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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교라서
null ㅣ 기사 승인 2024-04-29 15  |  688호 ㅣ 조회수 : 86

 십여 년 전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가 강남 일대에서 갑작스레 팔리기 시작했다. 건축가를 꿈꾸던 미국계 일본인 장인이 만들어낸 이 가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이 가구의 열풍이 분 것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유일하게 거실에 둔 가구가 바로 나카시마의 의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주부들이 주고객이었으며 고가임에도 자녀가 잡스처럼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입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그러면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우리대학에도 비슷한 것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리 없다. 조달청 품목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기는 국립대다. 우리대학에서 만난 가구, 조명은 대체로 들어본 적도 없는 브랜드인데다 유명 제품의 모방품, 그야말로 ‘근본 없는’ 것들이다. 국립대니까. 건물도 다르지 않다. 실험실, 연구실이 없다고들 하니 해마다 건물이 들어섰다. 얼마얼마 예산을 수주했다는 현수막이 늘 교문을 감쌌으니 그 얼마로 좋은 건물이 생기려나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학내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왜 방관했냐 싶지만 이미 결정되었고 예산과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하니 개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역시나 국립대니까.



 대학마다 유명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알려져 있다. 우리대학에 그런 곳이 있나? 국립대에도 김수근, 램 콜하스 등의 사례가 있다. 해외 대학은 말할 것도 없다. 왜 우리대학의 공간 프로젝트에는 명망있는 창작자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국립대니까 안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개교 114년을 자랑하면서 그 절차를 바꾸진 못할망정 우회해서라도 왜 좋은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가. 학생과 교직원에게 왜 더 좋은 경험, 창의적 영감을 줄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이렇게 밖에 대접하지 못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창의, 혁신을 기대하는가.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도 난개발을 막고자 공공건축과 도시 경관을 위한 위원회를 운영한다. 사유지 문제와 불특정인의 민원에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용자가 분명한 지성인 집단의 국유지에서 왜 못하는가. 의지와 그에 따른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내 공간, 우리 학과와 부서 공간만 챙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 요구를 한 사람은 몇 년 뒤에 학교를 떠나지만 그 탓에 우겨넣은 시설은 어쩔 것인가. 모든 건물이 번듯할 수 없고 미적 취향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우리 대학은 BTL(임대형민자사업) 건물의 숲이 되고 있는지, 왜 실력있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가 이용자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창의적인 기획을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이미 터잡은 것들은 우리의 현실로 수용해야 할텐데 정작 건물을 허물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최근에 없어진 수연관은 명패 하나 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학생들이 자리 깔고 쉬는 붕어방 옆 잔디밭에도 건물을 짓지 못해 안달하니 얼마나 더 지어야 하나. 그렇게 연구실, 실험실을 쓴 교수들이라면 퇴임할 때 조달청 구입 불가한 훌륭한 의자, 테이블이라도 기증하면 좋겠다.(기부금도 조달 구매 절차를 따라야 하므로 꼭 현물이어야 한다.) 대학 본부 1층에 외빈 라운지로 조성한 곳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변두리 상가에나 있을법한 스테인리스 두른 유리 칸막이며 역시나 근본 없는 가구가 놓여있는데 우리대학의 어떤 매력도 담지 못했다. 그곳에서 외빈들은 ‘국립대니까’라고 이해해줄까.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이런 곳에서 교육받은 이들이 만들 세상은 끔찍할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성비와 개인의 성공에 매달리는 사람 말이다. 이제 국립대니까 할 수 없다는 말 대신 국립대라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사장이 좌지우지 못하고 민주적 절차로 공공자산을 운영하는 장점도 있지 않은가. 등록금이 싸다고 해서 경험까지 저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환경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보여준 영화 대사를 우리대학에 맞게 떠올려보자. “(국립대학이라서 이렇게 되었으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렇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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