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지독한 하루를 견디며
이 책의 저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으레 의사라 하면 드라마에서 쉬이 봤던 것처럼 흰 가운을 입고 병원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의료진을 진두지휘하는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의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모습이다.
『지독한 하루』는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며 겪었던 감정들을 적어낸 의사 남궁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 몸소 겪었던 고통과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이 몇 번이고 들이닥치는 응급실에서의 삶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었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익숙지 않았던 나에게 응급실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료진이 고군분투하는 공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응급실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 나는 저자와 같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람이기에 실수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그는 본인의 실수를 고백하고 반성한다. 그의 실수는 타인의 실수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그건 아마 그의 일이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 실수가 또 하나의 사람을 잃게 할 수 있다. 그가 한 번 더 신중히 고뇌하는 이유가 바로 이 중압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숭고한 것이라고 배웠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본디 존재 자체로 숭고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숭고한 생명이 어느 정도로 연약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우리에게 닥친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투박한 기계들에 생명의 의지한 채로 숨을 쉬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몸짓에서 다시 한번 삶의 숭고함에 대해 느낀다. 그들이 온 힘을 다해 지킬 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안타깝고도 화가 났던 것은 병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병이라는 것은 참으로 공평한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2개월 된 아기가 겪은 아동학대와 ‘활뇌증’이라는 이름의 병을 앓는 아이의 이야기를 보며, 삶이란 어떻게 이리도 불공평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 작은 아이들이 겪기에는 끔찍이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가. 또 왜 그 아이들이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응급실은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이야기하고, 걷고, 밥을 먹는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해지는 곳이다. 이 책은 익숙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죽음이 익숙해지는 병원 응급실에서 죽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기록한 사투의 흔적이다. 이를 보며, 그가 죽음의 과정을 목격하며, 그 모든 순간 진실로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했을 모습이 그려졌다. 동시에 삶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사고는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며, 이 사고의 결과들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현장을 바라보고, 아직은 안온한 우리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는 생의 온 힘을 다해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 의료진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원을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싸움은 결국 혼자만의 싸움인 탓에 우리는 그 앞에서 다시 한번 무력함을 느끼며, 묵묵히 그들을 응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살아있는 동안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우리 모두는 매일 치열하게 삶과 싸우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지독한 하루를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 순간 삶에 대해 고뇌하고, 삶의 각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 속에서 말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멀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자기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떠올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