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컬레이터는 동력에 의해 회전하는 계단을 구동해 자동으로 위·아래층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계단 모양의 장치를 말한다. 우리는 지하철이나 백화점, 마트 등 주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층 사이를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 보면 멈춰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운행을 아예 중단하기도 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체적으로 운행을 멈추기도 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상황에서는 사람이 오면 운행을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별다른 안내 문구가 없으면 이용하는 사람은 운행을 중단했는지 절전 상태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간혹 운행 중단 상태의 에스컬레이터를 절전 상태로 착각하고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멈춘 에스컬레이터는 일반 계단과 다를 게 없으므로 걸어서 올라가게 된다. 근데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가면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는 등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경험해봤을 현상으로, 이런 현상이 싫어서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중단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반 계단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우리 뇌의 착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현상’이라고 한다.
평소 사람들의 인식 속 에스컬레이터는 자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있어도 뇌는 무의식적으로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인다고 생각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도록 한다. 즉 뇌와 신체가 따로 노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멈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평소보다 발걸음을 빨리 내디디면서 균형 감각을 잃고, 어지럼증을 동반한 일시적인 균형 감각 상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돌프 브론스타인 임페리얼 대학 교수와 리차드 레이놀즈 버밍햄 대학 교수가 진행한 실험이 있다. 해당 실험에서는 14명의 피실험자에게 고정된 평행판 위를 걷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1.2m/s의 속도로 움직이는 평행판 위를 20회 걷도록 하고, 다시 멈춘 평행판 위를 걸어가도록 했다. 그러자 다리의 근전도 활동량이 증가하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에스컬레이터가 멈춘 상태임에도 우리 몸이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일 때처럼 반응했다는 것으로,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현상을 증명한 것이다. 배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육지에 발을 내딛는 사람도 고장난 에스컬레이터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와 관련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안전을 위해 핸드레일을 잡아줘야 하는데, 언뜻 생각하기에 핸드레일과 발판은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발판과 핸드레일의 속도에 차이가 있으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속도의 차이를 느끼면 손을 놓겠지만, 감각이 둔한 노약자나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은 속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둘의 속도는 거의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핸드레일에 손을 올리고 있다 보면 내릴 때쯤 손이 처음보다 앞으로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핸드레일의 속도가 발판보다 느리면 뒤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뒤로 넘어지는 사고는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보다 위험하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은 핸드레일의 속도를 아주 살짝 빠르게 조정하는 편이다.
관련 법령을 살펴보면 핸드레일 시스템의 경우 동일 방향으로 0~2%의 오차가 있는 속도로 움직이는 핸드레일을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즉, 둘의 속도 차이는 아주 미묘하게 있을 수 있고, 뒤로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핸드레일이 살짝 빠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