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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창작상 : 소설 우수
밤의 산책 (수상자 : 강지예)

  그 풍경에는 명암의 구분이 없었다. 단조로운 음계의 반복처럼 고요하고 지루했다.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손부채를 부쳐 가며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뒤섞였다. 기름으로 떡이 진 앞머리가 간지러웠다. 다른 한 손으로는 다리에 들러붙는 치마를 떼어내며, 눈을 어둠에 적응시켰다. 갑작스런 암흑에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애들의 윤곽이 더러 보였다.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짜증스럽게 두드려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애들을 뒤로 하고 교문을 나섰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이 학교를 그나마 다닐 만하게 해주는 점이었다. 학교를 벗어나 어느 정도 걸어 나오니 거리가 한산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거리에 신호등은커녕 가로등조차 불이 들어오지 않아 흑백이었다. 습한 여름밤이 싸늘하게 다가왔다. 빛이 없어서일까.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은 당연히 꺼져 있었다. 이런 정전에 버스가 다니기는 하려나? 생각하며 도로를 건넜다. 횡단보도는 무시했다. 지금의 횡단보도는 하얀 선이 아니라, 까만 선과 덜 까만 선의 반복으로만 보였다. 원래 무단횡단을 일삼아왔지만, 오늘은 왠지 좌우를 살펴야 할 것 같았다. 매일 다니는 익숙한 길이라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기고 나니 낯설게만 보였다. 누가 쫓아올 것만 같아 계속 뒤돌아보면서 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고요한 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꼭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이 접착제가 되었다. 한 계단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올랐다. 내 체중과 책가방의 무게가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체력 좀 길러놓을걸, 후회를 하며 계단에 발을 올려놓을 때마다 숨과 함께 짧은 욕을 내뱉었다. 얼마쯤 왔을까, 더듬거리며 계단 끝의 평지로 나아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층수를 확인했다. 그나마 의지가 될 휴대폰은 수업시간에 몰래 써 이미 방전된 상태였다. 불빛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이라 층계의 숫자가 잘 분간되지 않았다. 십삼 층, 드디어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엘리베이터로 몇 초 만에 도착할 거리를 거의 몇 십 분이 걸려서야 다다랐다. 이런 한여름에도 차기만 하던 내 손인데, 십삼 층을 걸어 올라오니 땀이 흥건하게 나 있었다. 손바닥에 물감을 발라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어록을 열었다. 엷은 푸른빛이 새삼 예뻤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미끄러지길 반복하다가 문을 열었다. 집안도 깜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어컨 바람이 없어 후덥지근하기까지 했다.

  대충 신발을 벗어 던져놓고 여느 때처럼 오빠가 갑자기 나타날까봐 주춤거리며 내 방으로 향했다. 웬일인지 방문 앞까지 왔는데도 오빠 손이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누가 밀치기라도 한 듯, 괜히 혼자 휘청거렸다. 오빠는 도어록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강아지처럼 현관으로 달려가 숨어 있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한테도 그랬다. 둘은 알면서도 놀란 척해주었다. 나는 몇 번 무시했더니 오빠가 더 세게 밀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집안은 인기척이 없이 고요할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쭈뼛거린 게 민망해 주섬주섬 가방을 벗었다. 무거운 가방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폰을 꺼내 배터리를 갈았다. 빛이 보였다. 다행히 충전이 되어 있었다. 눈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빛이 눈꺼풀에 스며들었다. 실눈을 떴다. 통신망이 끊겨 있었다. 휴대폰은 손전등이 되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멍청히 어둠에 시선을 던졌다. 휴대폰 불빛은 꺼버렸다. 불빛이, 시끄러웠다. 빛이 생기니까, 내가 볼 수 있는 건 밝은 부분뿐이었다. 불빛에 비친 사물들도 괜히 무섭게 보였다. 내 손짓에 따라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일상적인 가구들이 공포영화의 소품이 된 것 같았다. 차라리 사방이 어두운 게 나았다. 눈은 다시금 어둠에 차츰 적응해갔다. 더듬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액자의 윤곽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진열장 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빠는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었다. 상장을 품에 안은 채 아빠가 든 카메라를, 아니, 아빠가 오빠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짓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쳐다보는 게 눈에 선했다. 나는 옆에서 오빠와 상반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카메라 렌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진열장에 늘어선 오빠의 상들 때문에 나는 항상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다녀야 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며 커다란 실루엣이 들어왔다. 오빠는 저만큼 덩치가 큰 편은 아니니까, 아빠다. 아빠도 계단으로 올라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너희 오빠가, 사라졌다.”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다. 엄마는 오빠를 찾느라 밖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한테 연락을 하려 했지만 정전 때문에 통신이 마비되어 방법이 없었다고도 했다. 엄마와도 떨어지게 되었고, 혹시 오빠가 집에 와 있을까 봐 먼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빠의 눈에는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아빠는 나더러 오빠를 찾아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오빠가 있을까봐 들어왔다면서, 방을 뒤져 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나도 소파에 기대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료함이 찾아왔다.

  정전이 된 상태에서는 집에 있어도 할 게 없었다. 앉아만 있는 아빠는 꺼진 텔레비전 화면 같았다. 멍한 두 눈은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의욕을 잃은 듯 멍하니 앉아 있는 아빠는 자식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절망이라기보다는 소외의 감정이 묻어났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아마 오빠한테만 정신이 팔려 있는 엄마 때문일 것이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오빠가 어렸을 때까지는 자폐아인 걸 몰랐다고 한다.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가보다, 싶었다고 한다. 그런 오빠에 비해 내가 배우는 속도가 빠른 걸 보고 오빠가 아닌 내가 영재인 줄 알았다고도 그랬다. 그건 나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아마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일 것이다. 엄마아빠의 기대를 온몸에 받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오빠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조바심이 난 엄마가 병원에 다녀왔다. 엄마의 표정은 당시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나에게 오빠가 평생 일곱 살일 거라고 했다. 내가 영재가 아니란 건 오빠가 자폐아라는 걸 안 순간 밝혀졌지만, 두 분은 여전히 내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조용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금 딱히 다른 할 만한 일도 없었다. 아빠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계단 앞까지 온 뒤에야 다시 올라올 일이 막막했지만, 그냥 내려갔다. 돌아올 때쯤에는 전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오빠가 갈 만한 데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가 같이 다닌 장소는 그저 학교와 집뿐이었다. 내 머리가 좀 큰 이후부터 오빠와 함께한 곳은 그 두 군데밖에 없었다. 오빠가 어디에서 없어졌는지도 몰랐다. 나는 바람 쐬러 나온 것처럼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네온사인이며 입간판 등의 각종 불빛이 점멸하던 번화가는 정전이 되자 침묵했다.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없이도 바람은 후덥지근했다. 습기를 어떻게 그림에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오빠의 그림이 떠올랐다. 마구잡이로 붓질을 한 것 같지만 딱 보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그림, 습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손을 대면 말라붙은 물감의 질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림. 그 그림 생각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를 식혀 주면 좋을 텐데. 오히려 정반대의 공기가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집 주변에 조성된 공원을 거닐었다. 개구리들이 울고 있었다. 공원의 연못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비가 오려고 하면 개구리들이 먼저 느끼고 운다고 들었던 것 같다. 동물들은 사람보다 더 예민하다고 하니까, 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수학이나 과학 시간엔 잠만 자거나 낙서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으니까. 개구리들은 계속 울어댔다. 개구리가 야행성이던가? 개구리들은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사라진 밤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시끄러웠다. 알 수 없는 말들만 지껄여대고 있었다, 오빠처럼.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

 

  어둠은 눈을 가렸고, 고요함은 귀를 먹먹하게 했다. 오감은 예민해지기는커녕 더 둔해지는 것 같았다. 감각이 없는 채로 가만히 있으니 뇌까지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의 머리는 항상 이런 상태일까. 오빠는 나와 같은 나이에 입학했다. 정신 연령이 일곱 살에만 그쳐 있기 때문이었다. 지능이었던가? 맞아, 오빠는 불쌍하니까 내가 잘 돌봐줘야 한다고,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도 했다. 눈을 감고 회상하는 것처럼, 유독 평소보다 기억이 잘 났다. 다른 애들은 오빠나 언니 빽 믿고 나대기도 하던데, 나는 오빠의 등하굣길까지 책임져야했다. 반 친구들은 오빠에게 궂은 장난을 쳤다. 나도 예외 없이 오빠와 한 세트로 묶여 놀림을 당하곤 했다. 오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특수 학급에서 보냈다. 때문에 놀림을 받는 건 아무 죄도 없는 나뿐이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었다. 내 눈에는 그저 애들 낙서처럼 휘갈겨 놓은 오빠의 그림을 사람들은 천재적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내가 상을 타 와도,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오빠에게로 향했다. 오빠가 처음 붓을 잡았을 때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다. 오빠보다 먼저 시작했다. 예술 고등학교에도 진학하려 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오빠는 미술치료를 계기로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빠는 특히 붓을 좋아했다. 내킬 때만 붓을 집어 들고 마음대로 도화지를 휘저었다. 내가 체계적이고 틀에 박힌 것을 배우느라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오빠는 영감을 얻었다. 도화지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공모전에 내기 위한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 또한 짧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준비 같은 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그려둔 그림을 부치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마감일에 맞추는 데 급급하기 일쑤였다. 출품하러 가는 날에는 행여 얼룩이라도 질까 봐 조바심을 내며 유난을 떨기도 했다. 나는 마감일 전날에야 그림을 완성하곤 했다. 시간이 늦어 다음날에 내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 도화지는 물감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오빠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여긴 나는 난동을 부리며 방으로 쳐들어가려 했다. 방에서 떨고 있는 오빠를 싸고돌며 엄마가 문을 닫았다. 나는 문을 막아서는 엄마를 쏘아보았다. 엄마의 눈빛은 서늘했다. 나는 그 기세에 애써 눌리지 않은 척, 목소리가 방 안에까지 들리게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한 말은, 차마 가족으로써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말이었다. 그 뒤로 오빠는 내가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구길 때마다 위축이 된 채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엄마는 오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아니, 엄마가 오빠를 끌고 다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대회다, 전시회다, 방송이다, 하면서 혼자 바빴다. 요즘에야 미술사 같은 걸 배우러 문화 센터에 나가느라 치맛바람이 덜해지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나와 오빠의 전속 운전기사나 다름없었다. 엄마가 문화 센터에 나가는 이유도 어이없었다. 오빠 상태가 저러니 엄마라도 미술에 대한 지식을 배워 둬서, 오빠는 화가로, 당신은 대리인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미래에 나는 화가 역할에서 빠져 있었다. 처음에 엄마는 그 대리인 역할을 나에게 맡기려 했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보다 차라리 큐레이터 같은 걸 맡으면 어떻겠냐고, 남매가 서로를 서포트해주면 좋을 거라고 했었다. 당연히 나는 무시했다. 열을 내기에는 같잖은 제안처럼 들렸다. 그건 그냥 엄마의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었다.

  대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는 뒷좌석에 우리를 나란히 태우고 승용차를 몰곤 했다. 오빠를 조수석에 앉히기에는 산만해서 운전에 방해가 될 게 뻔했고, 그렇다고 내가 앞에 앉으면 오빠가 흥분했을 때 저지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되도록 오빠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려 했다. 오빠는 작지도 않은 덩치로 정신 사납게 손짓 발짓을 해댔다. 가끔가다가는 소리도 지르곤 했는데, 엄마는 오빠에게는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내 쪽만 응시할 뿐이었다. 룸미러를 통해 엄마의 선글라스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오빠의 안전벨트를 매 주거나 조용히 하도록 진정시켰다.

 

  불이 갑자기 꺼진 건 야자 시간이었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야자를 안 해도 될 분위기가 되자 환호하는 애들도 있었다. 전력 복구를 기다렸지만 빛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책가방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같이 무서워해줄 친구도 옆에 없었다. 오빠라도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될까, 잠깐 떠올려 보았지만 괜한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다 오빠 때문이었으니까. 오빠만 아니었어도 나는 계속 미술을 했고, 야자에서 빠졌을 것이다. 야자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예체능계 학생도 잡을 수 있으면 야자에 잡아두려 했다. 학원 교육보다는 학교에서 자습하는 게 최고라고 믿는 선생이었다. 쓸데없이 자부심만 두둑한 인간이었다. 내가 미술에 정이 떨어진 데는 그 선생도 한 몫 했다. 그는 오빠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해대곤 했다.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순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만 그 선생 앞에서 폭발해 버렸다. 실기대회 전날에 공결 처리를 해 주지 않겠다고 이상한 고집을 부려댔을 때였다. 1차 공모전에 합격해 2차로 실기대회를 나가려고 공문을 보여드렸는데, 그의 히스테리가 발동한 것이다. 공문까지 보여드린 데다 입시에 매우 중요한 대회라 빠지는 걸 이해해 줄 만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선생의 성질머리를 건드린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종종 그런 일이 있어서 예체능계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선생이긴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예체능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실기 대회에 나가긴 했다. 출석 처리는 물론 되지 않았다. 컨디션 난조였는지, 상도 타지 못했다. 선생은 자기 말을 무시하고 결석까지 했는데 상하나 타 오지 못했다며, 또다시 오빠와 나를 비교했다. 선생의 눈에서 엄마의 눈빛을 본 것 같았다. 상을 타지 못했다는 걸 전해 주었을 때 받은 그 눈길. 입시대회는 오빠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 나만 나갔다. 엄마는 나를 데려다주지 않았다. 문화센터에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내게는 기대조차 걸지 않았으면서, 결과만 보고는 항상 타박을 해댔다. 나는 홧김에 선생에게 그 자리에서 미술을 그만두겠다고 말을 던져버렸다.

 

  화단에 걸터앉은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실루엣이었다. 살짝 엉킨 파마머리를 보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휴대폰 불빛을 비추었다. 엄마는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불빛에 반사되는 눈은 짜증을 내면서도 공허했다. 나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이었다.

  엄마가 문화 센터에 다니느라 바쁜 동안 오빠를 챙기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나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엄마가 맡긴 임무였는데, 야자를 핑계로 곧잘 안 지키곤 했다. 집에 간다면 오빠를 데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가야 했으니까.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눈길을 거두었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나란히 앉으려는데 엄마가 일어났다. 엄마가 어디를 찾아봤냐고 물었다. 엄마는 나누어져서 찾아보자고 하며 내가 맡을 구역을 일러주고는 황망히 자리를 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정전이 되자 다들 제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휴대폰에 의지하거나 앞이 안 보여 더듬거리며 걸어갔다. 걸어가는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는 정도였다. 방금 눈이 먼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전은 일시적인 것이니 자신의 장애도 일시적이라고 치부하는 그들은 자신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이상할 게 없는 것처럼, 오빠도 어린 아이들 사이에 있으면 다를 게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빛은 오빠의 덩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오빠가 어둠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밤이 되어도 전등을 켜 놓지 않아서 오빠 방에는 전구도 필요 없을 것 같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오빠는 집안에서도 종종 사라지곤 했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를 다니는 지금까지도 오빠는 계속 어둠을 찾아다녔다. 평소에도 오빠의 머릿속은 검은 도화지가 채우고 있었다. 오빠에게는 새까만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만 있을 뿐이었다. 그 욕구가 자폐증의 원인일 것 같기도 했다. 실은 아주 멀쩡한데 어둠이 표현을 가로막고 있는 거다. 오빠가 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암흑의 상태를 추구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얼마 전,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호출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그렇다고 잘한 일도 떠오르지 않는 와중에 오빠가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나를 부른 이유는 오빠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지나가면 안 되는데, 불안해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그러고는 오빠와 특수학급 선생님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서 빨리 오빠라는 존재와 떨어지고 싶다는 듯이 말을 뱉어냈다. 순간 나는 뒤로 주춤했다. 마치 그 말과 접촉하기 싫은 듯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오빠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오빠는 다른 소리를 지껄이거나 히죽거리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제풀에 지쳐 징그러워, 한 마디를 던지고는 방을 나와 버렸다.

 

  내 눈은 거리에 늘어선 모든 것에 가 꽂혔다. 어릴 적부터 살아 온 마을도 아니라서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얼마 전에 이사를 왔다. 전에 살던 곳에는 근처에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가 없어서였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은 오빠를 따라 옮겨 다녔다. 그렇다보니 오빠가 이곳의 지리를 기억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리들이었다. 전학을 와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항상 혼자 다니려고 하는 나에게 굳이 말을 거는 애도 없었다. 때문에 반 친구들은 서로 웃고 떠들고 놀러 다니는 동안, 나는 집과 학교, 학원만 오갔다. 애들이 노는 번화가는 학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만 내다보던, 그림 같은 공간이었다. 어쩌면 눈에 채 익기도 전에 여기를 떠나야할 수도 있었다. 오빠가 특수학급 선생님의 치마에 머리를 들이민 후로 선생님은 오빠를 멀리했다. 한 번으로 끝났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또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엄마까지 소환되었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차가운 시선으로 오빠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숨만 짧게 내쉴 뿐이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설마 이제는 집으로 가는 길까지 모를 정도로 악화된 걸까.

  오빠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완전한 어둠 속에서, 무엇이 부족해서 어디로 숨어 버린 것일까.

 

  눈으로는 오빠를 찾는 시늉을 하며 터덜터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집 앞에는 꽤 규모가 큰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평소에도 이용하는 애들이 적어 덩치에 비해 쓸모가 별로 없었다. 텅 빈 놀이터는 생기가 돌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색깔도 빼앗긴 채 흑백으로 서 있는 놀이기구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차갑게 느껴졌다. 이사 온 후 처음 발을 디뎌보는 거라 여느 놀이터와 다름없는데도 낯설었다. 괜히 그네를 몇 번 흔들다 자리를 잡았다. 손에는 싸늘한 금속의 촉감이 남았다. 발을 몇 번 구르다가 일어섰다. 시소에 다가가 한 번 눌러 보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미끄럼틀 위에서는 놀이기구의 윤곽들이 한 눈에 보였다. 기다란 놀이기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른 놀이기구와는 달리 친숙했다. 어릴 적에 자주 드나들던 놀이기구를 지금 여기에서 보니 왠지 모르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기다란 놀이기구를 나는 주로 통, 혹은 터널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 터널의 조명은 주황색이었다. 터널만 들어가면 오빠의 얼굴은 주황빛으로 물들곤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자신의 얼굴도 주황색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그저 즐거워했다. 터널은 놀이터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공간이었다. 엷게나마 빛이 투과되어, 터널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색깔에 따라 얼굴색이 변했다. 그래서 이 터널, 저 터널로 옮겨 다니면 얼굴색이 더욱 다채롭게 물들었다. 그 둥근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반대편 구멍에 누군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오빠였다. 오빠는 바깥보다 약간 어두운 그 공간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스스럼없이 옆에 앉아 실없이 오빠를 따라 웃음을 짓곤 했다.

  구멍 속에 발을 내딛었다. 어릴 때보다 훨씬 몸집이 커진 나는 이제 더 이상 허리만 숙여서는 여기를 통과할 수 없었다. 무릎으로 거의 기다시피 들어가 플라스틱 곡선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들어와 있었다. 휴대폰 불빛은 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어둠 속을 지긋이 응시했다. 오빠가 선생님의 치마 속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 불이 꺼진 화장실 안에서 보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히히히…….”

  귀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낮게 울려왔다. 내가 움직일수록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시커먼 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싸늘했던 놀이기구가 점점 덥혀졌다. 오랜만에, 나는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짜증이 먼저 솟구칠 줄 알았는데 나를 고생시킨 것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상하게 반가움이 앞섰다. 오빠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웃음으로 내게 공유해 줬다. 우리의 나이가 같았던 여섯 살로 돌아간 것 마냥. 어디선가 어둠의 냄새가 났다. 플라스틱의 냄새와는 다른, 어둠의 냄새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플라스틱 통을 툭 치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경쾌하지만은 않은 소리가 울렸다. 높아진 습도는 냄새를 더 짙게 만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윤곽들, 그리고 이 어둠의 냄새는 언젠가 얼핏 보았던,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대충 넘겼던 오빠의 그림과 닮아 있었다.

  통의 끄트머리에 빗물이 튀었다. 놀이터 곳곳의 물웅덩이에 찰랑거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양수가 출렁이는 듯했다. 나는 오빠처럼 등을 기대고 발은 벽에 붙인 채, 눈을 감았다.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어릴 적에도 이곳에 한참을 있다 나오면 새 출발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우리를 둘러싼 통의 곡선은 아늑했다. 태아였을 때 느꼈던 편안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포옹을 한다는 사람들처럼, 오빠는 그래서 어둠을 찾아왔던 것은 아닐까. 오빠는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캔버스를 침대 앞에 가져다 놓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붓을 집어 들었다.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뜨나 마나 상관없었다. 온전히 내 손의 감각에만 의존해 붓을 놀렸다. 붓 한 올 한 올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캔버스와 마찰하는 붓의 질감과 물감이 마르는 것까지 손을 타고 전해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빠의 방에서 본, 그림 한 점을 떠올렸다. 아늑함을 찾아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정면을 응시하는 눈은 어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집일 수도 있고,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일지도 모르겠다. 밤의 색깔은 꼭 검은색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랏빛도 섞여 있고, 푸른빛을 띠기도 했다. 채색이 옅게 된 부분은 은하수처럼 보였다. 밤하늘이 거리를 물들였다. 손은 저절로 그리기를 멈췄다. 붓을 내려놓자마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오늘 하루 내내 쌓인 피곤이 엄습해 왔다. 나는 곧,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빛이 눈꺼풀을 덮쳤다. 오빠가 스위치 옆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좀 꺼줘.”

  오빠가 얼굴을 찡그리려고 했다. 욕한 게 아니라, 난 그저 불 좀 꺼달라고 한 것뿐인데. 나는 웃어 보였다. 그제야 오빠도 다시 웃음을 찾았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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