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요, 이제 멈춰주세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막지 못한 비극’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달 14일(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형제는 점심때에 맞춰 라면 봉지를 꺼내 들었다. 코로나-19 이전이였다면 학교에서 급식을 기다렸겠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형제는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전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엄마를 두고 형제는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고, 이는 곧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됐다. 아이들은 화재 직후 119에 신고해 거친 기침과 함께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했으나 큰 화상을 입고 병실에 누웠다. 전신의 40%에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는 형 B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에 깨어나 의료진이나 가족이 이름을 부르면 눈을 깜빡이는 등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1도 화상을 입은 동생 C군도 눈은 떴지만, 반응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전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해 완전히 의식이 돌아온 상태라고 보긴 힘들며, 사고로 유독가스를 많이 흡입해 자가 호흡이 힘든 상태라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치료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렇게 작은 아이들이 비극을 맞이할 동안 구청·아동보호전문기관·경찰·법원·학교 등 관계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건 이전에도 이웃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왜소한 형제가 저녁때면 주먹밥이나 과자 등을 사러 분식점과 편의점을 들락거리거나 밤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심상치 않게 생각했다. 이에 A씨의 자녀인 B(10)군과 C(8)군이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2018년 9월, 2019년 9월, 2020년 5월 총 3차례에 걸쳐 신고했고, 학교 측도 형제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 경험이 전혀 없어 교우관계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인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의뢰했다. 신고 때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씨와의 상담을 통해 청소 등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급식을 해결해주는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보내는 방안도 권고했지만, A씨는 자활 근로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구청은 학교 긴급돌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 등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본인이 거부할 경우 강제적으로 이용하게 만들 구속력은 없어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3차례의 상담 이후에도 B군 형제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바뀌지 않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5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법원에 A씨와 B군 형제를 격리 보호하는 방식의 피해 아동보호 명령을 청구했다. 이에 미추홀경찰서는 A씨가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를 앓는 B군을 여러 차례 폭행하는 등 형제를 학대한 정황을 확인하고, A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인천가정법원은 지난 8월 분리조치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의 형제의 상담 치료와 어머니의 상담 위탁 보호 처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면서 이뤄지지 않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수 없었다.
▲인천 화재(출처:인천 추미홀 소방서)
실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구병)이 지난달 24일(목)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체 아동학대 판정 건수(가해자 검거)는 3,3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발생한 2,775건보다 19.4%가 증가했다. 또한 아동학대 112신고 건수도 작년 9,698건에서 올해 10,159건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6월~8월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비극이 있기 전까지 학교·구청·경찰·법원 등 관계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A씨의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제한적 역할에 머물러 참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취약계층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 외에도, 현재의 돌봄 시스템이 실질적이면서도 강력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수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에 뚫린 구멍
인천 ‘라면 형제’ 사건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이미 해당 아이들을 ‘돌봄 대상자’, 즉 부모가 아닌 이들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형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구로 아동복지 지원 사업의 대상이었다. 지난 9월 18일(금)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피해 형제는 지난 2018년 6월부터 복지부의 드림스타트 대상자였다고 한다. 드림스타트란 복지부의 아동복지 사업으로 전국 지자체서 0세에서 12세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등의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정이기도 하고, 형의 학교 선생님이 지원을 요청해 동생과 같이 대상자로 관리됐다”라며 해당 형제가 지자체의 돌봄 시스템 내부에 등록된 아이들이라는 것을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돌봄 공백이 있어 상담사가 아이들에게 지역아동센터를 다닐 것을 권유했지만, 형제의 어머니가 이를 거절해 사안이 심각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아동복지법의 허점을 보여준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원가정 보호’를 중시한다. 따라서 아동학대 정황이 포착돼도 부모(원가정)가 친권을 내세우며 외부 지원을 거부한다면 이를 제재할 방안이 거의 없다.
그런데 돌봄 정책의 허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월 28일(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전달된 보건복지부의 ‘e아동행복 지원시스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들 형제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역 아동복지기관에 등록된 대상자라는 이유로 복지부 학대 위기 아동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e아동행복 지원시스템’은 2018년부터 복지부가 운영을 시작한 것으로 어린이집·학교 출결 현황이나 아동의 진료 정보 등을 통해 학대에 취약한 아동을 예측해 구제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역 아동복지 전문기관에 해당 아동이 등록된 경우는 ‘e아동행복 지원시스템’ 대상자에서 제외되며, 해당 정책에 따른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복지부와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학대 의심 가구를 나눠 관리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라면서 “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와 협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엄마가 아이들을 방임한다”라는 신고가 세 차례나 들어왔었다. 인천가정법원은 아이들의 엄마에게는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상담, 두 아들에게는 12개월 동안 상담하라는 상담 위탁 처분을 내렸으나 이마저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해당 아이들이 학대를 받는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됐고 돌봄 대상자로 파악이 된 상태에서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 지자체, 아동보호 기관, 그리고 경찰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아이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돌봄 공백이 아이들의 안전에 더욱 위험을 가하고 있다. 해당 형제 사건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과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다. 대부분의 학교 수업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아이들의 모습이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또한 맞벌이 가정 등의 아이들이 홀로 방임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돌봄 공백 문제를 심화하고 있다. 실제로 9월 15일(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어린이집·유치원과 초·중·고교 휴원·휴교로 인한 부모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지난 8월 27일(목)부터 9월 7일(월)까지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맞벌이 직장인 283명 가운데 143명(50.5%)이 돌봄 공백에 따른 고충을 호소했다. 코로나-19가 만든 돌봄 공백의 여파는 아동학대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많은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각종 돌봄 정책의 허점,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돌봄 공백까지.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아이들
우리가 지켜줍시다.
더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복지부는 지난달 22일(화)부터 이번 달 21일(수)까지를 ‘사례관리 가정 집중 모니터링 기간’으로 정하고, 취약계층 사례관리(드림스타트) 아동 7만여 명을 대상으로 돌봄 공백과 방임 등 학대 발생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고 9월 18일(금) 밝혔다. 또한 아동 학대·방치 사건이 잇달아 발생함에 따라 이번 달 1일(목)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아동 학대 예방·보호 예산을 올해 347억 원에서 내년 485억 원으로 40% 증액했다고 밝혔다. 재정 당국인 기재부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법무부 등이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으며, 복지부는 ‘e 아동 행복 지원시스템’을 개편해 위기 아동 예측률을 높이기로 했다. 과거 기존 민간 영역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수행했을 때는 부모가 조사를 거부하기 쉬웠지만,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는 지자체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이를 대신 수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내년 배치 예정이었던 아동 보호 전담 요원을 올해로 앞당겨 53명을 배치하고, 내년에 281명을 순차 투입해 보호자가 없거나 학대·빈곤 등 사유로 사실상 방치된 아동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들은 학대 아동 상담실을 개선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심리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예산을 투입하는 등 돌봄 구멍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기사를 읽는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장래 확실한 제도 개선과 더 나은 돌봄 정책이 마련돼 어린 새싹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형성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