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납치·감금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캄보디아 ‘스캠(온라인 사기)단지’에서의 피해 규모는 해마다 폭증하고 있다. 외교부 신고 기준으로 2022년 11건, 2023년 21건이던 피해 신고가 2024년엔 221건으로 급증했고 2025년 1~8월에만 이미 330건을 넘어섰다. 3년 새 3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단기간 내 세 자릿수 증가세를 보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현지에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수익성이 높아 범죄조직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한 구조 활동가는 “한국인의 몸값이 비싸고, 보이스피싱 수익도 가장 크다”고 증언했다.
스캠 단지의 수법과 중국계 조직의 배후
피해자 다수는 높은 급여와 간편한 채용 절차를 내세운 SNS·텔레그램·구직 사이트 광고를 통해 유인된다. ‘고수입 단기 근무’, ‘무경력 환영’ 같은 문구로 접근한 뒤, 캄보디아나 태국 국경 지역으로 불러들여 여권을 압수하고 강제로 노동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들은 ▲전화금융사기 ▲로맨스 스캠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등 온라인 범죄에 동원된다. 이후 가족에게 몸값 송금을 요구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협박이 이어진다.
BBC코리아는 이러한 범죄의 배후에 중국계 조직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북서부에 위치한 ‘웬치(Wench)’ 단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지역은 중국계 자본이 주도하는 대규모 온라인 사기 거점으로, 사실상 독립된 치외법권 지대처럼 운영된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범죄조직이 단속을 피하려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로 국경을 넘나들며 거점을 옮긴다”고 한다. ‘웬치’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인신매매·감금·착취가 결합된 복합적 범죄 시스템을 지칭하는 은어로 통한다.
김재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캄보디아 정부의 느슨한 단속은 중국계 자본과의 이해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부는 단기 구출에 그치지 말고 다자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 태국 등에서도 동일한 유형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아세안 차원의 공동 대응과 정보 공유가 실질적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글. 9분 만에 6명이 지원했다. (출처=한겨레)
현지 치안당국의 유착과 한국인 표적화
캄보디아 내 범죄조직 활동은 사법권의 허점으로 인해 더욱 확대됐다. BBC는 일부 지역이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회색지대”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서는 ‘1만 달러면 교도소에서도 풀려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 만큼 부패가 만연하다. 정태윤 경찰대 범죄학과 교수는 SBS 뉴스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인신매매가 아니라 산업화된 범죄 생태계”라며 “현지 치안당국이 범죄조직과 유착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범죄단속 강화를 약속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거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스캠 단지’가 수도 프놈펜 인근뿐 아니라 국경 도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지 구조 활동가는 “일부 경찰이 범죄단지 보안요원으로 일하거나, 단속 정보를 미리 흘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주요 표적이 된 이유로 ▲높은 온라인 금융 접근성 ▲빠른 송금 속도 ▲SNS 에 노출된 대량의 개인정보를 꼽는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돼 사망한 사건을 전하며, 젊은 층이 주요 피해 계층이라 보도했다. 특히 20대 청년층은 해외 취업과 단기 일자리 수요가 높고, 외국어 소통 능력도 있어 범죄조직이 손쉽게 유인 대상으로 삼는 계층이다. 실제로 피해자의 다수가 ‘고수입 해외 취업’ 광고를 보고 입국했다가 여권을 뺏기고 감금당했다.
부실한 외교 대응과 뒤늦은 합동 전담반
인력 부족으로 실시간 대응이 어려웠고, 피해자 가족이 직접 캄보디아 경찰이나 구조단체에 연락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사관 인력 확충과 긴급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대응 강화에 나섰다. 지난 10월 27일(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한–캄보디아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한국인을 전담하는 공동 TF, 일명 ‘코리아 전담반’을 11월부터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피해자 송환 및 수사 공조 방안을 논의했으며, 한국 경찰 파견과 정보공유 확대를 약속했다. 캄보디아 측은 스캠 단지에 대한 집중 단속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제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정부는 10월 28일(화) 국정감사에서 “캄보디아 내 우리 국민 피해 급증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데 깊이 사과드린다”며 대응 강화를 약속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386건 중 296건이 종결됐지만, 여전히 90건이 미종결 상태다. 작년 사건까지 합치면 총 102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외 치안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해외 취업 유인으로 이어지고, 정보 비대칭이 범죄 조직의 틈을 만든다. 청년층을 보호하기 위해선 정부와 대학이
협력해 해외 취업 과정 전반에 대한 안전 교육과 정보 검증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용하 수습기자
divine1251@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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