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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시체처럼 가만히(물음표) ‘시체관극’ 논쟁 점화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4-01-08 15  |  684호 ㅣ 조회수 : 317

지난 9일(토), ‘뮤지컬 ‘리진’을 볼 필요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 기사가 올라왔다. 기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이 칼럼은 한 관람객과 공연 제작사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뮤지컬 <리진: 빛의 여인>의 리뷰 기사 작성에 필요한 노트 필기를 하려고 했더니 옆자리 관람객이 소리가 시끄럽다며 항의했고, 결국 공연 제작사 직원에 의해 뒷자리로 좌석 이동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가 SNS상에서 화두에 오르며 이전부터 공연계에서 문제 삼아져 왔던 일명 ‘시체관극’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시체관극이란 ‘시체처럼 미동 없이 숨죽여 극을 관람하는 행위’를 뜻하며, 지나치게 엄숙한 관람을 강요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의미가 담겼다. 특히 마니아 관람객들이 많은 뮤지컬과 연극 공연에서 이러한 행태가 더욱 부각되며, 시체관극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일부 중소극장 뮤지컬 및 연극에선 웃음과 환호, 박수 소리는 자제하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다.



이와 함께 시체관극 강요 경험을 폭로하는 글이 인터넷상에 자주 올라오며, 점차 공연계 엄숙주의가 과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너무 추워 패딩을 입었더니 패딩 소리가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사례부터, 고개를 숙여 흘러내린 안경 위치를 바로잡았더니 지적을 받았다는 사례 등 시체관극 문화에 불편을 토로하는 글들이 자주 확인된다.





에티켓과 시체관극

사이, 첨예한 문제



이를 두고 SNS상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연극·뮤지컬 공연 마니아들이 다수 분포해 있는 X(구 트위터)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오갔다. 마니아 관람객이 많은 중소극장 공연의 경우, 시체관람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고 이러한 문화가 수그러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다수 볼 수 있었다. 특히 자세를 바꾸거나 물을 마시는 것, 외투 소리조차 금지되는 분위기를 문제 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에 시체관극 강요는 일부 극성팬들의 만행이며 대부분은 이를 지양한다는 입장도 많았다. 또한 시체관극을 비판하기에 앞서 극장에 만연해 있는 ‘관크’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공연이나 극장에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시체관극과는 대비되는 용어이다. 이 가운데, ‘관객이 공연을 얼마나 조용히 관람해야 하는가’를 두고도 격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에티켓과 시체관극 사이의 기준선이 애매모호하기에, 이러한 시체관극 논란은 논쟁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엄숙한 관람 강요가 점차 심해진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하는 반면, 어느 정도의 관람 매너 강요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대학 재학생 김 씨(22)는 앞선 기사 속 관람객의 태도에 관해서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는 “티켓값도 점점 오르는 상황에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을 집중해서 관람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한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한 행위였는데 (그러한 제재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일부 연극처럼 관객이랑 상호작용하는 게 중요한 공연이 아니니까 조용히 봐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런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더 민폐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대학로 연극을 다수 관람한 경험이 있는 김 씨(20)는 기사에 언급된 것만큼 지나친 시체관극 강요는 직접 체감한 적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넷에 나오는 시체관람 사례들은 지나치다고 생각되지만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 대신 성숙하지 못한 관람 태도를 목격한 적은 있다. 특히 어르신들이 공연 도중 휴대폰을 만지거나 일어나는 걸 자주 봤다. ‘시체관극’이라 불릴 만큼 엄숙한 관극 강요는 지양돼야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성숙한 관람 문화의 필요성을 더 느낀다”고 말했다. 오히려 시체관극으로 인한 불편보다 일부 몰상식한 관람 태도 때문에 공연 도중 불편을 겪었던 적이 있으며, 이를 위한 엄숙한 관극 분위기가 더욱 조성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평소 공연을 즐기는 것이 취미인 서 씨(20)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표했다. 그는 “시체관극이라는 말이 어감이 강한 감이 있지만, 심한 정도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 필요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뮤지컬은 티켓값이 20만원 정도까지 오르기도 했고, 다른 공연에 비해 비싼 편이다. 그런데 아직도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영화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휴대폰 전원을 꺼두지 않는 것은 물론, 공연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옆사람과 극에 대해 떠들거나, 아예 다른 사담을 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또한 “뮤지컬이나 연극은 영화처럼 언제든 같은 것을 다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일회성이라는 특성이 있어 배우 컨디션에 따라 부르는 넘버의 느낌이 매번 다르고 그날만 볼 수 있는 애드리브나 회차마다 세세하게 달라지는 부분을 찾는 재미가 있는데, 그러한 관람객들로 인해 관람을 방해받은 적이 많다. 공연 시간이 길기에 아예 움직이지 않고 관람할 수는 없겠지만, 비싼 돈을 주고 한 번 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공연인 만큼 관객들의 배려가 필요하다”며 뮤지컬과 연극의 특성상 더 엄숙한 관람 문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소통과 관객 배려

함께해야



서 씨는 바람직한 공연문화란 주변 관객들을 배려하는 선에서 무대 위 배우들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는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 안에서 하는 공연은 무엇보다 관객들과 무대 위 사람들 간의 시너지를 얼마나 내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실제로 어느 연극에서는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의 물건을 빌려와 공연에 참여시키기도 하는 등 관객과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점이 다른 예술 공연과는 달리 연극과 뮤지컬만이 가지는 즐거운 포인트라 생각한다”며, “주변 관객들을 배려한다는 것은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시체처럼’ 관극하라는 것이 아니다. 배우들이 웃긴 애드리브를 치면 웃어주고, 신나는 넘버를 부를 때는 박수를 치며 모두 다 같이 극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바람직한 공연문화란 누구하나 얼굴 찌푸리는 사람 없이 공연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시체관극에 관한 여러 입장을 취재한 결과, 이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었다. ‘시체관극’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에 갇혀 비판적 시각으로 매도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더욱 성숙한 관람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에 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장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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