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서울과기대신문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도 1년 반이 지났고, 그동안 우리대학에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제4 기숙사 건립을 놓고 인근 임대업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우리대학이 ‘평생교육단과대학 지원사업’에 뛰어들며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한편, 학교 바깥에서는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저마다의 분노를 담은 촛불을 쥐고 거리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기자는 기자 본인이 먼 옛날부터 가져왔던 한 가지의 의문인 “달걀은 바위를 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불가능한 싸움, 승산이 없는 도전을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비유한다. 전혀 단단하지 않은 달걀로 바위를 치면 바위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고, 달걀은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이다. 결국,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은 달걀이 바위를 ‘깰 수 없기 때문에’ 등장한 말이다.
하지만 기자는 ‘달걀이 바위를 깰 수 없다’ 이전에 ‘달걀은 바위를 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이미 바위가 달걀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달걀로 바위를 치는 순간 달걀이 깨지고 말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라면 달걀로 바위를 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기자는 사람들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을 봤다. 심지어는 달걀에 맞은 바위가 한 발짝 물러서거나, 금이 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마 하나의 달걀이 아닌 수십, 수백을 넘어서 수백만의 달걀이 일제히 바위를 향해 돌진할 ‘결심’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달걀의 ‘결심’은 절대 쉽지 않다. 우리는 어느 정도 ‘승산 없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달걀의 결심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촛불의 힘’이 증명하듯 말이다.
이제 학교로 눈을 돌려보자. 기자는 이번 학기에 ‘패션과 문화’라는 새로운 교양과목을 수강하게 됐다. 이 과목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교양과목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이번 학기부터 신설된 과목이다. 이외에도 천체 관련 교양과목이 생기는 등 학교는 작은 변화를 맞았다. 그 외에도 평단 사업 사태 이후 학교에게 학생들과의 소통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거나, 잘못을 저지른 교수 및 학생에 대한 고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역시 달걀이 바위를 치고 있다는 증거다.
달걀은 한없이 작고 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바위는 무언가가 자신을 치고 있다는 것 자체로 경각심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설령 달걀이 부딪혀 깨지더라도 바위는 달걀에 맞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기자는 달걀이 바위를 칠 수 있다고, 심지어는 깰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