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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정치색, 어떻게 볼 것인가
박종규 ㅣ 기사 승인 2025-01-08 13  |  699호 ㅣ 조회수 : 14

 지난 12월 3일(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졌다. 이에 봉준호, 양익준, 장준환 감독을 포함한 영화인 2,518명은 계엄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계엄을 규탄하고 윤 대통령의 탄핵을 골자로 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영화계의 행보를 응원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영화인들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거나 나아가 한국 영화 전반의 정치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단순히 정치를 소재로 하는 영화와는 달라



 영화에서의 ‘정치색’이란 영화에 담겨있는 정치적 코드를 말한다. 정치영화가 실제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부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명확하게 담고 있다면, 영화의 정치색은 비교적 미묘하고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의 가치관을 다룬다. 파독 광부, 간호사 이야기를 다룬 <국제시장>은 산업화의 가치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1987>은 민주화의 가치를 담았다.



 간접적으로 정치적 상황을 다룬 영화도 있다. 조선시대 광해군 시기를 배경으로 한 <광해: 왕이 된 남자>다. 영화 각본을 쓴 황소윤 작가는 개혁법을 통과시킬 때 국회의 반대에 부딪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황을 영화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영화에 등장했던 “부끄러운 줄 아시오”, “조강지처를 버리란 말이오? 차라리 나를 폐위시키시오”라는 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색은 왜 점점 짙어지는가



 한국 영화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짙은 정치색에 대한 비판이다. 관객들의 불만은 영화의 상업적인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정치적 색깔은 점점 강해진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정치적 색이 짙은 영화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예술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보다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이 영화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점에서 영화의 정치색은 자연스럽게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 때 이뤄졌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요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정부의 강한 압박이 오히려 문화예술계의 반발심을 불렀다는 것이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시>는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 심사에서 0점을 받아 논란이 됐다. 이에 영진위는 <시>가 해당 사업에서 시나리오가 아닌 트리트먼트*를 제출했기 때문에 0점 처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조사에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의 경우 트리트먼트를 통해 서류를 접수해 영화를 지원했던 전력이 밝혀지는 등 영진위 측의 주장을 사실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당시 위원장이었던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사퇴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2017년,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는 수사 결과가 보도됐고 이창동 감독이 여기에 포함되면서 해당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영화의 지나친 정치색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실제 전쟁이나 역사를 다룬 사극에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고취할 목적으로 역사 왜곡을 하거나 객관적 사실이 아닌 정치적 주장을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면 영화의 현실 반영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에서도 논란되는 영화의 정치색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영화의 정치색에 대한 논의는 자주 이뤄진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일본의 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쿨 재팬 정책으로 문화예술인의 해외 수상을 열광적으로 축하하며 마케팅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으로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하자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주로 다루고 있어 아베 총리가 의도적으로 그를 홀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사회의 복지, 교육제도의 문제를 영화에 담아내고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등 ‘사회파’ 감독으로 불린다. 당시 수상했던 <어느 가족> 역시 일본에서 발생한 부정 수급 사건을 바탕으로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연금과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가족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복지 제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의 한 장면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가 섞여 있는 미국에서는 더욱 민감한 주제다. 미국에서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조차 개신교를 연상시킨다며 “Happy Holiday”로 바꿔 써야 할 정도로 종교와 문화에 대해 민감하다. 미국에서는 주로 상대 진영에 대한 음모론이나 종교, 다양성 등을 근거로 영화의 정치색을 판단한다. 아동 인신매매 구출 작전을 다룬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경우 보수 진영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언론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아동 인신매매를 한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 소수자나 소수 인종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 PC(Poltical Correctness)관련 영화들의 경우는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는다.



관객은 어떻게 생각할까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대학생 심 씨(25)는 영화에 정치색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과한 정치색은 싫지만 보면서 생각할 점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1987>, <국제시장>,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모두 봤지만 영화를 보면서 크게 불편하거나 문제 삼고 싶은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영화에 녹여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몇몇 영화에서 개연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노조나 시위 장면, 소수 인종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은 몰입이 깨져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리트먼트: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을 축약해 정리해놓은 시나리오의 축약원고



박종규 기자 peter196772@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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