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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료애'
박종규 ㅣ 기사 승인 2024-05-13 13  |  689호 ㅣ 조회수 : 58

 박종규(전정·21)



 세상에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관심 없는 연예인의 연애 소식이라든가 챙겨보지 않는 드라마의 종영 소식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은 횡단보도를 기다릴 때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처럼 감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인지하지는 못한다. ‘푸바오’의 환송 소식도 그런 것들에 속했다.



 내가 다시 푸바오의 환송식 관련 소식을 들었을 때는 며칠 뒤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에서였다. 푸바오가 떠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영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영상 조회수에 비해 댓글 수가 무척 많았다. 어딘가 논란이 있거나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댓글창 최상단에는 어김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리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 실록을 쓰던 사관처럼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분류해 담백하게 적는다. 그 댓글에 따르면, 중국의 판다 소유권 정책으로 인해 푸바오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환송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중계되던 환송식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커서 이걸로 비웃는 사람들이 생겼고 일종의 밈(meme)이 됐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 아래에는 조소와 인신공격, 비난이 넘쳐댔고 몇몇은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과 진심으로 싸우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인터넷 댓글 창이었다.



 생중계 영상은 ‘푸바오 오열 밈’이라는 제목이 붙어 여기저기 퍼졌고, 본격적으로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런 소식들은 비교적 진지한 담론을 형성하는 기사나 칼럼에도 등장했는데, 해당 영상을 주제로 많은 의견이 달렸다. 의견은 크게 ‘그게 울 일이냐’는 반응과 ‘충분히 가능하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나는 그래도 판다의 송환이 누군가는 슬플 수도 있다는 쪽에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에겐 그냥 동물원에 있는 한 마리의 판다지만, 누군가에겐 힘든 순간에 위로가 되어준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엔 나도 남들이 이해 못 할만한 구석이 있어서는 아닐까.



 나는 시계를 좋아한다. 이미 모든 곳에 소형 컴퓨터가 들어가서 시간 따위는 버튼만 누르면 알 수 있게 된 세상에서 비싸고 부정확한 시계의 쓸모를 설명하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아주 작은 세계에서 수백 개의 부품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입력된 동력을 시간에 맞게 서서히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기능성과 심미성의 조화’ 같은 게 있다고 해봐야 누가 알아주겠는가. 하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시계를 감고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 푸바오의 환송에 슬픔을 느끼던 사람들의 마음도 이런 것 아닐까.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샤를 보들레르의 ‘취하라’라는 시가 떠올랐다. 어릴 적 읽었던 시집 『파리의 우울』에 수록된 시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상 취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중략) 시간의 학대를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쉬지 않고 취하라! 술이건, 시이건, 선이건, 그대가 좋아하는 것에”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이 시는 내 생각을 많이 바꿔놨다. 그때부터 나는 내 삶을 다양한 취향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음악은 재즈와 얼터너티브 록, 소설은 하루키와 김영하, 영화는 예술성과 상업성 중 어딘가 치우치지 않은. 예컨대, 프랑스 독립영화나 마블 영화를 제외한 영화들을 주로 소비한다. 이런 취향들은 삶의 문제들이 나를 압박할 때 꽤 유용한 버팀목이 됐다. 어딘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시간이 끊임없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은 “끝없는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 고통은 적응이 안 되고 행복은 금방 익숙해져 권태로 바뀐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동료로서 타인을 대할 때 동료애를 가지고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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