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는 독립 이후 아웅 산의 미얀마 반파시스트 항일정치 단체(AFPFL)이 당선됐으나 아웅 산과 내각 장관 7명이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1962년 버마 군사 반란이 일어나며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았다. 이후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도 군부의 독재가 이어져 오다 2015년 자유 선거에서 아웅 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NLD)가 승리하여 정권이 교체됐다. 이후 국민민주연맹이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하자, 군부는 이에 불복하며 2021년 2월 1일(월) 쿠데타를 일으킨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미얀마 학우를 만나 미얀마는 어떤 나라인지, 쿠데타 이후의 미얀마는 어떤 상황인지 들어봤다.
Q. 미얀마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미얀마는 동남아 중 서쪽에 위치해있습니다. 특징이라고 하면 ▲중국 ▲인도 ▲태국이 에워싸고 있어 세 나라의 문화가 융합된 느낌이 강합니다. 이 나라들과 ▲취향 ▲음식 ▲환경 등이 비슷해요.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크게 보면 8개의 민족이 있지만, 더 세세히 나누면 150개가 넘는 민족이 있어요. 또 민족마다 언어가 다 다릅니다. 표준어로는 미얀마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각 민족의 글자와 말이 모두 달라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민족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민족 간 생김새, 피부색 등도 달라 외모를 통한 민족의 구분도 가능합니다. 미얀마는 대부분이 불교를 믿습니다. 서북쪽에서는 15세기 말에 이루어진 선교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믿기도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부근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인데요. 일반적인 미얀마 민족과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Q. 중국의 영향이 미얀마에 얼마나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최근 미얀마의 현 집권 세력가 강하게 밀고 나가는 이유가 중국 정부가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미얀마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미얀마 북쪽은 중국의 원난성과 닿아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다민족이고 지형이 복잡한 쪽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국경이 닿아있는 중국 정부가 현 집권 세력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2015년 민주주의가 시작되기 전에도 50년 정도 중국과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보석 ▲광물 ▲전기를 군부가 중국에 모두 팔아 국민은 살기 힘들었습니다. 국민이 아무리 열심히 노동하고, 많이 채굴해도 임금이 따로 정해져 있어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군부는 이를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미얀마의 인구는 5,500만 명으로 한국과 비슷할 정도로 많고, 국토는 한국의 6배 정도이며, 자원 역시 풍부합니다. 수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얻고, 북쪽에는 댐이, 남쪽에는 바다가 있어 진주를 얻죠. 하지만 광산을 국가가 소유하고 수출도 매우 제한돼 있습니다. 중국에만 일대일로 수출하는 정도죠.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미얀마인에게 좋지는 않습니다.
Q. 최근 튀르키예가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바꿨습니다. 미얀마도 버마에서 국호가 바뀌었는데 왜 바뀌게 됐나요?
A. 버마라는 이름은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미얀마에서의 88년도 민주화 운동 이후 새로운 군부가 정권을 잡게 됐고, 이후 국호가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얀마의 정식 국명은 ‘미얀마연방공화국’입니다. 이는 미얀마 군사 정권이 2010년 총선거를 앞두고 국명을 ‘미얀마연방’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꾼 것으로 현재의 미얀마 국기도 당시에 함께 바뀐 것입니다. 미얀마의 수도 역시 최근에 바뀌었는데, 군부에서 세력 강화를 위해 2006년 양곤에서 네피도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Q. 미얀마에서 군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A. 군인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군인 자체가 특권층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군인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군부에도 각각의 세력층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훈련받기도 하며 계급별로 코스가 따로 있습니다. 계급이 낮은 군인은 공부를 따로 하지 않으며 계급이 높은 군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계급이 높은 군인으로 가는 코스가 따로 있으며 지역에 편중돼 있지는 않습니다. 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집이나 월급을 보장해주지만, 남자 대부분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Q.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군은 무엇인가요?
A. 대부분 어릴 때부터 꿈과 취미가 없습니다. 여자의 경우 대부분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공대나 의대가 인기가 많아요. 대부분 부모님의 바람대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공무원이 됩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에는 싱가포르로 많이 가요. 미얀마는 군부가 수출한 돈이 개인 소유가 됩니다. 그래서 나라의 가난은 해결되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군부는 자기 가족을 위한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위입니다. 그래서 무기 없는 시위를 준비하기도 하고 18세~30세의 경우 정글 같은 곳에 들어가 외부에서 돈을 지원받고, 무기를 사며 준비하기도 합니다. 남녀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Q. 2021년에 미얀마 쿠데타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시나요?
A. 잊을 수가 없죠.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이 시대에 정말 쿠데타가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그날이 2월 1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SNS에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가 안됐습니다. 군부에서 쿠데타가 터지자마자 통신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3일 동안 통신, 전화가 다 끊기고 뉴스에서는 수치 여사님과 대통령이 다 잡혀갔다고 해서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쿠데타가 터질 거라는 소문이 나니까 그 전에 88년에 쿠데타를 겪으셔서 그럱, 쿠데타가 일어날 걸 대강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근데 저희는 아예 모르잖아요. 어머니께서는 쿠데타가 진짜 터질 거라는 걸 아셨는지, 통신이 끊기기 전에 저한테 음성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이따 통신이 끊길 것 같아서 메시지 남긴다며 안심하라고 하셨어요. 음성메시지를 처음 듣자마자 울컥했습니다. 아무리 전화해도 안 되고 주변 사람도 아무도 연락이 안 돼서 많이 불안했습니다. SNS에도 좋은 소식은 아예 없고 안 좋은 소식만 떠서 전화가 안 되던 3일간은 진짜 지옥이었어요. 3일 뒤부터는 해외전화가 가능해서 조금 나았지만, 인터넷은 여전히 안됐습니다.
Q. 쿠데타가 터진 직후에 바로 무력이 동원된 것은 아니죠?
A. 처음부터 무력이 동원되지는 않았습니다. 일주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는 정도였어요. 2주 차부터 무력 집압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총도 쏘고요. 여자 한 분이 처음으로 머리에 총을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근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루에 200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니까요. 길거리에 핏자국이 있는 건 흔한 풍경이 됐습니다. 밤에 어머니와 통화하면 밖에서 총소리도 들립니다. 이 시대에 집 앞에서 총소리가 들린다는 게 충격이에요. 어린 나이의 여동생이 정말 불안해했습니다. 집이 도로 주변에 있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는 걸 목격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군인 30명이 와서 사람을 찾는다고 집마다 들어가 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1층에 사는 사람들은 집안에 총알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희 아버지도 총알을 주우셨습니다. 제 친구도 집에 총알이 들어오고 유리도 깨졌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릴 때 매일 놀러 가던 집인데 상상이 안 됐습니다.
Q.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처음 일어난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떤가요?
A. 총은 많이 없어졌지만 군부에 잡혀가느 일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수도 같은 큰 도시에서는 무력 진압을 잘 안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이죠. 지역정부(LAA)에는 무기가 있어 군부가 크게 무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힘없는 지역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잡혀가기도 하고 마을 전체에 방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불이 나면 나이 드신 분들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Q. 쿠데타로 인한 교육, 경제적 타격이 큰데 이런 것들이 복구가 되고 있나요?
A. 여전히 진행 중이라 아직 복구되고 있지 않습니다. 제 친구들은 군부가 관리하는 교육은 못 받겠다고 안 가요. 저는 미얀마에서 2학년을 다니다가 한국에 왔고 현재 4학년입니다. 미얀마에서는 2년이면 졸업을 하기 때문에 제 친구의 경우 진작 졸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아직도 졸업을 못 한 상태입니다. 또한 입시생들도 입시 시험을 치르지 못해 대학에 못 들어가고 교육과정도 무너지는 등의 타격이 큽니다. 경제적으로는 물가가 올랐습니다. 1달러가 1400짯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2500짯입니다. 폐쇄되는 사업이 많아지고 군부 밑에서 일을 못 한다며 그만두는 ▲의사 ▲공무원 ▲교사가 많아졌습니다. 월급을 못 받아도 그냥 일을 안 나가고요. 그래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먹고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 결과로 현재 범죄가 잦아졌어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돈을 뺏으려고 때리고 칼로 찌르는 일도 빈번합니다. 빈부격차가 큰데 가난한 이들이 먹고살 방도가 없어 범죄가 증가한 거죠. 살인 사건도 정말 많이 발생합니다.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다가 살해당하거나 차 안에 있다가 붙잡혀 살해당해 차도 뺏기고. 집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범죄율이 굉장히 높아져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체포하려고도 하지 않아 더 이상 법이 소용이 없습니다. 새해가 될 때마다 감옥에 있는 범죄자를 석방해줍니다. 4월에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새해가 됐을 때는 흉악 범죄자를 많이 석방했습니다. 운동자들을 넣어야 하는데 감옥 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Q. 한국의 대학을 다니며 한국 사회와 미얀마를 비교했을 때 인권적인 측면에서 충격받았던 것이 있나요?
A. 한국의 학비가 비싼편이지만, 대신 장학금 제도가 잘 돼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제가 편입으로 들어왔는데, 한국은 교수님이 가르치고 거기에서 시험이 나오지만, 미얀마에서는 50% 정도만 가르칩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과외를 받아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다 가르쳐주지 않아 사교육에 많이 돈이 들어갑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저에게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한국은 기회가 많은데 미얀마는 기회가 너무 적습니다. 대부분의 미얀마 국민들이 꿈이 없는 이유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의지도 안 생기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도 없어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학교에 가도 큰 회사에 가서 돈을 벌 기회도 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학생들이 시험 기간만 되면 밤을 새우며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저는 미얀마의 교육과정이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꾸고 싶습니다.
Q.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리가 미얀마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A. 요즘은 미얀마가 뉴스에 거의 안 나와서 사람들이 괜찮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보기에 아직도 안전하지 않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불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 역시 알려주고 싶어요. 아무렇지 않다는 뉴스는 군부 쪽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어 허위 뉴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또 아까 말했듯 범죄도 많이 증가해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미얀마의 상황에 많은 관심을 두고 이런 상황을 많이 알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정글 같은 곳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무기, 금전 등 사람들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미얀마 단체에서 업데이트하는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를 통해 금전이 들어오기도 해서 이를 많이 보는 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본 인터뷰는 답변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진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