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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무비톡톡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0-11-16 01  |  638호 ㅣ 조회수 : 262

평범함이 사치가 되는 이들에게



<로제타(1999)>-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영화는 로제타(에밀리 드켄)가 일하는 공장에서 쫓겨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해고된 것이다. 어떻게든 공장에 남아 있기 위해 기를 쓰고 매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처절하다. 10대 소녀 로제타. 남들이었다면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업에 열중하기엔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나 버겁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와 함께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장 먹을 음식조차 해결되지 않아 근처 강에서 숭어를 잡을 때도 있다. 그녀의 삶은 환상 따윈 없는 현실의 늪 자체이다. 강가의 진흙 속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장화를 신고 힘겹게 발을 내딛는 로제타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삶과 닮았다. 그런 로제타의 퍽퍽한 일상 속에 리케(파브리지오 롱 기온)가 들어오게 된다. 그는 영화에서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에는 영화 내내 무표정이었던 로제타의 얼굴에도 미소가 살짝 번지곤 했다. 그러나 현실의 늪은 다시 그녀를 집어삼킨다. 사장의 아들로 인해 다시 일자리를 잃게 된 로제타. 리케 덕분에 얻게 된 일자리였지만 그것마저 잃게 되 자 그녀는 리케의 일자릴 빼앗고 말았다. 약육강식의 사회시스템 속에서 약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리케의 집에서 머무르며 그녀는 이런 말을 혼자 속삭인 적이 있다. “네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난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잔인했다. 가난한 이에게 평범함은 사치가 됐다. 감성에 젖어 드는 일 따위는 평범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로제타는 영화 내내 복통에 시달리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뒤로한 채 다시 일해야 했다. 그렇게 10대 평범한 소녀로서의 삶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로제타>의 감독인 다르덴 형제는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영화 속에서도 그 성향이 그대로 묻어난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여과 없이 어떠한 영화적 개입도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이 따라가는 로제타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포착된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관객들은 무력함을 느낀다. 친구를 배신하는 로제타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 없다. 잔인한 사회와 현실은 개인의 윤리의식마저 앗아갔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 이유는 결국 우리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곁에, 그리고 우리 사회 속에는 수많은 로제타가 존재한다. 영화를 통해 애써 외면해왔던 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고 나면 관객들은 무력감과 함께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영화의 끝에 도달할수록 그녀의 상황은 점차 악화한다. 처음엔 밀가루 포대를 옮기다가, 그다음엔 도망가는 어머니를 붙잡다가,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엔 가스통을 끙끙대며 옮기다가. 그렇게 그녀를 짓눌러 오는 현실의 무게에 결국 그녀는 무너지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감정 없어 보이던 로제타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로제타>는 그런 구렁텅이 같은 현실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이니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 따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에도 오토바이를 타며 그녀를 따라다니는 리케. 물론 그런 리케의 심리에 관해 영화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나한테 왜 그랬냐며 묻는 그는 이내 “너는 물에 빠졌던 날 구해줬잖아”라고 말한다. 그의 행동에는 그녀를 향한 분노와 함께 용서와 연민의 정서 역시 내재돼 있었을 것이다. 로제타가 무너졌던 날, 리케는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던 걸까? 리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로제타의 모습이 마냥 슬픈 의미만을 가지는 것 같진 않다.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로제타가 울먹거리며 리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마치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것 같았다. 처음 보인 로제타의 약한 모습은 오히려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로제타도 더이상 혼자서 감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의 인생에도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영화는 한 편으로 이 세상의 로제타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인생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내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울 때가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로제타의 삶은 우울하지만, 또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기도 하다. 혹시 그렇다면, 너무 자신을 옥죄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가 로제타를 바라보는 그 시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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