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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벌어서 편히 쉬자, 파이어족
조유빈, 류제형 ㅣ 기사 승인 2021-04-11 19  |  644호 ㅣ 조회수 : 70

바짝 벌어서 편히 쉬자, 파이어족



▲조기은퇴자금을마련하는방안으로주식이가장많이이용되고있다./출처:잡코리아X알바몬



배부른 노예에서

가난한 자유인으로



  코로나-19의 유행과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지금,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평생직장은 이제 옛날이야기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급여를 많이 받으며 부모가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졌던 때와 달리, 이제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이전에 오늘을 즐겁게 사는 ‘욜로’가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내일을 준비하는 ‘파이어족’이 유행이 됐다.



  파이어족(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란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정년을 채우기 위해 눈치 보며 일하지 않고 30~40대에 자발적으로 은퇴해 남은 인생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통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20대부터 소비를 줄이고 수입의 70~80% 정도를 저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파이어족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 조금 가난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파이어족들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채소를 스스로 재배하거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떨이 제품을 싸게 구매해 먹기도 한다. 출퇴근길에는 자전거를 빌리거나 오래된 차를 이용한다.



  소비를 줄이고 빠르게 은퇴하는 파이어 운동은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에서 파이어 운동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기 속에서 ▲일에 관한 불만족 ▲높은 실업률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고용과 정년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청년이 파이어족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은 함께 20~30대 성인남녀 1,1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는 파이어족이 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41%가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실제로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조기 은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50.7%가 주식투자를 선택했다. 소비할 때 받는 스트레스에 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78.2%가 소비를 할 때 돈을 쓰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서울시내의한대형서점에놓여있는주식관련서적들/출처:중앙일보



파이어족,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파이어족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된 만큼, 실제 사례도 눈여겨봐야 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파이어족 모두가 뜻한 바를 이룬 것은 아니다. 파이어족의 삶에 뛰어든 이들 중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실패했을까?



  대기업에 다니다가 36세에 조기 은퇴해 파이어족으로 3년째 살아가고 있는 제이슨 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이슨 씨는 대기업 재직 시절 경기도 판교에 거주하다가 은퇴 후 제주도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제이슨 씨는 제주도로 이사를 하게 된 배경으로 “제일 큰 부분이 주거비 절약으로 현재 주거비가 판교 거주 시절보다 무려 25분의 1로 줄었다”라며 “미세먼지나 한파를 피해 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은퇴 자금 마련에 관해서는 “약 100권의 책을 읽으며 재테크 공부를 했다”라며 “저축을 통해 충분한 생활비를 확보한 후 꾸준한 주식투자를 통해 목돈을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근로소득만으로 목돈을 만들기 쉽지 않은 만큼, 제이슨 씨는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저축과 재테크를 병행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충분한 자금을 마련했다고 해서 성공한 파이어족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40세에 자산 30억 원을 달성한 47세 강용수 씨가 대표적인 파이어족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수익형 부동산 투자로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마련한 강용수 씨는 왜 성공한 파이어족이 되지 못했을까?



  그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준비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자유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강용수 씨는 “은퇴 후 처음에는 자유롭고 편안한 일상에 벅찼지만 2주쯤 지나니까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어졌다”라며 “은퇴 자금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강용수 씨는 은퇴 후 5개월 만에 창업을 통해 파이어족 재도전에 나섰다. 강용수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내 자산에서 1억 원을 떼서 사업에 도전해보고 안되면 포기할 것이다”라며 “시작할 때부터 10년만 일해서 자리를 잡고 다시 은퇴하겠다고 다짐했고 현재 은퇴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공한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충분한 자금과 철저한 인생 계획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계획이 없으면 행복이 오래가지 못하고 계획을 잘 세웠어도 계획을 실행할 돈이 없으면 역시 얼마 못 가 행복을 잃게 된다. 파이어족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실패 사례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미래를 현명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파이어족과 함께

떠오르는 주식



  은퇴 자금 마련 수단으로 주식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고, 파이어족의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도 주식을 비롯한 재테크가 이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3월 22일(월)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일자리 전망 국민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30세대 75.1%가 근로소득보다 투자자산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경우 49.5%가 주식 또는 가상화폐가 미래에 유망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주식의 경우 올해 3월 23일(화) 기준 주식계좌가 4,022만 1,075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수는 5,182만 명이고 이 중에서 성인은 4,312만 명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성인의 대부분이 주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1인 1계좌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주식이 범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2020년 3월 6일(금) 3,000만 개를 넘어섰던 주식계좌가 1년 만에 약 1,000만 개가 증가한 것은 ‘동학개미운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학개미운동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주식 시장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기관과 외국인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1894년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것이다.



  주식은 한 번에 많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한 번에 많은 돈을 잃기도 하기에 합법적인 도박이라고도 불린다. 주식투자로 파이어족이 되는 데 성공한 제이슨 씨도 단기간에 완벽하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투기나 단기적인 매매는 지속 가능한 파이어족이 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식을 통해 파이어족이 되고자 한다면 규모 있는 자산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며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젊은 층이 생각하는

행복은 다르다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은 2010년대를 지나 2020년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는 매우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 사회 변화엔 시스템 및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포함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젊은 층의 인식에 따라 ‘90년대생이 온다’라는 말이 노동시장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지금 20·30대들과 기성세대의 가장 큰 생각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20·30대 사이에서 ‘소확행’이란 말이 크게 유행을 하고 있다. 이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언가를 바쁘게 쫒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여유로움을 누리고자 하는 젊은 층의 소망이 담긴 말이다. 이처럼 일상 내의 여유로운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인식이 퍼지면서 젊은 층 가운데 ‘지금 바짝 벌어놓고 40대부터 쉬자’라는 마인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마인드가 파이어족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외에도 파이어족을 만들어낸 여러 사회 요인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은 경제적 불확실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년은 65세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서 65세 정년퇴직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준다. 더불어 고령화, 저출산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젊은 층은 연금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공무원 연금 혜택이 예전 같지 않아 공무원의 안정성도 낮아지는 추세고, 국민연금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고갈될 것이다. 이에 불안한 20·30대들은 정년 이후 노후가 안정적으로 보장된 공무원으로 발길을 옮기거나 파이어족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파이어족의 등장으로 사회·경제엔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주거 형태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파이어족은 집세를 아끼기 위해 여럿이 집을 공유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집의 구조는 화장실을 포함한 큰 평수의 안방과 그보다 조금 작은 방들 몇 개로 구성됐다. 하지만 파이어족의 하우스쉐어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주택 구조를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파이어족의 조기 은퇴 이후 일상과 관련한 변화도 생길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조기 은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직급별 나이 비율이 달라지며, 취업 시장의 변화도 생길 것이다. 은퇴 이후 여가 생활 증진에 따른 문화 관련 시장이 활발해질 것을 예측할 수도 있다.



  우리대학에 다니는 재학생들도 졸업을 하면 본인에게 맞는 직장에 취업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 것이다.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가 될 때쯤엔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며 은퇴하고 연금을 받는 삶이 현재는 정답일 수 있지만, 미래에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현재에만 충실한 삶이 아닌, 현재를 검소하게 살다가 미래에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회 변화는 느닷없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작은 변화에도 여러 분야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사회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파이어족이 등장함에 따라 이후에 사회가 변할 수 있음을 우린 알고 있다. 이에 사회는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적응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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