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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거짓말하는 사회
원용찬, 주윤채 ㅣ 기사 승인 2017-05-21 14  |  588호 ㅣ 조회수 : 2656
거짓말이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사회. 오늘날 우리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허언증 갤러리’란 곳이 인터넷에 떠올랐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거짓말을 통해 사람들을 웃기고자 하는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 중에는 자기 자신을 한껏 치장해 자랑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정치적인 사진이나 일반인들의 사진을 이용해 엉뚱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시물도 있었다. 과연 허언증이란 무엇이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내 통장엔 29만원밖에 없다”

“나에겐 8,000명의 부하가 있다”



허언증이란 무엇인가?



흔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허언증 환자라고 몰아가곤 한다. 그러나 모든 거짓말이 허언증의 결과물은 아니다. 위 예시를 보자. 만일 저 말을 한 사람이 돈이 더 있다는 걸 알면서도 29만원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허언증 환자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게 8,000명의 부하가 있다”라는 말을 하고, 이를 ‘진짜’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허언증이다. 다른 말로 공상 허언증이라고 일컫는다. 공상 허언증 환자들은 거짓말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의 말을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시인사이드 허언증 갤러리, 또는 페이스북 허언증 갤러리 그룹 등에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허언증 환자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들은 허언증이 있는 양 유머가 섞인 게시물을 올리면서 본인들의 현실에 웃음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허언증’ 게시물의 갑작스런 범람 현상에 대해 ‘성공에 대한 집착과 실패’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세상이 녹록치 않은 이들에게 거짓말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은 팍팍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 허언증 갤러리에 게시된 거짓된 글



허언증 조상 ‘리플리’와 ‘뮌하우젠’



앞서 이야기했듯, 공상 허언증 환자들은 자신이 한 거짓말 또는 망상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 믿는다. 이들은 현실의 상황을 부정한다. 또한, 스스로의 상황에 불만을 갖고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반복적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공상 허언증 환자들의 뇌는 반복되는 거짓말과 행동에 익숙해지고, 이를 결국 진실이라 착각하도록 만든다. 뇌가 스스로 현실이라 인식하기 때문에 뇌파를 이용하는 거짓말탐지기로도 공상 허언증은 잡아내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공상 허언증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이 꽤 있다. 최근에는 그래도 줄어드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년 2,352명에서 2013년에는 1,735명까지 줄어들었다. 성비는 7:3 정도로 남성 환자 수가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 공상 허언증 진료현황. 매년 줄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공상 허언증은 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거짓말을 믿어서 나타나는 증세다. 이는 인격이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나뉘는 해리성 장애와는 구별된다.



리플리 증후군과 뮌하우젠 증후군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먼저 리플리 증후군이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뜻한다. 이는 주로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염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때, 또는 사회 구조에 좌절을 겪을 때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다가 이를 현실로 인식하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의 어원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한다. 이 소설은 ‘톰 리플리’라는 주인공이 재벌 2세 친구를 죽이고, 친구의 행세를 하면서 살아가는 소설이다. 리플리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과 교묘한 속임수를 이어가지만 결국 친구의 사체가 발견돼 긴 사기극을 끝내게 된다. 이와 관련된 영화로 알랑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1960)가 있다. 이 영화의 흥행 이후에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병리학계에서 주목받게 됐고, 지금의 신조어로 자리 잡게 됐다. 또 다른 영화로는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1999)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MBC에서 〈미스 리플리〉란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비슷한 구성의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 영화 <리플리>의 포스터



리플리 증후군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발현하는 것이라면, 뮌하우젠 증후군은 거짓말로 타인의 관심, 동정심을 유발해 사랑을 갈구하는 질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고 부풀려서 동정을 받아내려 거짓말을 한다. 이는 18세기 독일의 군인이었던 폰 뮌하우젠 남작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그는 자신이 모험하지 않은 일들을 모험한 것처럼 꾸며 사람들을 속이고 관심을 끌고자 했다. 뮌하우젠의 허풍은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루돌프 라스페가 『허풍선이 뮌하우젠 남작의 놀라운 모험』이라는 책으로 냈고, 그 후 영국의 리처드 애셔가 이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명명해 널리 쓰이게 됐다.



허언증, 거짓의 삶을 사는 내면의 악마



앞서 본 ‘허언증 갤러리’의 등장으로 허언증은 개그 소재가 됐다. 하지만 실제로 이 증상을 겪는 이들에게 허언증은 웃을 일이 아니다. 앞서 말한 뮌하우젠 증후군이 꼭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인터넷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SNS에서도 뮌하우젠 증후군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소위 ‘온라인 허언증’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 A 씨는 강의를 듣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에 SNS에 게시된 글을 확인한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 애인에게 근사한 선물을 받은 사진, 후배들끼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찍은 사진, 동기가 해외여행 중 잔뜩 멋을 낸 사진들에는 부러움을 담은 댓글이 달린다. 이러한 사진을 게시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은 물론 부러움까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SNS에 게시할 사진을 찾게 됐다. 그러던 중,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고급 외제차를 발견하곤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A 씨는 남의 자동차 사진을 게시한 것이 양심에 찔렸지만 게시글에 달린 많은 댓글을 보고는 금세 잊어버렸다. 자동차가 멋있다는 댓글들, 부러워하는 댓글이 쌓이자 마치 그들보다 우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우월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었던 A 씨는 이후에도 사진을 도용하거나 조작해 SNS에 게시했다. 처음에 느꼈던 양심의 가책은 더 이상 없었고, 거짓말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또한, 거짓말이 늘어날수록 A 씨는 SNS 속 꾸며진 자신의 모습을 실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SNS 속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형편에 맞지 않은 명품 쇼핑과 고급 레스토랑 방문 등과 같은 과소비가 늘었다. A 씨의 통장에는 밥 한 끼 사먹을 돈도 남아 있지 않게 됐고, 그제야 A 씨는 자신의 허영심을 후회했다. 또한, 고의로 자해하고 병원에 간 후 SNS에 그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바로 대표적인 온라인 뮌하우젠 증후군의 사례이다.



이처럼 허언증은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되지만, 그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이것이 쌓여 본인 또한 그 지어낸 말이 실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인터넷을 이용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익명성 또한 보장되어 누구나 쉽게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게 됐다.



허언증으로 인해 광범위한 피해를 입은 사례로 ‘신정아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동국대 조교수였던 신정아 씨는 젊은 나이에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으로 선정되고 여러 경력을 쌓는 등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그러던 중, 신 씨의 학력위조 의혹이 불거졌다. 신정아 씨는 1994년 캔자스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로 학사학위(BFA)를, 1995년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2005년 예일대에서 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자신의 이력을 기재했다. 그러나 사실 신 씨는 캔자스대 서양학부과정을 중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 씨는 자신이 대리출석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캔자스대 학·석사, 예일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과정에서도 학위취득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신 씨는 학력을 속여 교수로 취임한 것이었다. 또한, 이후 미술관 재직 중 공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신 씨는 재판 후에도 “예일대에 가서 진실을 확인하겠다”며 전형적인 공상 허언증의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신 씨와 관련돼 있던 미술계·대학가 등에 피해가 번져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또한, 몇 년 전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세 모자 사건’도 허언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다. 자신을 두 아이의 엄마라고 주장한 이 모 씨는 “저는 더러운 여자입니다. 그러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일반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에 소개했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두 아들이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남편인 허 씨는 지역 내 유명한 교회의 목사임에도 약물을 써 아내와 아들을 성폭행하고 있었고, 시아버지 또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 씨와 그의 아들들이 동영상을 촬영해 올리면서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는 기폭제가 됐다. 이 씨가 작성한 글들은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허 목사 부자의 악행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각종 정부기관 및 방송사에 고발했다. 결국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씨와 그 아들들, 허 목사 부자를 취재하게 됐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취재팀 앞에서 눈물을 비치며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던 이 씨는 카메라가 꺼지자 “의심스런 행동은 하지 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넌 설득력이 있었다”라는 말을 하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진심으로 세 모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네티즌들은 그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했다. 또한, 두 아들을 뺏긴 허 목사는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이처럼 SNS에서 타인의 동정을 사기 위해 자신을 피해자로 조작하거나, 일부러 자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허언증의 또 다른 이름 자존감 부족



허언증은 외부로부터의 기대 혹은 스스로 채우지 못한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해의식 및 열등감이 강한 사람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허언증을 겪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현실이라 믿기 때문에 타인이 그 거짓말에 대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이 증세는 SNS가 대중화되면서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고, 우월해보이고 싶은 현대인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허언증은 심각한 질병이 아니다. 그저 증세에 그칠 때가 많다. 따라서 약물이나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심리 치료만으로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 허언증 치료는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후 행동패턴검사, 성향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정체성을 찾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말로 꾸며진 모습이 아닌 자신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다. 주변에 대한 열등감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음악 감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목표를 세워 운동하고 성취감 느끼기,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 등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허언증을 겪는 사람들은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바로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일깨워주고 고치도록 하는 일은 허언증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대학 학생생활상담팀 조주영 상담사는 “허언증이란 어떤 질환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므로 그 진단기준이나 원인 등에 대해 과학적,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얕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주목받고 싶은 욕구, 불안한 마음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허언증의 치료에 대해 “허언증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진행된 연구는 드물지만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허언증 및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의 기저에 고통스러운 과거나 억누르고 있는 걱정이 있다고 본다”며 “장기간의 정신분석적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기를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 상담사는 “허언증의 경우, 거짓말에 있어 양의 차이(과도한, 빈번한, 충동적, 조절불가능)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명백한 동기가 없고, 거짓말을 했을 때 그 내용이 대중의 집중을 받고, 거짓말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 가능한데도 거짓말을 한다는 측면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허언증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자신을 허언증이라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그 내용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또한 “허언증의 경우,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님에도 스스로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 거짓임을 입증해도 그 내용을 믿지 않으며, 따라서 논쟁을 벌이게 되면 다른 거짓말을 한다거나 서로 감정만 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어째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등을 제안한다”며 허언증 증상을 보이는 지인이 있는 경우의 대응법을 소개했다.



원용찬 기자 YongChan@seoultech.ac.kr

주윤채 수습기자 qeen0406@seoutl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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