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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창작상 : 수필 최우수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수상자 : 장보연)

  ‘가을은 힘든 계절이잖니. 우리 힘든 계절을 잘 이겨내 보자. 그러다보면 눈 내리는 겨울이 올 거야.’ 올해 9월, 복학 후 첫 수업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1년 6개월 만의 복학이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의 말씀이 더 깊게 남았다. 가을이 힘든 계절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겨울을 기다린다는 것에서 의견이 같았다.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내게 있어서 힘든 계절은 봄이다. 나는 봄의 그 새살스러움이 싫다. 공릉동 주민들이 학교로 유모차를 끌고 나와 산책을 하며 감상하는 벚꽃의 가벼움도 싫다. 산들 바람에도 금세 져버리는 그 꽃잎은 봄의 속성과 꼭 닮아있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의 풍경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을 연상시킨다. 성인이 되었다는, 대학에 왔다는 각각의 설렘을 안고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그 모습도 소란스러운 봄의 꽃들과 닮았다. 아마도 내가 봄을 싫어하게 된 것도 그 즈음, 내가 신입생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스무 살, 대학 입학 후부터 시작된 방황과 무기력은 으레 지나가는 2차 성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과 생활, 중앙 동아리, 혹은 대외 활동. 내가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어디에 있든 스스로가 이방인 같았다. 강의가 끝나면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너무나 괴로웠다. 집에 가는 길이지만 그곳은 내 집이 아니고, 어디로든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 곳이나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은 벗어날 길 없이, 어느덧 나의 천성인 듯 붙어버려 나는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사십 짜리 방에 누워 나의 스물, 스물 하나, 스물 둘을 흘려보냈다. 그런 생활 끝에 실연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 공식적으로는 두 번의 학사경고라는 기록이 성적에 남았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4학년을 앞둔 겨울이었다. 그 즈음 집에서 안 좋은 소식이 왔다. 원래 몸이 성한 곳 없는 엄마가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엄마의 수술과 병간호를 핑계 삼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퇴원하고 나서도 나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가 본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삶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고생해서 버는 돈으로 월세 내고 등록금 내면서,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스스로 그런 자책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안간힘을 쓰고 버텼나보다.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악몽 때문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간의 삶과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너무나 피곤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고 최승자는 말했다. 이 구절처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한 휴학이었다. 처음에는 한 학기로 생각했던 잠깐의 휴식은 걷잡을 수 없이 길어졌다. 익숙한 무력함이 다시 나를 뒤덮었다. 그렇게 세 학기를 연달아 쉬었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기에 복학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 서울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역대 급의 추위가 예상된다는 기사에 걱정이 되면서 조금 설레기까지 한다. 봄의 설렘과 생명력과는 달리 겨울의 황폐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일찍 찾아오는 어둠도 좋다. 사람들은 온갖 불빛들로 억지로 도시의 밤을 미루어놓지만, 그럼에도 캄캄한 하늘을 겨울은 선사한다. 사람들을 서둘러 귀가 시키는 것 같다. 내가 까만 밤을 일찍 풀어 놓을 것이니 너는 그만 들어가 쉬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물론 밤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특히 서울의 밤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좁은 방에 누워 술 취한 행인들과 밤늦게 귀가하는 다른 세입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깨어 있던 날들이 있었다. 반면 본가가 있는 동네는 오래 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밤 9시만 되도 지나다니는 행인을 보기 힘든 곳이다. 편의점도 최근에서야 생겼고, 그나마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는 것은 늘 평상에서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이 있는 낡은 슈퍼뿐이다. 그렇기에 서울의 방을 정리하고 다시 찾은 내 방, 오랜만에 맞이하는 진짜 내 방에서의 밤은 정말로 고요했다. 어떤 밤은 그 고요함이 너무나 편안해서, 이대로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양수 소리를 듣는 태아처럼 편안하면서도 슬픈 기분이었다.

  어느 새벽 내가 맞이했던 그 밤처럼, 살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깃들어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겨울에도 짙게 묻어 있다. 겨울의 낮은 유독 선명하다. 그리고 어쩐지 적나라하다. 일렁이는 볕으로 온통 들뜬 분위기를,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봄의 낮과는 다르다. 나는 겨울의 그 무심함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며칠에 한 번씩 집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황량한 나무들을 버스 차창으로 멍하니 바라보며 병원과 집을 오가던 날들이었다.

  수술 후 충분한 회복 기간이 필요했던 엄마가 무리해서 일찍 퇴원한 것은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병이 다녀간 후로 큰 키에 40키로 초반까지 살이 빠지신 할아버지에게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급격한 노화보다도 그 누구보다 뚜렷하셨던 정신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교편을 잡으셨던 할아버지, 나라 돌아가는 일에 밝으셨던 할아버지, 내 손을 잡고 너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라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꿈꾸는 것들을 진짜처럼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내 통장에 몇 억이 있는데, 그걸 누구누구를 주마. 장서방은 지금 경찰서장이지? 등등. 사기를 당하여 재산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할아버지의 상상 속 통장에는 자식들과 손주 자식들에게 나누어줄 돈이 쌓여있었고, 몇 년이나 진급에 실패한 우리 아빠, 즉 할아버지의 사위는 어느새 경찰서장이 되어있었다. 몸이 아픈 엄마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점점 더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드셨고 나중에는 하루 종일 홀로 누워계시는 방에서 계속 혼잣말을 하셨다. 나는 내 방에 하루 종일 누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방에 누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밤은 길어지고, 할아버지도 점점 더 허물어지셨다. 할아버지는 긴 생애를 보낸 노인이고, 그에 비해 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내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봄이 되어 기력을 회복하신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집을 나가시기 시작했다. 기력을 회복했다고는 하나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으로는 몇 분 이상을 걷지도 못하고 툭하면 잘 넘어지셨다. 무엇보다도 정신이 온전치 못하신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장 한가한 내가 집에 있으면서 할아버지를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다. 어떤 날은 멀리 못 가셔서 금방 찾았고, 어떤 날은 시장까지 돌고 오니 동네에서 가장 크고 잘 지어놓은 집 앞에 서계셨다. 또 어떤 날은 택시를 타고 홀로 누군가를 찾는다며 가버리신 날도 있었다. 결국 집과는 1시간 정도 떨어진 타 지역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고, 급하게 모시러 가는 걸로 그날의 소동이 마무리 되었다.

  홀로 나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나 자신을, 세상을, 내 환경을 원망했고 외면했던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건강하셨던 옛날처럼 아주 고집스럽게 자꾸 무언가를 찾으러 나가셨다. 세상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자꾸만 하셨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을 대문을 나서곤 하셨다. 그러다가, 아무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일까. 현관에서 대문까지도 못가시고 힘이 빠져 넘어지시는 일이 몇 차례 있었고, 결국 할아버지는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대학 병원과 요양 병원을 오가는 힘든 날들을 보내시던 중 결국 그 해 가을에 영면하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며칠은 지켜보기에 가장 힘든 모습이었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수많은 합병증들. 가장 심각한 것은 다리 한 쪽이 괴사가 된 것이었고 수술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태까지 악화되었다. 그래서인지 응급실에서 돌아가신 직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상하게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현실에서 붕 뜬 느낌이었다. 고통에서 떠난 할아버지의 모습은 근래에 봤던 것 중 가장 평온해 보였다.

  장례식 내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실감이 날뿐이었다.

  입관식에서 정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봤다. 지도사분이 마지막으로 고인께 한마디를 하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수의를 입고 누워 계셨고, 내 뒤로는 엄마를 비롯한 다른 가족과 친척들이 울거나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내가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와 상복을 입고서 커다란 주차장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러다 문득 텅 빈 대형 버스 앞에 서서 조그맣게 죄송해요, 라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할아버지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였다. 다시 빈소로 돌아오니 5살짜리 조카가 나를 따라 다녔다. 아이를 빈소 밖으로 데리고 나와 벤치에 앉았다. 다른 빈소에서 나온 4,5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자그마한 몸으로 상복을 입고 우리 쪽으로 왔다. 조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거침없이 말을 걸었고 남자아이인 내 조카는 낯을 가렸다. 그러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금방 친해졌다. 자기들만 아는 말로 이야기를 나눴다. 웃고, 재잘거리고, 뛰어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 황량한 곳에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또 봄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봄 같다, 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벤치 몇 개와 담배꽁초가 그득한 쓰레기통뿐인 장례식장 입구와 자그마한 상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생경했다.

  찰나이지만 봄 햇살, 금방 져버릴 벚꽃이 존재하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가장 황량한 풍경에도 봄은 찾아오는구나. 금방 자취를 감출 볕이라도 온기는 남는구나. 길을 걷다가 문득 할아버지의 혼잣말이 들려오는 방문을 바라본 일이 생각나는 것처럼. 봄날 나들이 가는 노인처럼 모자에 구두까지 갖춰 신고 골목을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며 뒤를 쫓았던 그 날처럼.

  나는 여전히 겨울을 가장 사랑하지만, 조금씩 봄을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견이 사라질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더 큰 기쁨으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상 연락을 받고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봤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서툰 부분들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나’를 어디까지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는데, 막상 글을 쓰고 나니 글 속의 ‘나’는 현실의 저와는 또 다른 사람 같기도 합니다. 시작은 ‘나’에 대한 글이었는데, 쓰고 나니 할아버지에 대한 저만의 애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가 편히 쉬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겨울의 초입에서 좋은 추억을 선물 받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엄혹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와 취업난에 청년들은 허덕이고 있다. 1987년 이후 지켜온 직선제 민주주의 체제는 새로운 고비를 맞았다. 전세계적으로도 영국이 EU 탈퇴를 선언하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자국민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의 영주 스타크가 외치듯이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우리 공동체는 이 겨울을 어떻게 무사히 나고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인가?

  올해 창작상 수필 부문에 출품된 열세 편의 작품들은 대학생 글쓰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담이 눈에 많이 띤다. 가족, 친구,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그것을 해소함으로써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교육에 종사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우면서도 뿌듯해지는 경험이었다. 다만 이러한 성장의 경험담이 사(私)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公)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아닌가.

  올해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필자는 인생의 화창한 봄날,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방황에 빠졌다.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하리라고 생각한다. 젊은이의 절망이라는 보편적인 역설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가 이후 한 개인의 인생을, 나아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면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에게 그 계기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겨울의 황폐함” 속에서도 “봄의 설렘과 생명력”을 고루 누릴 수 있는 희망을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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