 있어요.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아요.



Q.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A. 건축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인위적인 환경을 구성하고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건축이에요. 즉, 건축은 우리 일상 모든 순간에 바로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은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았을 거예요. 일상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건축과 공간에 대해서,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대해서 우리는 무관심하거나 아름다움을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래전 유홍준 교수님께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 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도 하셨죠.



  건축이 중요한 문화의 한 영역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지역사회에 들어서는 건축물에 대해 지역민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공론의 장이 펼쳐질 때, 또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건축학도로 자라고 프로페셔널 건축가가 돼 건축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지역사회와 건축주가 많아져 그들을 위해 본인의 정열을 쏟아내는 프로페셔널 건축가들이 늘어날 때, 비로소 프리츠커 수상자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해요.



Q. 건축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건축가가 그은 선하나가 벽이 되고 지붕이 되면서 공간과 형태를 만들어요. 그것에 햇빛과 풍경이 어우러지면서 그곳에 머무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의 한 부분이 되는 건축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축을 통한 창작은 중독과도 같아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건축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건축가를 꿈꾸는 학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A. 건축가는 언제든 꺼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책이 마음속에 있어야 해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던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터는 “건축은 기억”이라고 말했어요. 그의 디자인은 그의 삶의 궤적 안에 박혀있는 다양한 순간의 기억 중 지금의 작업과 관계되는 기억을 소환하는 거로 시작한다고 해요.



  소환할 기억이 많을수록 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공간을 지어낼 수 있겠지요. 단순히 글 쓰는 솜씨로만으로 소설가가 될 수 없지요. 소설가 자신이 직접 겪거나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자신의 것이 될 만큼 치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감동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는 진짜 소설가가 되는 거예요. 건축가 역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의미 있게 경험하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과 같은 긍정적 경험뿐만 아니라 죽음이나 슬픔, 상실과 같은 어두운 경험도 물론 중요해요. 왜냐하면 건축은 인간이 겪는 다양한 경험을 건축물로 드러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본인이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잘 전달하기란 쉽지 않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많이 알기 위해서 많이 경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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