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담은 공간들
문단비 기자 승인 2016.12.29 17 570호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색을 발견했다. 자연에서, 혹은 예술 속에서 발견된 색들은 점차 사람들의 생활에 깊게 관여하게 됐다. 최근에는 색채 전문 기업도 등장했다. 미국의 색채 연구소이자 색채 전문 기업인 ‘팬톤’이 올해의 색상으로 정하는 색은 한 해 동안 엄청난 인기를 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특정 색상의 제품을 선호하는 이들에 대한 용어도 등장했다. SNS 등에서 볼 수 있는 ‘민트 덕후’, ‘핑크 덕후’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색상은 상품에 이어서 공간에까지 활용된다. 특정한 색상으로 가득한 공간은 그 색이 주는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예를 들면 초록색 공간은 안정의 이미지를, 빨간색 공간은 흥분과 열정의 이미지를 준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색 공간은 어떤 곳이 있을까. 다양한 색 공간을 찾아가 봤다.



 



 




  
    
      
    
  


  빨간색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색을 표현하는 언어’다. 즉, 빨간색은 인간에게 가장 처음으로 불린 색인 것이다. 헤겔은 “빨강은 다른 것과 비교하기 힘든 확실한 정체성이 있다”며 빨간색의 중요성을 밝혔다. 사랑, 정열, 전투, 흥분, 아름다움 등을 상징하는 빨간색은 다혈질이나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긴장을 하는 사람들, 중요한 시험 등을 앞둔 이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전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색이었던 빨강은 최근 ‘자극’의 의미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상품의 포장이나 광고에 빨간색을 쓰는 것이다. 피실험자에게 수많은 상품 중 순간적으로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순간 선택 능력 시험’을 해 보면 빨간색 포장지를 이용한 상품을 소비자들이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광고 문구라도 포장지의 색상이나 광고 문구의 색상에 빨간색을 이용하면 판매율이 증가한다. 상품 정보를 보여주거나 소비자에게 신뢰성을 심어주는 데에는 자극적인 빨간 빛깔의 포장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빨간색 공간, 인천 차이나타운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빨간색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빨강 하면 떠오르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인이 빨간색을 굉장히 선호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안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차이나타운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빛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만둣집 간판, 식당 건물에 이어 길거리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마저도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도대체 중국인들은 왜 그렇게 빨간색에 열광하는 걸까.



  고대 중국에서 빨간색은 병과 악귀를 없애주는 행운과 복의 상징이었다. 또한, 경제적인 부를 나타내기도 했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특별한 색인데, 신성함을 의미하는 빨강은 중국의 국기, 건축, 상품 제작에서부터 경극 화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색으로 쓰였다. 최근 중국인들이 빨강을 선호하는 이유는 빨강이 부를 가져다주는 색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한 중국 음식과 상품을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과 빨간색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유다. 활동적이고 혈기 넘치는 민족으로 인식되는 중국인의 성향을 대표하듯 차이나타운의 붉은 빛 건물들은 각각의 개성을 뽐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강조되는 붉은 간판은 정말 중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파릇파릇한 새싹,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나무의 색은 모두 초록색이다. 괴테에 따르면 초록색은 원색인 노랑과 파랑이 동등한 비율로 혼합돼 나타난 색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이 초록색을 볼 때 현실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초록색은 눈을 편하게 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칸딘스키는 “완전한 초록은 기쁨, 슬픔, 열정이란 감정에 어떤 불협화음도 내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초록은 지친 인간의 영혼에 휴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록은 지루함, 혹은 수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색들과 같이 이중적인 특징이 있다.



  초록색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주로 질병 치료나 실내장식 등에 이용됐다. 표지판이나 안내문에 쓰일 때는 ‘안전함’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 이처럼 초록색은 인간에게 안식을 주는 색으로 작용했다. 인간과 그들이 만든 문명을 보듬는 거대한 존재인 자연처럼, 자연의 색인 초록 역시 인간을 보듬는 색이 된 것이다. 결국, 초록색은 자연을 상징함과 동시에 자연이 주는 편안함까지 의미하게 된다.



 



 




  
    
      
    
  


  공원을 찾는 모두에게 휴식을, 송파 올림픽공원



  인간과 초록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사람은 항상 자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자연은 멀어졌다. 결국, 인간은 그들의 도시 속에 자연공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은 8.6㎡로 영국 런던의 26.9㎡, 미국 뉴욕의 18.6㎡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도시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송파구의 올림픽공원에 다녀왔다.



  올림픽공원 중에서도 특히 몽촌토성의 잔디밭 혹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한 나 홀로 나무 앞에서는 ‘초록’이 주는 안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시야 가득 펼쳐진 초록 공간은 보는 사람의 시각적 안정감을 극도로 상승시킨다. 비록 나무와 같은 자연의 초록색은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초록색 나무가 주는 안식을 만끽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휴식이 아닐까



 



 




  
    
      
    
  


  옛날부터 사람들은 노란색을 따뜻함을 나타내는 색으로 인식해 왔다. 낮 동안 끊임없이 밝은 햇빛을 비춰주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노란색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널리 사용돼 온 색 중 하나다. 사람들은 특히 노란색이 스스로 빛을 내뿜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칸딘스키는 “노랑은 하양처럼 밝아지려는 경향이 있다”며 “밝은 톤의 노랑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눈과 기분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노랑은 따뜻하면서도 자극적이라는 이중적 특성 덕분에 현재도 상품의 포장이나 광고 등에 자주 응용되고 있다.



  노란색이 가진 이중적 특성에 대해 더 알아보자. 노랑은 따뜻함, 활동적인, 가벼운, 재미 등의 긍정적 특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신경과민, 시끄러움, 경고 등 부정적인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다. 보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은 노란색의 양면성을 잘 드러낸다. 희망에 찬 사람은 노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좌절에 빠진 사람은 노랑을 불안해하며 멀리한다. 막스 뤼셔는 이에 대해 “좌절한 사람이 노랑을 멀리하면 그 어떤 상실감도 이겨내지 못한다”며,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이라도 마지막 희망에 목숨을 걸면, 다시 한 번 노랑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을 담은 빛을 내는 광화문 노란 리본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노란색 공간은 어디일까. 바로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다. 특히 세월호 광장 입구에 세워진 대형 노란 리본은 밤에 더 밝게 빛난다.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 아래,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차들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밤이 돼도 꺼질 줄 모르는 도심의 불빛 속에서 홀로 빛을 내는 노란 리본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란 리본은 오래전부터 ‘기다림’과 ‘희망’의 의미로 사용됐다. 미국에서는 노란 리본 이야기를 담은 노래인 ‘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발표돼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노란 리본 캠페인을 진행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곧 2주기를 앞두고 있다. 실종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은 채 여전히 빛나고 있는 세월호 광장의 노란 리본은 뤼셔의 말과 같이 ‘마지막 희망’의 상징이 아닐까.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는 이들의 희망을 담은 노란 리본은 오늘도 밝게 빛난다.



 



 




  
    
      
    
  


  파란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하늘, 물이다. 물은 계곡에서 강, 바다를 거쳐 하늘로 상승한다. 하늘에서 구름이 된 수증기는 비가 돼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 일본 고유 단편시인 하이쿠에서는 파란색을 “영원한 파랑”이라고 표현했다. 물과 하늘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파란색은 신비로운 느낌까지 든다.



  파란색은 고독, 조용함, 내면의식을 나타낸다. 푸른 하늘이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깊은 내면에 잠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외에도 파랑은 기적, 동화, 꿈, 수수께끼, 명상 등을 상징한다. 이처럼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파랑은 건축 장식에도 널리 쓰였다. 파란색은 다른 의미로 믿음직함, 신뢰를 뜻한다. ‘블루칼라 노동자’라는 단어로 익숙하게 다가오는 푸른 작업복은 작업자에 대한 신뢰감을 상징하는 복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파란색의 부정적 의미도 존재한다. ‘I’m blue’라는 영어 표현은 ‘난 우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파란색의 어두운 인상은 무기력, 차가움, 지루함 등이 있다. 파랑이 부정적으로 쓰인 대표적인 예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가 있는데, 인간의 감정 중 슬픔을 상징하는 ‘슬픔이’는 온몸이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간 너머의 푸른 물결,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우리 주변에서 파랑을 볼 수 있는 공간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찾아갔다. 다리를 지나가는 이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글귀로 가득 채워진 다리를 걷다가 한강을 보면 왠지 모르게 믿음직한 느낌까지 들었다. 생명의 다리는 지난 2012년, 마포대교에서의 투신을 막기 위해 힘을 모은 서울시와 삼성생명의 합작으로 조성됐다. 따뜻한 글귀와 생명의 전화 등 투신을 결심한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시설들은 시민들의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칸 국제광고제 등 세계 광고제에서 39개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는 여전히 ‘자살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생명의 다리 조성 2년 만에 자살시도자 수가 16배나 급증하기도 했다. 이는 생명의 다리가 자살 장소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힘을 주는 글귀 너머에 보이는 푸른 물결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다리는 파란색의 양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색 공간이다.



  문단비 기자

  mun__3058@seoultech.ac.kr


0개의 댓글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