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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낯선 어른이란 말
기사 승인 2025-12-04 18  |  709호 ㅣ 조회수 : 6

이수아(시디·25)



 벌써 2025년이 끝나간다. 나는 아직도 이 숫자가 낯설어 종종 날짜를 ‘2024’로 잘못 적곤 한다. 스무 살, 어른, 2025. 이 모든 단어가 아직 나에게 익숙지 않다.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만 되면 곧바로 멋진 어른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나의 스무 살은 그다지 멋지지도, 어른 같지도 않다. 대학에 오면 뭔가 될 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어릴 적엔 미래의 내가 멋진 어른이 될 거란 확신이 있어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더 지난다고 해서 내가 꼭 멋진 어른이 되리라는 확신은 서지 않는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기에 모두 그렇게 자연스레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은 참 공평하다. 돈이 많든 적든, 잘나든 못나든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간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은 계속 간다. 나도 그렇게 흐르는 시간에 따라 언젠간 어른이 되겠지. 나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꼭 멋진 어른이 아니어도 좋다. 어떻게든 살아가면 어떤 것이 되어있을 것이고, 몇십 년간 쉬지 않고 만들어낸 내 삶은 굳이 휘황찬란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럴싸한 직업을 갖고, 돈 잘 벌고, 잘 차려입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삶도 좋지만, 직업이 없고 돈이 없고 가정이 없어도 괜찮다. 어릴 땐 폼 나는 멋진 어른만을 꿈꿨기에 그냥 어른이 되어 뚝딱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 더 살고 보니, 그냥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더 알게 됐다. 살아가는 것만으로 모두가 천천히 자신의 개성을 담은 인생이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젠 그 시간의 가치를 알기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뭣도 아닌 것 같은 현재가 소중하다. 다가올 미래의 현재들도 기대된다. 이 작고 작은 현재들이 만들어낼 나의 인생이, 내 평생을 갈아 넣은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깨달음 자체가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다. ‘폼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어떤 명확한 좌표를 요구하는 것 같아서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나를 둘러싼 공기는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가’를 묻는다. 어릴 적에는 그 방향이 ‘멋진 어른’이라는 목표 하나로 분명했는데, 이제 보니 그 목표는 실체가 없는 신기루였던 것 같다. 그 실체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해서 불안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막연함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여전히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건, 세상이 말하는 어른의 정의가 너무 모호해져서 생긴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내가 내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며 캔버스에 덧칠하는 모든 순간이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니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이 불안하고 어설픈 현재의 모든 시행착오가 나중에 내 삶이라는 작품을 가장 독특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재료가 될 것이다. 이 현재를 오롯이 경험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이 결심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머리로는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해도, SNS 피드를 넘길 때마다, 혹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화려한 근황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여전히 내 안에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끈질기게 남아있다. 어쩌면 이 방황하는 시간 자체가 청춘의 필수 과정이라는 흔한 위로의 말이, 오히려 나에게는 또 다른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 불안을 통째로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불안이야말로 내가 내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테니까. 나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서, 이정표가 없는 길을 걷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그려보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좁은 트랙을 벗어나 새로운 운동장에 발을 디딘 셈이니, 다시 걷는 법을 배우는 게 당연하다. 급하게 뛰려다가 넘어지는 것보다 지금처럼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남들이 빠르게 지나쳐 간다고 해서 내가 늦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속도와 색깔로 이 낯선 스무 살의 캔버스를 채워나갈 것이다. 결국 나를 완성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밀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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